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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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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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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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물리학자 중에서, 실험에는 서툴렀다고 평가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양자역학의 창시자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직전에 수많은 독일의 과학자들이 히틀러의 나치가 지배하던 독일을 떠나서 망명을 했던 반면, 하이젠베르크는 끝까지 조국을 지켰다. 그의 정치적 입장 등에 대해서는 비판 및 논란이 적지 않지만, 아무튼 그는 독일 원자폭탄 개발계획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독일이 미국보다 앞서서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못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총책임자였던 하이젠베르크가 마지못해 히틀러에게 협력하기는 했지만, 원자폭탄 개발을 고의적으로 태업했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진전을 보지 못했다.”라고 설명하곤 하였다. 이 역시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연합국에 의해 독일의 주요 과학자들이 ‘전범’으로 몰려 체포되었을 때에, 그의 동료들은 한목소리로 이와 같은 변론을 해왔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그는 구금에서 풀려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하이젠베르크가 이론물리학자 출신으로서 실험에 서툴렀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과 실험적 능력이 필요한 원자폭탄 개발을 총지휘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지도교수가 그의 실험적 능력에 크게 놀라면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 온다.

개별 물리학자들의 이론, 실험적 능력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노벨 물리학상에 있어서 이론 물리학자와 실험 물리학자는 어떤 쪽이 더 수상하기 쉬울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실험 물리학자가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론은 검증을 거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리는 반면에,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은 대부분 곧 바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몇 명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이러한 경향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상대성 이론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반면, 오해되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 상대성 이론 자체에 대한 오해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해서 대중들이 지니는 커다란 오해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라는 공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라고 알고 있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결코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공적은, 광양자 이론이다. 광양자 이론(光量子理論; light quantum theory)이란, 빛이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갖는 입자인 광자(photon)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된 바 있다. 이 해는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이론 뿐 아니라, 특수 상대성 이론, 브라운 운동의 해석 등 물리학 사상 획기적인 업적이라 평가될만한 중요한 논문을 3편이나 발표하여 이른바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도 불린다.

광양자 이론은 이른바 광전효과의 해석, 즉 금속 등의 물질에 일정한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추었을 때, 물질의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잘 설명해 주므로 실험적으로 비교적 일찍 입증이 되었다. 반면에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제시하는 상대성 이론은 실험으로 입증하기가 워낙 어렵고, 물리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도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19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당시, 수상의 공적은 ‘광전효과의 연구 및 이와 관련된 이론 물리학에 기여한 업적’, 즉 광양자 이론임이 명시되어 있었고, 상대성 이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그의 업적 중에서 광양자 이론은 별 것 아니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광양자 이론 역시 획기적이고 중요한 업적이며, 그가 이를 통하여 원리를 명확히 밝힌 광전효과는 오늘날에도 디지털 카메라, 태양전지 등 여러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비디오 기기 등에 널리 쓰이는 CCD(Charge-Coupled Device; 전하결합소자)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20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은 뉴턴 이후 수백 년간 유지되어 온 고전적인 시공간 개념 및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혁명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이 이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씁쓸하고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당시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의 보수적 경향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무튼 이론 물리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를 반증하는 사례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 – 1947)는 에너지의 양자화를 설명하는 보편상수 h, 즉 플랑크 상수를 도입하여 양자역학의 길을 연 인물이다. 이후 슈뢰딩거, 하이젠베크르, 디랙 등이 체계화시킨 양자역학은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획기적인 물리학 이론으로서, 20세기 초반 현대물리학의 혁명 시기에 중추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플랑크 역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매년 ‘만년 후보’에 오르다가, 1918년에야 가까스로 노벨상 수상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가 있었다. 플랑수 상수 도입의 필요성이 제시된 흑체복사에 관한 이론을 처음 발표한 것이 1900년이었으니, 이후로도 한참 세월이 흘러서 그의 나이 60이 되어서야 노벨상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그 무렵에는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는 많이 늦은 편이다.

인도 출신의 물리학자인 보즈(Satyendra Nath Bose; 1894 - 1974)는 물리학 이론에서 이른바 ‘보즈-아인슈타인 통계(Bose-Einstein statistics)’로 유명하며, ‘인도의 아인슈타인’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이 통계이론에 부합하는 소립자를 그의 이름을 따서 ‘보존(Boson)’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그 역시 물리학의 교과서를 새로 쓰게 하는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셈이다. 그러나 보즈 역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적은 없다. 혹 제3세계 국가였던 인도 출신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인도 출신 물리학자였던 라만(Chandrasekhara Venkata Raman; 1888 - 1970)이 광학에서 ‘라만 효과의 발견’이라는 실험적 업적으로 1930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역시 노벨상 수상에 있어서 이론 물리학자와 실험 물리학자의 격차를 암시하는 경우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듯싶다.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은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지만, 역시 아직까지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의 대중적 명성에 비해 구체적 업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우주론 등에 관한 그의 주장은 대단히 획기적인 이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혁명적인 이론 역시 실험 등으로 검증되기가 매우 어렵거니와, 설령 입증된다 해도 앞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므로 호킹 박사는 앞으로도 노벨상을 받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다만 물리학 이론 자체의 업적보다는, 현대물리학의 대중적 이해에 크게 공헌한 그에게 노벨상 위원회가 예우(?) 차원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생긴다면, 생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겠다.


- By 최성우 -


* 이미지 :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한 하이젠베르크와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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