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구 원 수 기" - 이공계 연구실 수기공모전 가작 수상작

글쓴이
Scieng office
등록일
2004-08-19 09:4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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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구 원 수 기

잠자리에 들어서 하루 일과를 더듬어 보았다. 7시에 기상해서 8시 10분에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단조로운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쳇바퀴처럼 같은 일만 계속해야 하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주공상영화에서 나오는 첨단무기들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가 되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 아련히 떠올랐다. 단지 잘 사는 데에만 치중하여 오는 세월들을 생각하니 현재의 자신이 모습이 너무 한심하였다. 그래서 다음 날로 사표를 내고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테마는 같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니 전혀 다른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다음에는 이렇게 해봐야지.’, ‘흠 이것은 그전보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네. 왜 그럴까?’ ‘아 이렇게 하면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왔네. 그렇다면 저것이 실험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니 다음부터는 저것의 조성을 바꾸어서 실험을 해보아야겠다.’ 종일 이런 생각들만 하고 지내었다. 너무 깊이 생각을 하다 보니 차에 치일 뻔도 했고, 들고 온 물건들을 놔두고 다니기가 다반수였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행복이 있었다.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매일매일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년의 세월이 눈 깜짝할 시간에 흘러가 버렸다. 그때 처음 실험에서 벽을 느꼈다. 실험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모든 일에 슬럼프가 있듯이 연구개발에도 그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현재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며칠동안 고민을 하였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4시간정도 모든 고민들을 잊어버리고 무아지경으로 책에 빠져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마음이 환하게 맑아지더니 고민했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손에 책을 쥐었다는 것도 잊어 버린 채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내가 나가자마자 책검사대에서 삐삐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손을 보니 책이 들려져 있었다. 대출도 하지 않은 채 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경비원 아저씨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사과를 한 다음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빨리 실험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으로 연구실에 달려가서 떠올랐던 대로 실험을 해 보았다. 대성공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내가 할 수 있었는지 정말 신기하였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나온 결과들을 토대로 SCI 논문을 써서 제출을 하였다. 그쪽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 결과를 가지고 석사졸업논문을 썼다. 처음에는 한글로 쓸려고 했지만 영어로 쓰는 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나을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영어로 졸업논문을 썼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영어문장들이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다음에는 이게 내가 쓴 것인지 놀랄 정도로 멋지게 변해 있었다. 이렇게 나의 석사과정은 끝이 나고 대망의 석사학위를 따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석사과정을 마치니 욕심이 생겼다. 석사졸업을 해서는 연구소에 가면 시키는 일만 하는 시다바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나를 불렀다. “너 박사과정을 한 번 해봐라. 내가 보기에는 넌 연구에 관해서는 탁월한 능력이 있으니 이런 좋은 재능을 살려서 기술발전에 기여하는 것도 좋고 앞으로 너의 인생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만약 생각이 있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마.” 라는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귀가 솔깃했다. 그래서 “이틀정도 생각을 해 보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 다음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같이 앞으로의 장래에 대해서 상의를 해 보았다. 부모님은 직장을 구하서 빨리 장가를 가기를 바랐고, 나와 동생은 좀 더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 놓았다. 결국은 부모님은 나의 뜻을 따라 주어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석사과정과는 달리 박사과정을 하니 처음 1년 동안에는 실험을 하기 보다는 연구실의 잡무에 시달려야 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 들어왔는데 연구개발프로젝트을 따기 위한 일부터 연구실 운용에 관한 일들을 하다 보니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1년 정도 휴학을 했으면 합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아직 박사수료도 하지 않았는데 왜?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니?” “아뇨, 단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해서요.”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 1년을 보람되게 보내고 가끔씩 연구실에 와서 연구하는 것들도 도와주고 그래라.” “예”라고 대답을 하고 나는 연구실을 나왔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휴학을 해서 1년간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생각끝에 전적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알아보니 큰 연구소보다는 벤처기업의 연구원으로 들어가면 연구를 많이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벤쳐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연구외에도 생산관리쪽으로도 신경을 써야 해서 그 모든 것을 빠른 시간내에 배울려고 하니 힘들고 괴로웠다. 작은 회사여서 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겨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생기면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2개월이 지나자 점점 자신의 몸이 회사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시간관리를 통해서 생산관리쪽보다는 연구쪽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할당하여 학교때 한참 연구를 하던 생활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실험을 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고 이것을 발전시켜서 기존의 것보다 좀 더 나은 제품이 나왔을 때의 쾌감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나는 성격상 쉽게 싫증을 내는 타입이다. 처음에는 깊이 몰두하다가도 그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 일에 싫증이 나서 다른 일을 시작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연구란 것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연구가 싫증이 날 만하면 다른 연구로 넘어갈 수 있어서 매일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지루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마그네슘표면처리를 하는 벤쳐회사이다. 대학원시절에는 전자재료쪽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이 회사에는 마그네슘이라는 처음 접해보는 금속을 가지고 이전에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표면처리방법으로 자동차부품이나 전자제품케이스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실험을 하기 전에 우선 해외나 국내에 마그네슘표면처리에 관한 논문들을 전부 찾아서 읽어 보았다. 필요가 없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읽어 두고, 필요하다 싶은 것은 상세하게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따로 모아 두고 필요하면 꺼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일이 끝나자 연구를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충 알게 되었다. 필요한 각종 장비들을 구입하였다. 먼저 표면처리를 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하고 다음으로 내부식성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염수분무시험기를 구입하였다. 각각의 장비에 대한 매뉴얼을 보고 익숙할 때까지 테스트를 해 보았다. 필요한 장비를 산 다음 시약을 구입하였다. 우선 논문상에서 나와 있는 실험들을 기준으로 해서 필요한 시약들을 구입하였다. 각 시약들은 직접 제조회사에 주문을 낼 수도 있었지만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아서 시약센타를 통해서 구입을 하였다. 각각의 시약들을 적정량 섞은 다음 전기화학적으로 마그네슘표면에 인위적인 산화막을 형성시켜 보았다. 처음에는 피팅현상이 일어나서 표면조도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시약의 양과 전류의 밀도를 조절하여 적절한 조건을 산출하였고, 결국에는 표면평활도가 우수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여러 가지 제품을 가지고 이 복합양극산화법으로 표면처리를 해 보았다. 휴대폰케이스나 안경 같은 작은 제품들은 우수한 품질로 생산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큰 제품의 경우에는 전류밀도가 낮아서 그런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큰 용량의 정류기를 구입하고 전기공급도 DC와 AC를 동시에 인가하는 방법으로 개선을 해 보았다. 대성공이었다. 이젠 대면적의 제품에도 이 기술의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역시 속을 썩이는 자식이 더 정이 든다는 말과 같이 어렵게 성공한 제품이 더 정이 들고 만족감도 배가 됨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표면처리의 대체적인 기술개발이 끝나서 색깔구현쪽으로 연구테마를 바꾸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색깔구현의 경우는 분체도장이나 테프론코팅 등으로 하고 있지만 표면처리를 하고 다시 도장을 할 경우에는 비용의 소요가 크기 때문에 일체화된 공정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해서이다. 그렇지만 이 기술은 알루미늄의 경우와는 달리 소재자체의 문제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기술을 개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해 내고 말 것이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성공해야만 성취감은 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고 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 경 문

  • 이태훈 ()

      멋지다.... 공학계의 로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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