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2)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5-05-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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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노벨 발명상’ 혹은 ‘노벨 공학상’이라는 분야는 없기 때문에, 인류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획기적인 발명품이나 기술적 진보를 남기고서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공학의 경계가 급격히 모호해지는 2000년대 이후에 와서야,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 성취에 가깝게 보이는 업적들로 노벨상(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기초과학의 발전에 공헌한 이들로 한정되었다.

여기에서 다소 예외로 보이는 경우가 무선전신의 발명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이다. 무선전신의 연구는 물론 상당한 전자기학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만, 마르코니는 발명가이자 사업가로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지, 전자기학 자체를 연구하여 업적을 남긴 물리학자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선전신의 기초가 되는 전자기파의 존재는 패러데이, 맥스웰 등이 이론적으로 예측을 하였고, 이후 헤르츠가 실험을 통하여 입증을 한 바 있다. 또한 무선전신 이전에 널리 실용화되어 있던 유선전신은 모스 부호의 창시자인 모스가 발명한 바 있었다.
마르코니는 이들을 결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즉 무선전신을 창안해 낸 것이다. 물론 이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자, 아직도 인류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기술적 공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이기는 하지만, 마르코니가 물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선전신의 발명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실용화하는 과정에서 전자기파의 실체 등을 잘 파악 수 있게 된 점이 아닐까 싶다. 즉 그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보다도 더욱 큰 공헌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리층(ionosphere; 電離層)의 존재 발견이다.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전자기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이 단거리는 가능할지 몰라도, 장거리 통신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송신한 전자기파가 수신기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계속 위로 올라가서 결국 대기층에서 소멸되고 말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마르코니는 그들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선전신의 연구를 계속하여,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무선통신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사이에 둔 영국과 캐나다의 대륙 간 무선 송수신에도 성공하여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리학자의 회의적 예상과는 달리 원거리 무선통신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지구 상공에 존재하는 전리층 덕분이었다. 대기권에서 이온 등으로 이루어진 전리층이 전자기파를 반사시키는 역할을 하여, 대륙을 가로질러 그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르코니도 처음부터 전리층의 존재를 알고서 원거리 무선전신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행운이 따랐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발자의 뚝심이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둔 사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오늘날에도 깊이 되새겨볼만한 교훈을 준다고 하겠다. 마르코니는 결국 무선 연구 분야의 라이벌이자 동료라고 할 수 있었던 물리학자 브라운(Karl F. Braun; 1850-1918)과 공동으로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마르코니보다 1년 앞선 1908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 역시 기초과학보다는 공학, 기술적 성과에 가까운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즉 컬러사진술을 고안한 프랑스의 가브리엘 리프만(Gabriel Lippmann; 1845-1921)이 당사자인데, 그는 마르코니와 같은 기술자, 사업가 출신은 아니고 물리학자로서 여러 연구를 하였지만 그를 바탕으로 몇 가지 발명품도 남겼다.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한 컬러사진법 역시 그가 창안한 대표적인 기술이지만,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후세의 평가가 붙기도 하였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니콜라 테슬라와 함께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것은 앞 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에디슨이 송전방식으로서 교류 대신 끝까지 직류방식을 고집했던 사실, 또한 그 과정에서 상대방인 교류 송전 진영을 악의적으로 비방하였을 뿐 아니라 교류 전류를 이용한 사형집행용 전기의자까지 발명하여 ‘악명’을 떨쳤다는 점, 한때 그의 연구소에서 일했던 니콜라 테슬라가 나중에 에디슨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 결국 테슬라의 교류 방식이 최종 승리를 거둔 이야기 등은 필자가 이미 예전의 다른 글이나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을 한 바 있으므로 다시 부연하고 싶지는 않고, 테슬라에 대해서만 간략히 더 언급을 하고자 한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전기공학자이자 발명가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는 오늘날에도 평가가 좀 엇갈리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에디슨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테슬라의 일생과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업적 등을 조명한 책이 최근 잇달아 출간되면서 뒤늦게 각광을 받게 된 점도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의 전기 중 일부는 너무 과장되거나 근거가 부족하고 비약이 심한 듯도 싶다.
에디슨과 테슬라가 결국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좀 엇갈리는데, 테슬라가 에디슨과 같은 일개 발명가와 함께 노벨상을 받게 될 것을 싫어해서 먼저 수상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있고, 에디슨이 경제적으로 곤란에 처해 있던 테슬라에게 거액의 상금이 걸린 노벨상이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잔인한 술수를 부렸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에디슨이나 테슬라와는 전혀 무관하게, X선 회절 등을 연구한 브래그 부자(父子)에게 돌아갔다.

에디슨 자신은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발명과 연구가 단초가 되어 훗날 그것을 심층적으로 더 연구한 과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일도 생겼다. 즉 이른바 ‘에디슨 효과’라 불리는 열전자 방출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 현상을 에디슨이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에디슨이 백열전구에서 필라멘트의 증발에 의해 유리구가 까맣게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구 안에 금속판을 삽입하였는데, 이 금속판이 필라멘트에 대해 양전위(陽電位)이면 전류가 흐르고, 음전위이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방향성을 지니는 전류를 에디슨 효과라고 하는데,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열전자 방출 현상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디슨은 자신이 발견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했고, 훗날 열전자 방출에 대해 더 많은 연구한 오웬 윌란스 리차드슨(Owen Willans Richardson)이 이 업적으로 1928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만약 에디슨이 에디슨 효과이건, 그 밖의 전기전자 분야 등에서 좀 더 기초과학적 측면의 공적을 쌓았더라면, 그 역시 노벨상 수상자 대열에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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