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봉이 김선달? - 상표와 도메인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4-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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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세계적으로 가장 '값비싼' 상표로 평가되는 코카콜라 상표

아래 : 최근 유사, 혼동 여부로 법적 분쟁을 벌인 바 있는 커피 체인업체들의 상표



[과학기술과 법(4)]


상표와 인터넷 도메인 -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부활인가?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인터넷의 보편적인 이용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법률적 다툼과 지적재산권 논쟁 등이 여러 분야에 걸쳐서 지속되고 있다. 이중 중요한 것 중의 또 하나가 바로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둘러싼 분쟁이다. 원래 인터넷 도메인명은 인터넷상의 주소, 즉 사이트 위치를 표기하기 위한 기능을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상표와 거의 유사한 구실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표란 원래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 혹은 서비스를 타인의 것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다. 그런데 상표들이 일반 대중과 시장에서 널리 알려짐에 따라 해당 업체의 신용 유지에도 큰 몫을 하며, 상표 자체가 큰 가치를 갖는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저명 상표들의 경우 그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수천억원을 훨씬 넘는다는 보도가 가끔 나온다.
또한, 일반적으로 '상호'를 상표로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프라인의 상호에 해당하는 것이 곧 온라인의 도메인명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회사의 이름이나 상호 자체를 "OOO.co.kr" 과 같이 도메인 명 그대로 사용하거나, 도메인이 회사 정식 명칭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동산을 사람들 간에 사고 팔 수 있듯이 상표 또한 거래의 대상이 되며, 이는 도메인 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도메인 명 자체가 갈수록 상표와 유사한 기능을 하게 됨에 따라, 둘 사이의 충돌 및 법률적 분쟁 등이 국내외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1998년 무렵 외국의 유명한 두 거대 석유회사, 즉 엑슨과 모빌이 합병을 해서 새로운 회사를 구성하게 되었을 때에 그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우리나라 사람이 재빨리 선점해서 거액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도메인 사냥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첫 사례로 기억되는데, 과연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린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상호, 상표로 된 도메인 명을 먼저 등록한 후 비싼 값으로 원래의 주인에게 되파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여 속칭 '사이버 봉이 김선달'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시대에 남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스쿼팅(Squatting)'에 비유하여, '사이버스쿼팅(Cyber-squatting)'이라고 불려져 왔다.
혹은 도메인 자체를 판매하지는 않더라도, 기존의 저명 상표와 동일한 도메인을 확보하여 상업적인 이익을 보려는 행위가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 붐을 타고 국내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여 법률적 분쟁이 잇달았다. 이러한 도메인과 상표의 다툼에 대하여, 예전에 국내에서는 상표법을 유추 해석하고 부정경쟁방지법 등을 적용하여 판결을 내려왔다.

즉 외국의 저명 화장품 업체 ‘샤넬’을 딴 인터넷 주소(www.chanel.co.kr)를 등록하여 향수 등을 판매해 온 국내업자에게는 도메인을 말소하라는 판결을 내린 반면, 발기부전 치료제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비아그라’라는 주소(www.viagra.co.kr)를 등록하여 생칡즙 등을 판매해온 업자에게는 도메인을 사용해도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즉 샤넬의 경우 비슷한 종류의 제품을 인터넷상에서 판매했으므로 상품 혹은 영업주체의 혼동 우려가 있는 반면에, 비아그라와 칡즙은 전혀 다른 제품으로서 소비자들이 혼동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던 듯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상품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저명 상표 이미지를 ‘희석(dilution)' 시키거나 무임승차(free-ride)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등은 논란이 되어 왔다.
미국에서는 어떤 이가 백악관을 딴 사이트(www.Whitehouse.com)를 개설한 후 음란영상 등을 제공하여 물의를 빚었는데, 정작 소송을 제기한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같은 이름의 상표를 오래전부터 사용하여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사과쥬스 제조업체였다.

이러한 불법적인 도메인 점거행위와 상표권과의 충돌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를 보완할 법률적 장치들을 마련하게 되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사이버스쿼팅 등을 금지하는 ‘사이버상의 해적행위 규제법’을 제정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을 개정하여 정당한 권원이 없는 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 등으로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ㆍ상호ㆍ상표 그 밖의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도메인이름을 등록ㆍ보유ㆍ이전 또는 사용하는 행위 역시 부정경쟁행위에로 간주하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주소자원에관한법률’을 새로 제정하여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고 도메인 관련 분쟁 등을 조정할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도메인과 관련된 각종 불법행위나 분쟁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 듯하다. 국내에서 한글도메인 등록 서비스가 시작된 후,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 등 잘 알려진 인사들의 이름을 미리 등록하여 되사갈 것을 요구하거나, 성인사이트에 연결하겠다고 협박하며 거액을 요구하다가 적발되는 사례들이 여전하다. 국제적인 도메인 분쟁의 경우에는 국제도메인관리기구인 ICANN이 정한 도메인분쟁 조정정책(UDRP)에 따라 중재나 분쟁 조정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사이버스쿼팅 혹은 정당하게 등록받은 도메인 명을 빼앗기는 이른바 ‘역스쿼팅’도 빈번하다.

심지어 새 교황의 이름마저 이미 도메인이 선점당한 것으로 알려져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즉 얼마 전에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4월 19일에 교황에 선출된 독일의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의 새로운 교황 이름인 베네딕트 16세 도메인(BenedictXVI.com)은 이미 어느 미국인에 의해 선점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다음 교황이 사용할만한 이름들을 골라서 베네딕트 16세 이외에도 여러 도메인을 매입하였다고 한다.

상표와 도메인을 둘러싼 법률적 다툼과 논쟁은 앞으로도 쉽게 그치지 않을 듯한데, 일부에서는 불법적인 사이버스쿼팅은 물론 막아야겠지만, 지나치게 기존의 상표권 등 기득권자들만을 옹호하려는 태도는 인터넷의 시대정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터넷 도메인에 관한 가장 합리적인 법률적 장치와 규범이 앞으로도 잘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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