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 불가능한 인류의 오랜 꿈 - 영구기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08-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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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아주 옛날부터 오랫동안 공통적으로 꿈꾸어왔던 것이 있다. 그 중에 다른 물질을 금으로 바꾸거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을 만들어내려는 연금술(鍊金術; alchemy)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번성한 바 있다. 이에 못지않은 인류의 오랜 꿈이 또 하나가 있으니, 바로 외부에서 동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장치, 즉 ‘영구기관’(永久機關; Perpetual Mobile)이다.
옛날부터 숱한 과학자, 기술자들이 영구기관의 제작에 도전하였는데,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스크류를 이용하여 물을 순환시킴으로써 수차를 계속 돌릴 수 있다는 영구기관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다.
또한 초기 증기기관 연구의 선구자인 영국의 소머셋(Edward Somerset; 1601-1667)은 바퀴 속의 경사면에 납공을 굴려서 그 반동으로 다시 바퀴를 돌릴 수 있다는 영구기관을 고안한 바 있고, 장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는 유체를 이용한 영구기관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자석을 이용한 영구기관, 전기장치로 된 영구기관, 열과 빛을 이용한 영구기관 등 온갖 자연현상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의 영구기관들이 고안되었지만, 물론 그 중 제대로 작동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1840년대에 줄(Joule), 마이어(Mayer), 헬름홀츠(Helmholtz) 등에 의해 확립된 에너지 보존법칙, 즉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서로 형태가 바뀔 뿐, 자연계 전체의 에너지는 항상 보존된다는 것이다. 1800년에 물리학자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가 처음으로 전지를 발명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이것이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영구기관인 줄 알고서 흥분하였으나, 이후 전지 내부의 화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영구기관 중에는 에너지 보존법칙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어 에너지의 흐름 방향을 거스르는 이른바 ‘제 2종 영구기관’도 많이 제시되나,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영구기관‘의 발명자들 중에는 잘못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자기의 발명이 옳다고 확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의적인 사기꾼들도 적지 않았다.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하면 관심 있는 부자나 권력자들로부터 큰 돈을 후원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렸던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18세기 초에 ‘자동바퀴’를 만든 독일의 오르피레우스(Johann Bessler aka Orffyreus)가 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와 추의 낙하를 교묘히 연결하여 바퀴를 영원히 돌릴 수 있다는 어이없는 장치였지만, 그는 장치의 중요부분을 가리고 밑에 숨은 사람이 밧줄을 잡아당기는 속임수로 그것이 영구기관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귀족과 부유층들로부터 거액을 지원 받으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고, 러시아 황제 피오트르 1세에게서 10만 루블을 받고 자신의 자동바퀴를 대여하려 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사기극이 들통 나고 말았다.

미국의 존 킬리(John Worrell Keely; 1827-1898)라는 인물 또한 영구기관에 관련된 아주 탁월한 사기꾼이었다. 킬리의 발명은 단순한 영구기관이라고 하기에는 좀 복잡해서, 무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서 '공감적 진동'에 의해 재결합을 일으켜서 대량의 에너지를 낸다는 그럴듯한 이론을 폈다. 그는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언변이 뛰어났고, 난해한 용어들을 써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대가였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서 ‘킬리 모터회사'를 설립하고 모형을 만든 후, 187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킬리 모터의 공개실험을 하였다. 킬리는 “나는 약 1리터의 맹물로 기차를 필라델피아에서 뉴욕까지 달리게 할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거액의 투자와 후원금을 모았다.
킬리가 죽은 후에 실험실이 있던 건물을 조사한 결과, 마루 밑에 숨겨둔 압축공기 장치의 힘으로 기계를 움직였던 킬리 모터의 사기극이 비로소 밝혀졌으나, 거액의 투자비는 그의 사치스런 생활비로 이미 탕진된 후였다.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인류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구기관의 유혹’에 다시금 빠져들지 모른다. 몇 년 전에는 국내의 한 저명인사가 어느 영구기관 발명가를 후원하고 외신기자회견까지 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되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 적도 있다.

아직도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특허 출원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적이어서, 각국의 특허청 담당자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 특허청의 경우는 이러한 영구기관 특허는 신청서류에 반드시 동작하는 모형을 첨부한다는 조건을 붙임으로써 특허출원 자체를 처음부터 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청에서도 영구기관 특허를 출원하려는 '재야 발명가'들과 특허청 직원들의 실랑이가 해마다 끊이질 않는데, 우리 특허법 제2조에 특허의 대상이 되는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되어 있으므로,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영구기관은 물론 원천적으로 특허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특허청에서는 “이미 같은 것을 다른 사람이 앞서서 출원한 바 있다”는 선원주의 원칙에 의한 거절 방식으로 막무가내인 발명가들을 편법적으로 설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영구기관 발명가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을 다른 창의적인 곳으로 돌려서 좋은 결과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글: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이미지 위 : 오르피레우스의 자동바퀴와 유사한 영구기관

* 이미지 아래 : 달려있는 망치가 바퀴를 치는 힘으로 계속 돌아갈 수 있다고 제시되었던 옛 영구기관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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