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의 거짓과 조작, 그리고 검증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8-0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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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꾸미거나 남을 속이는 사기꾼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진실과 정확성을 추구해야할 과학기술의 세계에서도 역사적으로 볼 때에 사기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과학사상 잘 알려진 사기 사건들의 몇 가지 사례와 그 교훈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인류 조상의 화석을 거짓으로 조작했던 이른바 ‘필트다운(Piltdown) 사기사건’은 고고학상 최대의 가짜 발견사건으로 꼽힌다. 1910년대에 영국 필트다운 지방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찰스 도슨(Charles Dawson; -1916))은 유인원에서 인류로 넘어오는 중간 단계의 인류 조상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과 턱뼈 등을 발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그동안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라 불려온 인류 진화과정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인물로 학계의 찬사를 받았고, 그 화석은 가장 오래된 인류라는 뜻으로 발견자의 이름을 딴 ‘에오안트로푸스 도스니(Eoanthropus Dawsoni)' 혹은 ’필트다운인‘라고 불려졌다.
그러나 이후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X선 투시검사법, 불소 연대측정법과 같은 여러 첨단 과학기술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검증한 결과, 필트다운인의 두개골은 비교적 오래된 다른 인류 조상의 것이었지만 턱뼈는 오랑우탄의 뼈를 가공해서 붙이고 표면에 약을 발라서 오래된 것처럼 꾸몄던 가짜임이 1953년에 밝혀졌다. 사후에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 도슨이 스스로 조작했는지, 아니면 그도 화석발굴꾼 등 다른 사람에게 속았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기 사건들이 특히 고고학이나 고생물학 분야에서 이후로도 가끔씩 불거져 나오고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는 그동안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을 무더기로 발굴하여 명성을 얻었던 한 고고학자가, 실은 유적지에 석기 등을 미리 파묻어놓는 등 거짓으로 날조한 것으로 밝혀져서 큰 충격과 파문을 몰고 온 바 있다. 중국에서도 공룡과 새의 중간 단계로서 시조새라고도 불리는 아르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의 화석이 예전에 발굴되었는데, 그 후 진위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여져 ‘제2의 필트다운 사건’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들과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밀리컨(Robert A. Millikan; 1868~1953)의 최소전하량 측정 실험은 ‘조작이 진실을 이긴 사건’으로 오랫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바 있다. 밀리컨은 이른바 ‘기름방울 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을 통하여 전하량의 최소 단위를 이루는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정확히 측정하였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을 세계적인 공과대학으로 키우고 미국 물리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과학행정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은 물리학과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학부 3학년 무렵에 반드시 거치는 중요한 실험으로 꼽힌다.
20세기 초 물리학계에서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전하량이 존재하는가에 관하여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밀리컨은 모든 전하는 기본이 되는 최소 전하량의 배수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반면에, 펠릭스 에렌하프트라는 물리학자는 기본 전하량의 최소 단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값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물리학자는 거의 똑같은 실험을 하였으나 결국 밀리컨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져 그 공로 등으로 192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반면에 에렌하프트는 학문적인 패배에 그치지 않고 정신질환에까지 시달리는 등 불행하게 삶을 마쳤다.
그런데 그 후 밀리컨의 실험 노트를 검토한 결과, 밀리컨은 자신이 실험했던 모든 데이터를 정직하게 발표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버리고 유리한 데이터만을 골라서 사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데이터를 거짓으로 조작한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의 약점을 적절하게 숨긴 쪽이 결벽에 가깝게 정직하게 실험한 쪽을 이겼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로 여겨졌고, 이는 그동안 자연과학적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적 관점을 지닌 일부 과학사회학자들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밀리컨이 일부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실험상의 엄밀성 등을 고려하여 한 것이지,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수치들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은 전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기존의 견해를 뒤집고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밖에도 ‘인공 다이아몬드 합성 사건’, ‘두꺼비의 혼인혹 실험 사건’ 등 잘 알려진 과학사상 사기 사건들의 몇 가지 예가 더 있다. 또한 2002년에는 획기적인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노벨상 후보’로까지 꼽히던 헨드릭 쇤 박사라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가, 몇 년 동안 연구 결과를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나 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직장인 벨 연구소에서 쫓겨나는 등, 과학자들의 조작 사건은 최근에도 이따금씩 발생하고 있다.
과학자들도 인간인 이상 개인적 명성에 집착하거나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 연구 성과의 조작 등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으며, 최근에는 이를 방지하고자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윤리선언과 도덕성 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거짓이 탄로 나게 마련이고, 특히 과학기술계 만큼은 철저한 검증의 과정을 통하여 사기나 조작 등을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다른 분야에 비하여 도리어 정직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최 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이미지 : 필트다운인의 두개골(위)와 기름방울 실험으로 유명한 밀리컨 (아래)

  • 최경수 ()

      밀리칸의 실험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습니다. oil drop 실험의 경우 electron charge는 fundamental constant입니다. 당연히 실험이전에는 어떤 예측된 상수가 있었던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남겨두었다는것은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밀리칸의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란 e-에 가까운 결과만 남겨두었단 뜻이 아니라, 공정하게 실험이 된 결과만을 남겨두었단 겁니다. 모든 데이터는 밀리칸의 labnote에 적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할때 chamber의 기압이 변한다거나 실험적 오차가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들도 모아두는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 최성우 ()

      오래 전의 제 글에 댓글을 최근 달아 주셨는데...^^   
    밀리컨 실험이 그동안 '조작이 진실을 이긴 사건'으로 알려진 데에는, (제가 본문 중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상당수 과학사학자/과학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서 밀리컨을 비판한 데에서 비롯된 면도 클 것입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밀리컨이 실험 데이터 상당부분을 삭제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명백한 실험오차' 등으로 인한 것인지, 자신의 의도에 유리해 보이는 것들만 남기려 한 것인지가 논란이 된다는 것이지요...     

  • 최성우 ()

      황우석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연구 윤리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실험 데이터를 임의로 취사 선택해서 발표하는 것도 연구부정 행위인 것은 분명 맞습니다... 다만 (말씀하셨듯) 너무 큰 실험오차 등등 데이터로서 의미가 없는 것은 버리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명백하게'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험 데이터의 취사 선택이 연구자의 오랜 경험과 직관 등에 기반한 합당한 것이었는지, 결과를 왜곡할 수도 있는 연구 부정행위인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밀리컨의 실험은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최근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연구 윤리라는 측면에서도 다시금 주목할 요소가 많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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