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5-05-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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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는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 노벨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대해 무척 비판적인 입장이다. 특히 이웃 일본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언제쯤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있는가?’는 식의 노벨과학상 조급증이 더욱 불거지곤 한다. 필자가 그간 일간지 등에 이를 비판하는 칼럼도 여러 차례 쓴 바 있지만, 우리의 노벨상 조급증이 쉽게 떨쳐지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과학 분야 노벨상의 한국인 수상자가 처음 배출될 때까지 과학기술계는 “우리나라 과학자는 왜 아직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는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노벨상을 둘러싼 우리네 세태는 그렇다 쳐도, 아무튼 노벨상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최근 들어 몇몇 분야,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의 적절성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노벨상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평가도 일부 나오지만,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 초가 되면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온통 스웨덴 한림원에 쏠리곤 한다.
노벨상을 둘러싼 안팎의 정치적, 사회적 논란과는 별개로,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 노벨상을 누가 어느 분야에서 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돌이켜 본다면, 당시 과학계의 흐름과 중요 이슈 등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다. 필자가 대학 4학년 때에, 중간고사 시험문제에 그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업적과 관련된 문제가 나와서, 다들 ‘노벨상 문제’라고 입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

과학 분야 중에서도 노벨 물리학상은 이론물리학보다는 실험물리학을 전공한 물리학자가 수상에 더 유리하다는 얘기는 앞의 글에서도 비교적 상세히 논한바 있다. 그 예로서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과 함께 거론했던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는 필자의 예상대로(?) 아직까지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하였다.
2012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광학 분야의 두 명의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다. 즉 프랑스 콜레주드프랑스의 세리지 아로쉬(Serge Haroche) 교수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데이비드 와인랜드(David Wineland) 박사가 2012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들의 업적은 양자 입자를 관찰하고 측정하고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개별적인 양자(quantum) 입자의 성질을 파괴하지 않은 채 직접 관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양자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분야 역시 실험물리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양자광학에서의 업적으로 최근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2005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 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빛에 관해 연구한 로이 글라우버(Roy Glauber), 죤 홀(John Hall), 테오도어 핸슈(Theodor Hansch) 등 세 명의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는데, 이들은 각각 현대 양자광학의 토대를 제공하고 정밀 분광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실험 물리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기가 대체적으로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용적이며 중요한 발명품을 남긴 기술자나 발명가, 공학 분야의 공로자에게도 노벨 과학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래 과학 분야 노벨상, 즉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은 기초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이 받는 것으로서, 이는 노벨상을 창시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만약 뛰어난 발명가나 공학기술자에게도 일반적으로 노벨상이 주어졌다면, 전구, 축음기, 영화, 전화 송신기 등 획기적인 발명품을 무더기로 남겼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필자가 보기에 노벨상을 적어도 두세 개쯤은 받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에디슨이 송전 사업 분야의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와 공동으로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될 뻔 했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다만 무선전신의 발명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등이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 발명에 가까운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또한 최근의 노벨 과학상, 특히 물리학상은 정보통신(IT)혁명 및 과학기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변화에도 부합해서인지, 기초과학 뿐 아니라 중요한 기술적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도 간혹 수여되는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된다. 2000년대 들어서, 물리학적 업적이라기보다는 공학적, 기술적 업적을 인정받아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 물리학상은 이처럼 기존의 이론/실험 물리학 뿐 아니라, 이제는 ‘첨단기술’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갖가지 첨단과학기술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 반도체, 레이저, 광통신, 여러 디지털 기기 등과 역대 노벨 물리학상이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톺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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