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조분의 1까지 측정한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5-11-1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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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과학상을 받는 것만이 과학연구의 최고선은 아니겠지만, 매년 각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전세계의 과학자와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또한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성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해당 분야의 중요한 이슈와 흐름 등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해 2005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빛에 관해 연구한 로이 글라우버(Roy Glauber), 죤 홀(John Hall), 테오도어 핸슈(Theodor Hansch) 등 세 명의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다.
글라우버는 ‘양자광학적 결맞음’이라는 이론으로 빛과 레이저의 특성을 기술해 ‘현대 양자광학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공로로 상금의 절반을 받았고, 홀과 헨슈는 레이저에 기반하여 원자나 분자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을 극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 즉 정밀 분광학을 발전시킨 공로로 나머지 상금의 절반을 나눠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빛은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관심과 연구 대상이었는데, 빛의 본질이 파동인가 입자인가 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양자역학은 빛이 두 가지 성질을 다 지니는 이중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글라우버 교수의 양자광학 이론은 19세기의 맥스웰,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광량자 이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맥스웰(James C. Maxwell)은 전기와 자기 등을 통합한 ‘맥스웰 방정식’을 제시하여 전자기파의 존재를 설명하였고, 빛도 결국은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밝혀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하면 흔히 상대성 이론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정작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것은 빛의 입자성을 밝힌 광량자 가설로서, 빛이 금속 표면에 부딪히면 전자를 방출한다는 ‘광전효과’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1917년에 제시한 전자기파의 유도방출에 관한 이론은 훗날 레이저 발명에 기본원리가 됐다.

레이저(Laser)라는 용어는 영어로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의미의 머리글자만을 따서 만든 합성어인데, 보통의 빛과 레이저 광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레이저 광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가 바로 '결맞음(Coherence)’인데, 백열전구나 형광등과 같은 보통의 빛은 여러 주파수(색)의 빛들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위상(Phase)들도 각각 다르게 헝클어져 있다.
그러나 레이저 광은 단색으로서 하나의 주파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빛을 이루는 파동의 위상 역시 일정하게 ‘결 맞는’ 상태를 보여준다. 즉 사람의 움직임에 비유하자면, 보통의 빛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속도와 보폭으로 무질서하게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데 비해, 레이저 광은 모든 병사들이 일정한 속도로 발을 맞춰서 걸어가는 군대의 행진에 비유될 수 있다.


글라우버 교수의 양자광학적 결맞음 이론은 1963년에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레이저 광을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양자컴퓨터나 양자암호 이론 등에도 응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홀과 헨슈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1천조분의 1' 정도의 정확성으로 빛의 주파수를 구별해낼 수 있는 분광기술을 개발하여 오늘날 휴대전화, 초정밀 시계, GPS 등 각종 첨단과학기술 기기들에 응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는 시간의 기본 단위를 지구의 자전 주기에 기초하지 않고, ‘세슘-133’이라는 원소에서 나오는 특정 빛이 규칙적으로 진동하는 매우 짧은 시간 간격의 ‘9,192,631,770 배’를 1초로 정의하고, 빛이 일정한 시간 동안 진행한 거리를 1m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과 길이의 표준을 정하고 이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정밀 광학기술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와 관련 홀과 헨슈는 빛을 짧은 다발인 펄스(pulse)로 만들고 펄스의 폭을 극도로 좁히기 위하여 다른 많은 주파수의 파형을 조밀하게 합쳤는데, 이들 주파수 성분의 모습이 마치 머리를 빗는 빗처럼 조밀하다고 하여 이른바 ‘주파수 빗 기술(frequency comb technique)’이라고 한다. 빗의 톱니 간격을 극도로 좁히면 더욱 정확한 시간 측정이 가능해지는데, 거의 30억 년에 1초가 틀리는 정도의 정밀한 시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인공위성을 통한 자동위치 측정 시스템, 즉 GPS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GPS 위성은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는데, 위치를 정확하게 식별하기 위해서는 위성이 보내온 정보의 미세한 색상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빛의 양자광학 이론과 정밀 분광학기술은 앞으로도 기초과학 분야 및 통신, 컴퓨터, 우주기술 등 첨단의 응용분야에 널리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글 :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이미지 위 :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테오도어 헨슈 박사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이미지 아래 : 로이 글라우버 교수 (하버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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