"새벽상념" - 이공계 연구실 수기공모전 가작 수상작 -

글쓴이
Scieng office
등록일
2004-08-17 15:59
조회
7,7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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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
새벽상념

시계 바늘이 2시를 향해가고 있다. 야식이 도착할 때가 되어가는데, 배고파서 공부에 집중은 안되고 다들 안절부절못한다. 교수님들 연구실에 도둑이 들어 컴퓨터를 몽땅 도둑맞은 후론 공대건물 현관에 자물쇠가 잠기기 시작했다. 새벽 2시를 넘기는 날에는 꼼짝없이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새벽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학원생들에게 이러한 불편은 학교방침이라는 이유로 무시된 지 오래다.
그나마, 박사과정에 있는 나는 이제 제법 이런 생활에 익숙해 졌다. 집과 학교 사이가 버스로 40분밖에 안되지만, 그 시간도 아까워 학교 밑에 자취방을 얻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그곳에 내려갈 시간도 없다. 덕분에 연구실 넓은 책상은 나의 간이 침대가 되었다. 책상이 불편할 법도 한데 역시 군대를 다녀온 몇몇 남학생들은 빨리도 적응한다. 책상 너비에 상관없이 등만 붙일 수 있다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제 석사 1년차인 녀석들도 같이 밤을 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이제 야식이 도착했나 보다.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편한 것이 있다면, 내가 야식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라면 끓이고 설거지하고 할 때는 연구실 생활이 군대 같다고 그렇게 싫어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래 전 일이 되 버렸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석사 1년차의 생활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군대 같은 조직적 체계와 회사 같은 업무량, 그러면서 학생으로서의 임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이 군대 같은 조직적 체계였다. 대학교 학부 과정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을 했지만, 나의 생활 리듬에 맞춰 공부하고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는 그건 꿈 같은 일이었다. 선배가 밤새고 있으면 같이 밤을 새워야 하고, 일요일에 단체로 운동을 한다고 하면, 내가 운동을 안 한다고 해서 빠질 수도 없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던지 선배에게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할 정도로 사생활이 철저히 무시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회사와 같은 많은 업무량과 함께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국립 대라고 하지만, 지방에 있는 대학의 공과대학에서 연구실이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서는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그나마 과학기술 인에 대한 대우가 적절치 못하다는 여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덕분에 국가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자금 확보의 기회가 늘어난 듯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중소기업과의 작은 프로젝트들을 일일이 수행하지 못하면, 대학원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의욕 넘치는 교수님 덕분에 내가 속한 연구실에는 매년 십여 개의 과제를 수행해 오고 있는데, 그 과제 금액이 서울에 있는 대학의 한 두개 프로젝트 비용과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기업과 과제를 많이 하다 보니 시간관리가 엄격해야 한다. 덕분에 군대나 회사와 같은 분위기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격이 맞지 않는 선배와 같이 일을 하다 보면 금방 해결될 일도 더디어 진다. 그 덕분에 일이 잘 안되면, 결국 힘들어 지는 건 일하는 사람이다. 석사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점이 있다면 책을 통해서 어떠한 공부를 했었다는 것 보다, 여러 성격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부딪힐 사람조차 찾기 힘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공과대학을 지원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과학기술 인이 되기를 회피한다는 말을 신문지상에서 읽어 본적이 있는 듯 하더니, 그것이 내가 생활하는 연구실에서 실제 겪게 되었다. 선배들과 열심히 프로젝트한 덕분에 넓고 깨끗한 연구실에서 생활을 하는 가 했는데 이제는 그 공간이 점점 허전해져간다. 그나마 멀리 서 온 중국 유학생들 덕분에 간간히 자리가 메 꾸어 지고 있지만, 몇 년 새 인원이 많이 줄어든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늘어가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벌써 설거지가 끝나고, 다들 책상에 앉아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한 두 명 책상에 앉은 체 졸고 있는 걸로 보아서 밤도 꽤 깊었나 보다. 나도 이제 컴퓨터에 맡겨놓은 일을 점검하고 자료를 정리해야겠다.
어둠이 깊으면 곧 새벽이 오고,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이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힘들 다고 회피할 때,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새벽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이지영

  • The Calling ()

      와 정말 대단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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