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바이러스와 생화학 무기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7-11-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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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피해나 공포, 혹은 다른 생화학무기 등에 의해 여러 국가나 인류가 위협에 처한다는 것도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의 하나이다. 일부 SF영화나 액션, 스릴러물 등이 범죄 집단이나 국가 비밀부서 등에 의한 생화학 무기의 오용 가능성, 새로운 바이러스의 창궐에 의한 위협, 나아가서는 그로 인하여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 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영화나 소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비슷한 일이 발생한 사례가 최근에도 적지 않으며, 과거 전쟁 등에 생화학무기가 사용된 것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1972년에 공격적 생물무기의 연구, 개발, 생산을 금지하는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이 체결되고 미국, 소련 등 143개국이 비준하여 1975년부터 발효되었으나, 여전히 각국에서는 생화학무기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잇따랐고, 실제 사용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범죄 집단에 의한 생화학무기의 사용 위협을 다른 꽤 오래된 영화로는, 007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인 ‘여왕 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1969)’을 들 수 있다. 초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널리의 뒤를 이어, 조지 라센티가 주인공인 첩보원 제임스 본드로 분한 이 영화는 ‘오메가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퍼뜨리려는 범죄 집단의 음모를 그리고 있다. 다만 범죄 집단의 연구소에 신분을 위장하여 들어간 제임스 본드가, 미녀들의 화장품에 의해 바이러스를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계획을 알아낸다거나, 제임스 본드가 범죄조직 두목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둥, 다른 007 시리즈 영화와 마찬가지로 만화적인 요소들이 많고 여러 가지 설정 역시 별로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무리가 많다. ‘2대 제임스 본드’인 주인공으로 분한 배우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이후의 시리즈부터는 다른 배우로 교체되는 등, 007 영화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듯하다.

1996년에 나온 ‘더 록(The Rock; 1996)’은 거장 마이클 베이 감독에 숀 코너리, 니콜라스 케이지, 에드 해리스 등 쟁쟁한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박진감 넘치는 영화로 나름대로 관심을 보은 바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특수부대원들에 대한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허멜 장군(에드 해리스 분)과 그를 따르는 대원들은 신경작용제의 하나인 독가스가 장착된 미사일을 군부대에서 탈취한다. 그들은 감옥이 있는 미국의 외딴섬 알카트라스에 잠입해 관광객을 인질로 잡고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미 당국과 대치하는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독가스 미사일을 샌프란시스코로 발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가겠다고 협박한다.
미국 정부 당국은 대책을 논의한 끝에 특공대를 알카트라스에 침투시켜 폭탄을 분해하기로 결정하고 생화학 무기 전문가인 스탠리 굿스피드(니콜라스 케이지 분)를 파견하는데, 감옥에 잠입하기 위해 과거 영국 정보부 출신인 일급 죄수 존 메이슨(숀 코너리)와 협조하게 된다. 알카트라스 잠입에 성공한 특공대가 하멜 장군 부대의 공격으로 전멸하는 등 한때 큰 위기에 처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범죄 집단을 모두 사살하고 생화학 무기도 파괴하여 대형 참사의 막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생화학무기의 위협과 공포를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그리기는 했으나, 과학기술적 관점에서 보자면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띄기도 한다. 먼저 영화 속에서 사린가스로 언급된 독가스가 흰색 연기처럼 보이나, 사실 사린가스는 무색, 무취의 가스이다.
이 정도는 영화 상의 ‘시각 효과’를 위한 고심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신경작용제인 독가스에 노출된 병사 등이 피부가 녹거나 수포반응을 일으키는 것 역시 매우 잘못된 장면이다. 또한 생화학탄에 노출된 주인공이 해독을 위하여 가슴 부근에 아트로핀 주사를 꽂는 장면은 허벅지 부근에 주사를 놓는 실제의 아트로핀 응급 처치 방법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서, 그런 식으로 주사를 맞으면 생명이 위험해 진다고 한다.

바이러스나 생화학 무기에 의한 위협 정도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설정의 영화로서 '12 몽키즈(Twelve Monkeys; 1995)'가 있다. 미래인 서기 2035년 무렵 인류는 바이러스 창궐로 인하여 99% 정도가 절멸하고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지하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다. 감옥에 있던 제임스 콜(브루스 윌리스 분)은 특수 임무를 띠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막으려 애쓴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4편까지 나온 ‘다이하드’ 시리즈로 잘 알려진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바이러스 등에 대한 과학적 성찰보다는, 인류를 바이러스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 미래와 과거를 오가면서 분주히 활약하는 ‘다이하드’ 만큼이나 영웅적인 주인공의 모험담이 주된 내용인 듯하다.
각종 바이러스와 미생물 중에서도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이다. 아무래도 급속한 감염과 매우 높은 치사율 등으로 흔히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라고도 일컬어지기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인 듯하다.

