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 영화적 상상력과 현대물리학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4-12-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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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화제를 낳았던 SF액션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가 최근 국내외에서 개봉되었다. 거장으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감독의 인기 덕분인지, 그간 SF영화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에서 도리어 더 많은 관객이 몰렸던 듯하다.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블랙홀, 웜홀 등에 대해 살펴보면서, 상대성 이론 등 현대물리학과 영화적 상상력을 비교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블랙홀과 웜홀>
인터스텔라는 갈수록 척박해지는 지구를 대신하여 인류가 거주할만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내용으로서, 우주여행에 관한 영화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단순히 우주여행을 주제로 한 범상한 SF액션이 아니라, 현대물리학의 이론 등을 접목하여 개연성을 높이려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특히 화제가 된 장면은 ‘블랙홀(black hole)’의 모습이다. 놀란 감독과 특수효과팀은 블랙홀을 실제와 가깝게 묘사하기 위하여, 이론물리학자 킵 손 등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킵 손은 이론적 계산을 바탕으로 블랙홀의 컴퓨터 그래픽 등에 조언을 해 주었지만, 영화제작진과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킵 손 역시 영감을 얻어서 블랙홀 등에 대한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대물리학 이론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블랙홀은 SF나 천체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대부분 알만한, 즉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뜻의 일상적인 용어로까지 쓰이고 있다. 빛조차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처음에는 학자들의 이론적 상상에서 탄생하였으나, 현대물리학과 관측천문학이 발전하면서 블랙홀이 실제로 우주 공간에 다수 존재함이 입증되었다.
블랙홀은 별의 진화의 마지막 단계, 즉 태양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별들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중심부의 물질들이 급속히 응축되어, 밀도와 질량이 극대화되면서 탄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블랙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이른바 ‘웜홀(worm hole)’, 즉 ‘사과 속의 벌레구멍 같은 공간’으로 우주선이 빠져 나아가면서 지름길로 우주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축지법을 쓰는 듯한 웜홀에 의한 우주여행은 킵 손이 ‘시공간의 웜홀과 성간여행에서의 그 유용성’(Wormholes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r Travel) 등의 논문에서 제시한 바 있고, 이후 여러 SF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해왔다. 또한 웜홀의 빠져나오는 공간, 즉 출구를 이른바 ‘화이트홀(white hol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웜홀이나 화이트홀 등은 일부 이론물리학자들의 가설 수준으로서, 존재가 증명된 적은 없다. 또한 설령 웜홀이 존재한다고 해도, 실제로 우주선이 무사히 진입하고 통과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다.

<상대성 이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으로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조나단 놀란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4년 간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다 해서 역시 화제가 되었다. 그 덕분인지 상대성 이론을 어느 정도 알아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오기도 한다. 또한 앞서 설명한 블랙홀의 묘사 역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른 중력렌즈 효과 등을 접목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영화를 보면 블랙홀이 단순히 검은 것이 아니라, 주위에 빛줄기들이 쏠려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에 의해 주변 공간이 휘면서 생기는 중력렌즈 현상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묘사한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증명 역시 이와 관련이 크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이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천문학자 에딩턴은 1919년에 일식이 있을 때에 태양 근처에 보이는 별의 위치를 관측함으로써 이를 해결하였다. 즉 기존의 뉴턴역학으로 계산한 것에 비해 별의 위치가 달라져 보인 셈인데,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공간이 휘어서 빛의 경로가 달라질 것이라 예측하였고, 관측 결과 그 값이 정확하게 일치함으로서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제로 증명된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즉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선 이론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앞서서 1905년에 발표한 이론인데, ‘등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완전히 분리된 상호 무관계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고 의존하는 것들이며, 움직이는 계에서 측정한 길이와 시간은 고정된 것으로 보이는 계에서 측정한 길이와 시간에 비해 길이는 짧게 보이고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즉 자신이 서 있는 계에 따라서 관측되는 양은 달라져 보인다는 의미이며, 시공간의 절대적인 좌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확장하여, 등속 뿐 아니라 가속을 가진 좌표계에서의 상대적인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이며,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수정한 중력에 관한 이론이다. 즉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관성질량(慣性質量)과 중력질량(重力質量)이 동일한데, 이는 기존의 뉴턴역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또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모두 광속 불변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데, 즉 빛의 속도는 사물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속도이며 어느 좌표계의 관찰자가 보아도 동일하다는 원리이다.
상대성 이론은 우주여행에서나 필요할 뿐 우리 일상생활과는 무관하다고 생각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의 휴대전화와 자동차용 항법장치에 위치정보 등을 제공하는 GPS이다. 지구 상공에 떠 있는 GPS 위성들은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지표면과는 시간의 흐름이 약간 다르다. 미세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서 시간의 오차를 정확히 보정을 해 주어야만 지구상의 시계와 똑같은 시간을 지녀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면 중력이 큰 새로운 행성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에, 지구에 있는 사람들보다 나이를 덜 먹는다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외계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시간으로 몇 년 정도로 차이가 생기려면 그 행성의 중력은 지구에 비해 엄청나게 커야하는데, 과연 그 정도의 우주선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이밖에도 다소 황당하거나 과학적으로 전혀 개연성이 없는 장면들도 꽤 등장하긴 하긴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영화적 상상력을 현대 물리학 이론과 접목시키려 나름대로 무척 애쓴 영화로 보인다.

- 최 성우 -

  • 빛의혁명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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