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다시 보는 1905년의 아인슈타인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4-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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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인 서기 2005년은 UN이 정한 ‘세계 물리의 해’이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중요한 물리학 논문들을 발표한 1905년으로부터 꼭 100년이 되는 해이며, 또한 아인슈타인이 서거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한다. 다른 학자들이 평생 한편 내기도 어려운 획기적인 물리학 이론들, 즉 광량자 가설, 브라운 운동, 상대성 이론 등 훗날의 물리학에 엄청난 변화와 영향을 끼친 논문들이 세 편씩이나 같은 해에 나왔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1905년을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 부른다.
세계 물리의 해를 맞이하여 전 세계를 ‘아인슈타인의 빛’으로 연결하는 세계 빛의 축제에 우리나라도 참가하는 것을 비롯하여, 국내외에서 수많은 관련 행사와 이벤트가 계획되어 있다. 이러한 행사들 못지않게,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이론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그리고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그의 업적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차분하게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기적의 해로 꼽는 연도는 1905년 이외에 또 하나가 있으니, 바로 1666년이다.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은 그 즈음에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 미적분법의 구상, 프리즘 실험 등을 통한 광학의 체계화 등 과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친 중요한 업적들을 한꺼번에 냈다는 점에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와 비견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역사상, 아니 과학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쌍벽을 이루는 듯한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힌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법칙의 체계화를 통하여 고전역학을 완성하였고, 그가 제시한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 즉 시간과 공간은 독립하여 따로 존재하며 절대적인 좌표와 구조를 지닌다는 관념은 물리학 뿐 아니라 오랫동안 서양의 철학과 사상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905년 당시에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 근무하던 무명의 청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 이론은 바로 뉴턴 고전역학의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을 깨뜨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19세기 이후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 등이 발전시킨 전자기학 체계는 뉴턴의 고전역학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즉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전자기적인 현상을 기술하자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그때마다 바뀌게 되는 모순이 나타났고, 이를 해결하고자 여러 물리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로렌츠(Hendrik A. Lorentz; 1853-1928)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결과와 거의 비슷한 공식을 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물리학자들은 절대적인 시공간이라는 고전역학의 기본 관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점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 반면에, 아인슈타인은 과감하게 생각을 바꾸었다. 즉 “빛의 속도는 어떤 관측자가 보더라도 무관하게 같다”는 광속 불변의 원리에 바탕한 상대성 이론을 통하여 뉴턴의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을 버렸기에, 기존의 모순을 극복하고 역학과 전자기학을 통일된 체계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완전히 분리된 상호 무관계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고 의존하는 것들이며, 움직이는 계에서 측정한 길이와 시간은 고정된 것으로 보이는 계에서 측정한 길이와 시간에 비해 길이는 짧게 보이고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즉 자신이 서 있는 계에 따라서 관측되는 양은 달라져 보인다는 의미이며, 시공간의 절대적인 좌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성(relativity)’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오해하여 “모든 것이 관측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절대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다. 도리어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에 절대 좌표계가 없음을 밝히는 반면에, 어떤 관측자가 보더라도 물리 법칙이 변하지 않고 동일함을 보여주므로, 물리 법칙의 절대성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창안한 것이다.
상대성 이론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공식, 즉 훗날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기본 원리를 제공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인 E=mc2 역시 관측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물리 법칙이 항상 동일함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공식이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을 임의의 가속도계에까지 확장하여 적용시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시공간 및 중력의 실체를 보다 깊게 설명하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다른 두개의 논문, 시기적으로는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앞서 나온 광량자 가설에 관한 논문과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 역시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다. 광량자 가설에서 그는 빛이 연속적인 파동의 형태로서 퍼져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광자(photon)라는 에너지의 덩어리로서 불연속적인 입자처럼 운동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빛의 본질에 관한 물리학 사상 해묵은 논란, 즉 파동설과 입자설 간의 논쟁의 와중에서 단순히 입자설의 입장에 선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복사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진 값을 갖는다는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양자화 가설을 빛의 본질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광량자 개념에 의하여 기존의 이론으로는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웠던 광전 효과, 즉 금속의 표면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도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양자역학 등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은 원자의 존재 및 본질과 관련이 있다. 영국의 화학자 돌턴(John Dalton 1766-1844)이 1803년에 근대적인 원자론을 내놓은 지 거의 100년이 지났건만, 당시의 학자들 중에는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1827년 현미경으로 관찰한 꽃가루가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것을 발견한 식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브라운 운동이라는 개념이 나왔고, 이는 꽃가루뿐 아니라 액체나 기체에서 떠다니는 모든 미세한 입자들 역시 동일한 운동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으나 그 정확한 원인이나 매커니즘을 아무도 밝혀내지 못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원자나 입자의 충돌 효과라는 통계역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매끈하게 풀이함으로써, 원자의 실재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끝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1905년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세 논문은 기존의 19세기 물리학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일거에 명쾌히 풀어내면서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통적인 측면이 있다.

21세기에서 몇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인슈타인의 업적들은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먼저 만물의 궁극과 우주의 근원을 밝히는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에 있어서, 상대성 이론을 빼놓고서는 논의조차 할 수가 없다.
상대성 이론은 그저 어렵고 심오하기만 하므로 우리 일생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의 휴대전화와 자동차용 항법장치 에 위치정보 등을 제공하는 GPS이다. 지구 상공에 떠 있는 GPS 위성들은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지표면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서 시간의 오차를 정확히 보정을 해 주어야만 지구상의 시계와 똑같은 시간을 지녀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가정에서 쓰는 전기의 상당 부분은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얻는 것인데, 원자력 발전이 적은 연료로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E=mc2 이라는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덕분이다.
아인슈타인이 광량자 가설을 통하여 밝힌 광전 효과 역시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쓰이고 있다.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에 널리 쓰이는 전하결합 소자(charge-coupled device; CCD)는 광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줌으로써 영상을 처리하고, 태양전지 역시 햇빛을 받으면 전자가 튀어 나와서 전기가 흐르는 광전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음주 운전자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음주측정기 역시 알코올과 반응하는 특수한 가스의 광전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오늘날 여러 분야에 걸쳐서 각광을 받는 나노과학기술 역시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의 해석을 통하여 원자와 분자의 실재를 입증하지 못했더라면 그 개념조차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가 1917년에 밝힌 유도방출에 관한 원리는 훗날 레이저가 나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는데, 오늘날 레이저가 이용되는 분야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최 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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