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사이보그, SF로부터 현실로...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6-12-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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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소설에 나오던 것들이 거의 그대로 현실화되는 여러 경우 등을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서 자주 소개해왔지만, 그 대표적인 예로서 ‘로봇’을 결코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로봇은 이제 SF의 소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영역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조립, 각종 용접 등 산업 현장에서 인간의 힘든 일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은 이미 쓰인지가 오래 되었고, 화성 등의 우주 탐험, 심해의 작업, 원자력 발전소 등의 위험하고도 대단히 어려운 일들에도 로봇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애완용 로봇과 청소 로봇 등 집안일을 돕는 가사 도우미 로봇들도 국내외에서 실용화된 바 있다.

관련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휴먼로봇 등의 각종 첨단 로봇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면, 미래에는 로봇에 관한 한 SF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SF소설이나 영화 등에 주로 나오는 로봇의 이미지는 사람과 비슷한 친근한 느낌이지만, 원래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다지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처음 로봇이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 1890-1938)로, 1921년에 발표한 ‘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희곡에서 로봇이 처음 등장한다. 로봇(Robot)은 ‘힘든 일’,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말로서, 산업용 로봇 등은 지금도 원래 의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SF, 로봇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저명한 과학자이자 SF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이다. 그는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과 더불어 현대 SF계의 3대 거장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과학저널리스트, 저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서 전세계인들의 찬사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가 쓴 SF소설과 분야는 무척 방대하지만, 특히 ‘로봇 소설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로봇에 대해서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로봇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도 여럿 만들어졌는데, 몇 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바이센테니얼 맨’, ‘아이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아시모프는 1950년에 출간한 책에서 이른바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로봇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되고,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하며, 셋째 이 두 가지 조건을 지킬 경우에는 스스로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차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나와서 미래 사회에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게 되었을 경우, 로봇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이며 로봇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지녀야 하는 문제에 대해 선구적인 예시를 주고 있다고 하겠다.
코믹한 배우로 잘 알려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처음을 보면, 로봇이 자신을 구입한 주인 가족에게 이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영상과 함께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바이센터니얼 맨의 로봇 앤드류는 인간의 감성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보다 인간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데, 원작에서는 법정 투쟁 등을 통하여 그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영화에서는 인간과 로봇 간의 사랑과 로맨스에 주력하는 듯하다. 즉 제목 그대로 로봇 앤드류는 200년을 사는 만큼, 애틋한 감정을 품었던 주인집 작은 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손녀와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사랑하던 사람들을 자꾸 먼저 떠나보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신도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이다.
이처럼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이야기는 바로 뒤에 나온 영화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에서도 역시 주제로 등장한다. 고인이 된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구상했던 유작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완성했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 에이 아이에서는 감정을 지닌 소년 로봇 데이비드가 주인공이다. 데이비드는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둔 부부의 집안에 입양되지만, 아들의 병이 나은 후에 매정하게 버려져서 엄마를 찾아 헤맨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데이비드가 ‘나무 조각 인형으로부터 사람이 된’ 피노키오를 떠올리며 진짜 인간이 되어 엄마의 사랑을 되찾으려 하는 등,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감성을 애절하게 그렸지만 여러 차례 피노키오 동화가 너무 원용된 것 등에 대해서는 평단의 비판이 일기도 하였다.

가장 최근에 개봉된 ‘아이, 로봇 (I, Robot, 2004)’은 같은 제목의 아시모프의 로봇 단편소설 시리즈 중 하나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위의 두 영화와는 달리 로봇의 애틋한 감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로봇의 반란’을 그리고 있다.

