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진화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9-12-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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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탄생 200주년인 올해도 다 갔는데, 늦었지만 관련 글 하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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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인 올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주장하여 세계 과학사와 지성사에 혁명을 일으킨 생물학자 다윈(Charles Darwin)이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학술대회 등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는데, 진화론의 의미는 무엇이고 다윈 이후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지, 또한 21세기인 오늘날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일 듯하다.

다윈의 진화론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종의 가변성으로 생물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종들이 단 하나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진화에 의해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면서 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넷째는 단계주의 개념으로서 진화는 단절이나 불연속성을 보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마지막 다섯째는 다윈 진화론의 핵심개념인 자연선택(自然選擇)으로서, 냉혹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연에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고 만다는 이론이다.
진화론에 있어서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한 자연선택은 단순하게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절멸시키고 적응한 자들을 살아남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즉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우수하고 유리한 형질을 집단 속으로 퍼뜨리게 되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을 이루게 됨에 따라, 자연선택은 진화를 창조적으로 추동시키는 원동력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진화론은 생물학 이론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에, 다른 학문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 적자생존의 개념을 사회과학분야에 적용한 사회적 진화론이 발전하였고 인간의 기원문제 등에 대해 신학과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큰 논란이 되풀이되었다.

물론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을 주장한 학자들은 있었으며, 다윈 이후로도 진화의 동인으로서 자연선택만이 유일한 요소로 간주되었던 것은 아니다. 즉 라마르크 등이 주장한 용불용설(用不用說)에 의한 획득형질의 유전 여부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고, 자연선택 이외에도 돌연변이, 교잡, 격리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해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연구되어 왔다.
또한 멘델의 유전법칙 발견 이후 유전학이 발전하고 20세기 중반 이후 분자생물학이 출현하여 유전자 및 생명현상의 본질 등이 밝혀지면서 진화론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즉 진화의 요인 및 경로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고, 따라서 진화론은 더욱 종합적이고 현대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21세기에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새로운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진화론은 생물의 성장 등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 물론 생물이 발생으로부터 성장에 이르는 과정은 미시적으로는 유전자에 의해 조절되면서 각 기관과 형질이 발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생물의 성장 역시 진화에 의해 적지 않게 좌우되면서 그 방향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것이 동물의 2차 성징을 포함한 성적인 성장과 선택과 관련된 것들이다. 다윈 역시 수컷의 고환이나 암컷의 난소 등 생식에 필요한 1차 성징 및 암수의 차이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또한 남성의 수염 등 2차 성징 역시 성적인 선택의 과정에서 진화된 형질로 풀이되곤 한다.
예를 들어, 수사슴의 큰 뿔이나 수사자의 갈기 등은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의 과정에서 무기나 보호물 등의 역할로서 발전해왔고, 공작 수컷의 화려하고 긴 꼬리 역시 짝짓기의 과정에서 공작 암컷을 유인하는 구실을 한다.
최신의 진화론은 동물의 육체적 성장 뿐 아니라, ‘마음’의 성장에 관해서도 새로운 측면들을 설명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즉 진화심리학은 생물학적 진화론의 원리를 인간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뇌의 정보처리에 의해 행동이 일어나는 방식 등에 적용하여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 분야이다.
이에 따르면, 현대인의 마음과 행동 양식이 작용하는 방식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 조상의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하여 습득된 것으로 설명된다. 즉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 등을 하는 동안 사냥을 하여 식량을 구하거나 맹수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안정된 잠자리를 확보하는 등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합한 신경회로망이 서서히 발달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짝짓기의 과정과 전략, 즉 남성들은 얼굴과 몸매가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들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남성을 배우자감으로 선호하는 경향 역시 오랜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무의식적인 심리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진화론은 다른 분야의 학문들과도 융합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융합된 것이고, 진화이론의 관점에서 경제현상을 분석하는 진화경제학이 신생 학문으로 선보이면서 기존의 경제이론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진화론과의 융합은 드디어 의학 분야에도 적용되면서, 이른바 다윈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 분야도 탄생하게 되었다. 현대 의학에서는 대부분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현상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질병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예방과 치료 방법 등을 강구한다. 반면에 다윈의학에서는 사람의 몸이 왜 질병에 취약한지 등을 진화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하여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즉 다윈의학에서는 인체의 기능을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산물로 보면서 여러 질병과 증상 등을 설명한다. 따라서 예전의 의학상식으로는 질병에 의한 것으로 보는 증후들도, 다윈의학에서는 인체의 적응에 의해 진화된 몸의 방어체계라는 식으로 새롭게 해석하곤 한다.
예를 들어, 감기의 대표적 증상인 기침은 허파로부터 이물질을 제거하여 폐렴 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보며, 빈혈 또한 세균 등이 필요로 하는 철분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산모의 입덧 역시 태아의 조직과 분화기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독소와 해로운 음식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려는 방어체계라는 것이다.
다윈의학은 현대인에게 많은 질병, 즉 이른바 문화병이라고도 불리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파악과 치료방식 등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류가 수렵이나 채집생활을 하던 시대에는 비만이나 당뇨병, 각종 심장질환 등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체의 기능과 적응상태는 원시시대에 적합하게 설계된 채로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에, 산업사회 이후 인류는 갑자기 풍족한 영양과 소금, 설탕, 지방 등을 과다하게 섭취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성인병이 창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진화론은 다윈 등에 의해 정립된 이후 이론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생물의 성장 및 생명 현상의 본질 등에 대해 보다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른바 ‘통섭’의 시대 즉 융합과학이 대세를 이루는 21세기에 와서, 진화론은 다른 여러 학문들과도 결합하여 새로운 방법론과 청사진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으로서, 그 의의와 중요성은 한층 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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