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만큼이나 정확한 철새의 여행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12-17 12:4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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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접어드는 요즈음은 철새들이 한창 우리나라로 찾아올 시기이기도 하다. 금강 하구 둑이나 서산 천수만 일대, 철원 비무장지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마다 가창오리, 고니, 청둥오리 등 여러 종류의 겨울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또한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들의 군무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도록 하기 위해 철새 관광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은 주로 시베리아 등 북쪽 지방에서 지내다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돌아가는 철새들인데, 해마다 만만치 않게 먼 거리를 여행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먼 장거리 비행을 일삼는 새들도 적지 않다. 제비갈매기 중에는 남극과 북극 사이를 계절에 따라 오가는 종류도 있고, 알바트로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수시로 대양을 횡단하기도 한다.

새들이 그토록 먼 거리를 어떻게 쉬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지, 또한 정확하게 길을 찾아서 날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오래 전부터 풀기 힘든 수수께끼로 꼽혀왔다. 최근 들어서 새들의 장거리 비행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들이 상당히 진척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비밀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새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 구실을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의 자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새의 뇌 속에 들어 있는 자철광은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새들은 저마다 나침반을 휴대하고 날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새들의 위치 파악과 비행 방향 설정을 위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전통적으로 주장되어 왔던 요소들, 즉 태양이나 별자리의 위치, 각종 지형 등도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어떤 야행성 철새들에게 야간 비행 직전에 자기장을 걸어 줬더니 대부분 길을 잃어버렸지만 다음날 밤에는 다시 바른 길을 찾아냈다고 하는데, 해가 지는 방향을 보고서 자신의 나침반을 보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새들의 체내에 있는 개일시계, 즉 생체시계가 오전, 오후로 달라지는 태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의 종류에 따라서 길잡이의 요소와 중요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지기도 하는데, 별빛에 주로 의지하여 길을 찾는 휘파람새는 구름이 잔뜩 낀 밤에는 헤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몸집도 작은 새들이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비행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최근에 어느 정도 밝혀졌다. 새들은 장거리 비행 전에 ‘연료’로 쓸 지방을 체내에 많이 축적하는데, 어떤 새는 몸무게가 거의 두 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게가 늘어난 만큼 비행에 힘이 더 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에너지의 효율성은 더욱 높아지는 셈이 된다.
또한 철새들이 이동할 경우에 V자의 편대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 것도 따로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V자로 편대를 지어서 날아가는 철새들을 따라가면서 실험해 본 결과, 홀로 날아가는 새들에 비하여 V자 대형의 새들이 에너지를 10% 이상 적게 소모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대형의 뒤에 따라가는 새들일수록 날개 짓의 횟수나 심장 박동수가 낮아서 힘이 덜 드는데, 이는 대형의 앞에 날아가는 새들이 일으키는 상승기류를 활용할 수 있는 덕분이다.

인간의 첨단 과학기술이 집결된 ‘GPS 장착 네비게이션 시스템’ 못지않은 길 찾기 능력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항공역학적 원리를 이미 체득하고 있는 철새들을 보면서, 인간이 다른 동식물 및 자연에서 배우고 본받을 점들이 아직도 많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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