이를 심도 있게 다룬 영화들로는 ‘바이러스 (Robin Cook's Virus; 1995)’와 ‘아웃브레이크(Outbreak; 1995)’를 들 수 있다. 같은 해인 1995년에 나온 이 두 영화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에볼라 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점뿐 아니라, 내용의 전개 등에도 비슷한 부분이 꽤 많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의문의 죽음들에 얽힌 미국 의료계의 음모 등에 대항하는 젊은 여의사의 활약상을 그린 ‘바이러스’보다는, 육군 대령인 주인공(더스틴 호프만 분)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둘러싼 각종 비밀을 파헤치며 미국 군부의 음모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아웃브레이크’가 보다 흥미 있고 여러 측면에서 우수해 보인다.
특히 ‘아웃브레이크’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생과 전파 과정, 바이러스의 특성 등을 묘사하는 부분이 과학적으로 오류가 거의 없고 매우 개연성 있게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려 무리한 방법을 서슴지 않는 세력 및 그 이유 등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의문의 출혈열이 처음으로 발병한 것으로 나온 1967년은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견된 해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에 성공하고도 생물학 무기화 시의 보안 등을 이유로 이를 은폐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을 감내하려는 미 군부 일각의 음모를 그린 부분 등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근래에 영국을 위시하여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광우병과 ‘인간 광우병’ 사태, 요즘도 겨울철에 자주 찾아오는 조류 인플루엔자 등을 겪으면서 일반 시민 대중들에게 진실을 솔직하고도 신속하게 알리고 최적의 대응책을 함께 모색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이 방역작업 못지않게 중요해진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정부는 과연 얼마나 자국의 국민들에게 최선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노력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다만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인 원숭이를 하필 한국인들의 선박인 ‘태극호’가 운송하여 미국에 바이러스가 옮아온다는 설정으로 인하여 이 영화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공분을 사기도 하였다. 이 영화가 나올 당시만 해도 에볼라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자연 숙주가 원숭이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후의 연구에 의하면 원숭이는 숙주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박쥐가 아닌가 추정하기도 하지만, 자연 숙주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는 형편이다.

그런데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다른 생화학 무기에 의한 위협이나 테러가 영화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라는 종교단체 관련 인물들은 독가스인 사린가스를 도쿄의 지하철역에 살포하여 십여 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들을 낸 바 있다. 또한 2001년 가을부터 미국에서는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여 9.11 사태 직후 가뜩이나 뒤숭숭한 미국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전 세계에 ‘백색가루 공포증’을 몰고 온 바 있다. 제1, 2차 세계 대전 및 베트남전 등을 비롯하여, 그 이전부터 전쟁에서 생화학무기가 실제 이용된 사례는 매우 많았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역시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 불리는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를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빌미가 된 바 있다.
생물무기로 실제 이용될 가능성이 큰 병원체로서는 탄저균, 페스트, 두창, 에볼라 바이러스 등이 꼽힌다. 최근 탄저균은 원래 소나 돼지 등의 가축에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이지만 가축과의 접촉 혹은 호흡기에 의한 흡입을 통하여 사람에게도 감염되면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탄저균은 특히 ‘내생포자’라 불리는 형태로 전환이 되어 매우 강한 생명력과 전염력을 지니기 때문에 테러에 이용되기에 적합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탄저균 10kg 정도면 수백만 명을 살상할 수도 있다고 한다.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는 중세 및 근대에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사망자를 낸 바 있듯이, 매우 급속히 전염되며 치사율도 아주 높다. 근래에는 백신의 발달로 예전보다 피해 정도는 줄었지만, 1990년대에 인도에서 크게 유행하는 등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천연두, 혹은 마마라 불리는 두창 바이러스는 25년 전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고된 전염병이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욱 위험한 생물무기 후보로 여겨진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두창 예방 백신을 더 이상 접종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연구실에 보존되어 있는 두창 바이러스가 테러단체 등에 의해 퍼진다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역시 감염 시 높은 치사율을 보이기 때문에 생물무기 후보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창궐이나 생물 무기에 의한 인류 멸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 모르나, 과연 바이러스가 실제로 인류를 완전히 멸종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숙주에 기생하여 살 수밖에 없는데, 숙주를 모두 다 죽게 만들면 자신들에게도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 근거이다.
그러나 중세, 근대의 페스트 대유행 사례나 20세기 이후 스페인 독감 등 각종 인플루엔자에 의한 대규모 희생, 에이즈의 발병 예 등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등에 의한 인류 멸망의 가능성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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