로봇 관련 SF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사이보그(Cyborg)'이다. 사이보그란 ’인공두되학(Cybernetics)'와 ‘생체조직(Organism)'의 합성어로서, 인간의 조직이나 장기를 기계 및 전자장치 등으로 바꾼 개조인간을 뜻한다. 1960년대에 만프레드 클라인즈(Manfred Clynes)와 나단 클라인(Nathan Kline)이 고안한 개념으로, 이들은 장래에 낯설고 험한 우주와 같은 환경을 자유로이 여행하려면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중장년층이 청소년 시절에 열광했던 TV 시리즈 ‘소머즈’나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이 바로 사이보그로서, 사고로 팔다리, 시력이나 청력을 잃어버린 남자 혹은 여자에게 인공 눈 혹은 귀, 팔다리를 만들어줘서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특수요원으로 활약하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폴 버호벤이 첫 편을 감독하고 이후 여러 후속 편이 나왔던 영화 '로보캅(Robo Cop, 1987)' 역시 사이보그 주인공의 활약상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흉포한 범인들의 습격으로 온몸에 치명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유능한 경찰관을, 티타늄으로 된 신체 등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사이보그 경찰로 변신시켜 범죄 집단을 통쾌하게 무찌른다는 것이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고 식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개봉 당시만 해도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면서 영화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에는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이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근육질의 스타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가 항상 주연을 맡았던 SF영화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에서도 물론 주인공인 터미네이터는 바로 사이보그이다. 인간이 기계와 컴퓨터의 지배를 받는 미래 세상으로부터 인간 저항군의 중심인물을 처단 혹은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 세계로 급파되는 터미네이터는 임무 수행에 적절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제작된 강력한 사이보그 신체를 지니고 있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는 서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인간과 사이보그가 대결하지만, 2편부터는 중요 인물의 보호 혹은 살해를 놓고 사이보그끼리 대결하는 구도로 바뀐다.

지금껏 3편이 나온 터미네이터 영화 시리즈 중에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1991년에 나온 두 번째 편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Terminator 2 - Judgment Day, 1991)’이 SF나 과학기술묘사 측면에서 가장 볼만하고 흥미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미래 과학기술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머지않은 미래에 기계의 반란으로 인하여 인류가 핵폭발의 참화를 입고 파멸하는 수순을 밟는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관한 것이다. 미래는 과연 예정되어 있는지, 인간의 의지로서 바꿀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뇌와 논란 등이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토론되고 심사숙고된다. 즉 예를 들면, 인간의 뇌를 닮은 혁신적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기술자에 대한 대응 태도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기계와 로봇, 컴퓨터가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인데, 사실 처음에 언급했던 로봇 용어의 원조인 차페크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즉 어느 과학자가 인간의 힘든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하여 로봇을 만들었는데,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리라 기대했던 로봇이 도리어 어려운 일을 싫어하고 인간에게 반항하다가, 결국은 인간을 죽이고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앞서 거론한 ‘아이 로봇’ 역시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른바 ‘로봇 헌장 3대 원칙’을 어기고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로봇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래에 인간보다 나은 로봇이 출현할 수 있느냐, 혹은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벌이질 것인가에 대한 우려 등은, 로봇이라는 말이 생길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숱한 관련 SF영화, 소설들의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인 듯하다.

세 번째는 사이보그들의 모습과 기능 등에 대한 것인데, 첫 편과는 정반대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인간 편의 수호천사로 분한 사이보그 T101은 생체와 기계조직이 결합된 ‘고전적인’ 사이보그인데, 구형 모델이다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보다 힘이 부친다. 반면에 기계와 컴퓨터 편에서 인간 저항군의 핵심 인물을 처단하라고 파견한 T1000은 온몸이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져 자유자재로 변신을 거듭할 수 있는 첨단의 신형 사이보그로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져 거의 불멸불사(不滅不死)에 가까운 이 사이보그는 약간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도 주지만, 이른바 형상기억합금을 발전시킨 미래 첨단과학기술의 산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과하고 지나칠 수도 있으나 필자가 주목한 한 가지는, 기계인 사이보그가 인간의 감성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인간 편의 사이보그 역시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터미네이터에 불과하고, 인간들이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 미래의 재앙 원인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몸을 던지는 터미네이터가 슬피 우는 사람들에게 ‘이제야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겠다’고 말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온다. 이는 곧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이른바 '밈(Meme)'에 의해 인간성을 체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로봇과 사이보그, 앞으로는 영화에서 어떤 모습들로 등장할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된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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