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진동 - 새로운 가능성

글쓴이
이만불
등록일
2004-10-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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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 이중베타붕괴 실험 중 하나인 NEMO3 실험 장비)


지난 6월, 일본의 K2K 실험 그룹에서 발표한 중성미자 진동 실험 결과는 언론에 상당히 크게 언급된 바 있고, 일반인들의 관심도 어느정도 이끌어 내었다. 적어도 물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중성미자라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일본에서 이와 관련된 거대 실험이 진행중이며, 좋은 실험 결과를 내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입자물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 다시 한번 공표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놀랍고 중요한 실험결과였음에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놀랍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 하다.

입자물리의 표준이론에 따르면 중성미자는 세종류가 있으며 이들 사이에 질량차이가 있으면 이 세종류의 중성미자는 서로 다른 비율로 섞여서 우리가 관찰하는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를 만든다고 한다. 이 섞임 비율은 중성미자가 이동함에 따라 바뀌고, 우리가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자중성미자 뿐이거나 모든 중성미자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관찰량을 이론적으로 예측되는 값과 비교할 수 있다. 이로부터 예상되는 것보다 적은 양의 중성미자가 관찰된다면 중성미자는 다른 종류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를 중성미자 진동이라고 한다. 여기서 첫째, 중성미자 진동은 중성미자의 질량차이가 있음을 말해주며, 둘째, 중성미자의 섞임 비율을 다르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성미자의 이동거리를 다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두가지 문제로 부터 아직 중성미자 실험은 끝이 아니며 이제 단지 시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성미자의 절대질량은 알 수 없는가?>

중성미자 사이에 질량차이가 있다는 말은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말을 전제한다. 하지만 단지 질량차이만 알수 있다면 결국 우리는 중성미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틀리지 않다. 중성미자의 절대 질량을 알아야 이 입자의 특성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실험인 베타붕괴 측정실험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 중성미자로 붕괴되는 베타붕괴의 경우 방출되는 전자의 에너지의 최대값을 정확히 측정하면 중성미자의 질량을 알 수 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이 실험이 99년까지 진행된 바 있으나 실험 결과 전자중성미자의 질량은 전자의 10만분의 1 이하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중성미자의 질량을 측정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검출기가 측정할 수 있는 에너지의 분해능이 중성미자의 매우 작은 질량을 측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고전적인 방법보다는 이중 베타붕괴라는 현상을 이용한 중성미자 질량 측정 실험이 이루어 지고 있다. 이중베타붕괴 란 베타 붕괴가 한꺼번에 두번 일어나는 현상으로 일부 방사성 원소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붕괴한다. 베타붕괴가 두번 일어나는 것이므로 이 과정에서 전자중성미자는 두개 방출되어야 하지만, 만약 중성미자가 자신의 반입자와 동일하다면 중성미자가 방출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 자체가 입자물리의 표준이론에서 예측되지 못하는 것으로 이중베타붕괴 실험이 흥미있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중성미자가 방출되지 않는 이중베타붕괴가 어느정도의 반감기로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면 중성미자의 질량을 알 수 있다는데에 있다. 이 방법은 기존의 베타붕괴를 이용한 중성미자 질량 측정 실험 보다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지만, 배경 방사선의 영향을 충분히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어려운 실험이다. 이 실험은, 건설에만 수조원이 소요되는 가속기 실험에 비해 소규모에서도 중요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실험으로 우리나라 연구진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 연구가 진행중이다. 현재 측정된 반감기는 10^21년을 넘어서고 있으나, 검출기의 성능이 점점 더 개량되고 있으며 세계의 많은 연구진이 연구중인 만큼 조만간 중성미자의 질량이 측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반응로 중성미자 실험>

이제 다시 중성미자 진동실험에 대해 말해 보자. 중성미자 방출원에는 여러종류가 있으며 K2K의 실험결과는 가속기에서 발생되는 중성미자를 이용한 것이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중성미자로써 또하나 중요한 것은 원자로에서 만들어지는 중성미자 이다. 원자로에서는 핵반응이 수없이 일어나면서 대량의 중성미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른 중성미자 방출원에 비해 원자로가 중요한 것은, 첫째, 원자로에서는 세종류의 중성미자 중 전자중성미자만 만들어진다는 점이며, 또하나는 태양에서 만들어지는 중성미자나, 대기 상층부에서 만들어지는 중성미자에 비해 우리가 검출기의 위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성미자의 방출원에서 충분히 가깝게 검출기를 위치시킬 수 있는데, 이는 중성미자 진동의 매개변수 중 아직 측정되지 못한 마지막 하나인, 이른바 theta13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입자물리 이론에서는 세종류의 중성미자가 섞이는 정도를 theta12, theta23, theta13라는 세개의 매개변수로 표현하는데, 이중 두개는 이미 다른 중성미자 진동실험에서 측정된 바 있으며 아직 측정되지 못한 하나의 매개변수가 theta13 이고 이는 검출기가 중성미자 방출원으로 부터 2km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야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입자 물리 실험학자들이 반응로 중성미자 진동 실험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일본과 유럽의 실험 그룹들이 이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나 정확한 값을 측정하지는 못했으며 단지 theta13 값의 상한선만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의 입자 물리 실험학자들이 반응로 중성미자 진동 실험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나라 연구진들도 theta13 실험이라고 불리는 반응로 중성미자 진동 측정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실사구시적인 학문 풍토 때문에 입자물리실험 분야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서 이 실험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실험도 배경 방사선을 줄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실험으로써 검출기를 지하에 건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암흑물질 탐색 실험 등으로 지하 실험실을 건설하여 실험 중으로 지하 연구실 건설과 관련된 검출기 개발의 노하우가 축적된 상황이다. 둘째, 다른 중성미자 방출원과 비교하여 원자로에서는 상당히 대량의 중성미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검출기의 질량이 다른 실험에 비해 크지 않아도 실험이 가능하다. 일본의 Super-Kamiokande 와 초대형 연구시설이 아니어도 실험이 가능하며, 이는 연구의 중요성에 비해 필요한 연구비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무었보다도 우리나라 원자로는 상당히 고출력으로써 울진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세계 2위의 규모이다. 이미 실험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미 세계 여러 연구그룹이 이 실험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미 연구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도 일부 연구진들에 의해 연구 준비가 이루어 지고 있다.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라 하겠다. 다른나라가 노벨상 탄다고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며, 이제 우리나라도 그 정도로 학문적 의미가 있는 연구에 투자할 때가 되었고, 또 그렇게 해야 21세기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과학신문 2004년 10월 18일자에 편집되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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