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 그 비취색의 숨은 비밀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2-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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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로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 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무렵인 신석기 시대부터 도자기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토기가 있었는데, 이 토기들은 ‘비옥한 초승달지대’라 불리는 이라크 북부지역의 칠무늬가 없는 토기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와 북방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공통적으로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 바 있다.
이어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채색 토기 및 유약을 바르는 도기의 제작법을 알게 되어 여러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였고, 중국에서는 더욱 발전된 도자기들을 선보이게 되었다. 도기보다 더욱 높은 온도로 굽는 자기가 한(漢)나라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고, 당(唐)나라, 송(宋)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좋은 도자기들을 선보이면서 여기서 유래된 ‘차이나(China)’라는 국명이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도자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한 도자기가 있었으니,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고려청자(高麗靑瓷)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고려청자를 만드는 방법 중에서도 자기를 완전히 건조시키기에 앞서 무늬를 음각하거나 찍고 그 자국에 백토나 적토를 메워 초벌구이를 한 후 청자유를 발라서 굽는 ‘상감법’은 우리 조상만의 독창적인 방법이다. 또한 청자의 은은한 푸른빛은 세계 어디서도 흉내 내기 어려운 독특한 색감을 자랑한다.
이른바 고려청자의 푸른 빛이 ‘비색’이라 불리게 된 것은 12세기 중국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이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견문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化奉使高麗圖經)’에서 “도자기로서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래에 더욱 세련되고 색택(色澤)이 가히 일품이다.” 라고 극찬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비색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으며,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물총새(翡翠) 날개의 푸르름에서 비유한 비취색(翡色)을 의미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색(秘色)’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려청자의 비취색 혹은 비색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고려청자의 제작 방법 자체가 비법이었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데다가, 고려청자도 13세기 이후부터는 점차 쇠퇴하면서 16세기 이후에는 제작 비법의 전수가 끊기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 수수께끼를 풀어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고려청자를 연구한 많은 학자 중에는 비색의 비결이 유약에 있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약에는 철과 이산화규소(SiO2)가 들어 있는데, 이들이 결합하여 형성되는 규산제일철(FeSiO2)이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낼 수 있다는 해석인데, 유약 성분 중에서 규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비색의 근원은 유약의 규소가 아니라 산화철의 철 이온(Fe2+)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었다. 청자를 굽기 전에는 태토와 유약에 3가 철 이온(Fe3+)만이 함유되어 있었으나, 청자를 구운 후에는 Fe3+이온은 대단히 줄어드는 반면에 이가 철 이온(Fe2+)의 양은 증가한 데에 근거한 것이다. Fe3+이온이 Fe2+이온으로 대거 변한 이유는, 고려청자를 환원염에서 굽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굽는 불에는 산화염과 환원염이 있는데, 산소가 충분해서 완전히 깨끗하게 연소되는 불을 산화염이라 하며 붉은색을 띈다. 반면에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연료가 덜 타면서 연기가 나는 불은 환원염인데 푸른색을 띈다. 즉 산화염에서는 불을 때는 데에 필요한 산소 요구량보다 산소가 남는 상태이기 때문에, 여분의 산소가 태토 안에 있는 철분과 결합하여 색이 붉은 산화제2철(Fe2O3)을 만들면서 도자기의 색이 붉어진다. 노천에서 구덩이를 파고 산소 공급이 충분한 산화염 상태에서 굽는 선사시대의 토기 등이 붉은 계통의 색을 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에 환원염이 발생하는 것은, 밀폐된 가마 속에서 불을 때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한 경우이다. 또한 땔감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기 전에 계속 땔감을 공급함으로써, 시커먼 연기와 그을음이 생기면서 가마 안에서는 불완전연소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환원염을 사용하여 불을 때면 땔감이 불완전연소하면서 일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바로 이 일산화탄소는 청자 표면에서 산소를 빼앗아 결합하여 보다 안정적인 이산화탄소가 되려 하기 때문에, 청자 표면에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이로 인하여 청자의 유약이나 태토에서 산소와 결합해 있던 산화제이철은 산소를 빼앗기고 산화제일철로 환원하게 되고, 청자는 푸른색의 빛을 낸다. Fe2O3+CO→2FeO+CO2 즉 철 이온이 Fe3+이온에서 Fe2+이온으로 환원되는 데에 바로 고려청자 비색의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전자현미경 및 광전자 스펙트럼 분석법 등의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위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고려청자 이외에도, 최근 들어 에밀레종(정식 명칭은 성덕대왕신종), 첨성대 등과 같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학문화재들에 숨어있던 비밀을 현대의 과학기술로 풀어내는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고학, 역사학 및 첨단과학기술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학문 분야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로서도 의미가 깊은데, 이에 그치지 않고 찬란했던 우리의 과학문화재들을 복원하여 널리 알리는 데에도 각계에서 더욱 많은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최성우-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이미지 : 청자귀형수주(국보 제 96호; 12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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