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3) - 트랜지스터 발명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5-06-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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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소개한 무선전신, 컬러사진기술 이외에도, 기술적인 성취인 듯 보이는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경우가 꽤 더 있다. 아마도 대표적인 경우가, 트랜지스터(Transistor)와 레이저(Laser)일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에 발명된 이후, 전기전자공학기술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와 같은 정보통신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웬만한 생활가전제품에도 트랜지스터는 들어가 있다. 도리어 이제는 ‘트랜지스터가 없는’ 전자기기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이다. 첨단 반도체기술을 이용한 초고집적회로(VLSI)가 새로운 정보통신혁명을 주도하는 오늘날에도, 그 기본 바탕에는 트랜지스터 기술이 있다.
레이저 역시 마찬가지이다. 레이저 프린터나 광디스크 픽업장치 등의 전자제품뿐 아니라, 절단가공, 용접 등에 쓰이는 산업용 레이저, 각종 수술에 쓰이는 의료용 레이저 기기에 이르기까지, 레이저 역시 많은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는 대표적인 첨단기술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트랜지스터와 레이저야 말로 기초과학보다는 공학기술적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약간 경우가 다르다. 즉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는 공학기술적으로도 매우 혁명적인 업적이지만, 기초과학, 즉 물리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미국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이 처음으로 발명하였다. 세 사람 다 물리학자였으며, 공동으로 중요한 발명을 완성한 독특한 사례를 남기기도 하였다. 트랜지스터 발명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세 명이 공동으로 수상한 바 있다.
트랜지스터는 규소나 게르마늄으로 만들어진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세 개의 층으로 접합하여 이루어진다. 즉 이미터(emitter; E), 베이스(base; B), 컬렉터(collector; C)가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면서 신호를 증폭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이전에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전자부품으로서 진공관이 있었다. 그러나 트랜지스터에 비해 부피가 크고 전력도 많이 소모하였으므로, 진공관은 빠른 속도로 트랜지스터로 대체되었다. 수많은 진공관을 이용한 에니악(ENIAC) 등의 초기의 컴퓨터들은 크기가 거의 집채만 했을 뿐 아니라, 전력 사용량도 엄청나서 작동할 때마다 주변의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소형의 트랜지스터는 증폭작용과 전자신호를 위한 스위치, 게이트 등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각종 아날로그, 디지털 회로 등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IC, VLSI 등의 집적회로는 전자 칩에 수많은 트랜지스터 및 관련 전자요소들을 집약시켜 놓은 것으로서, 크기만 아주 작아졌을 뿐 역시 트랜지스터가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다.

트랜지스터 발명의 핵심인물인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1910-1989)는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고체물리학의 에너지 띠 문제 등을 비롯하여 이론과 실험 물리학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와 같은 물리학적 배경이 없었더라면 트랜지스터 발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동 발명자인 바딘(John Bardeen; 1908-1991) 역시 탁월한 물리학자였다. 그는 반도체와 금속의 전기전도, 원자의 확산 등 고체물리학 전반에 관하여 폭넓게 연구하여 여러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에는 초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여,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초전도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였다. 오늘날에도 고체물리학 교과서의 초전도 챕터에 빠짐없이 나오는 BCS이론은 바딘, 쿠퍼, 슈리퍼 세 물리학자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바딘은 초전도 이론을 세운 업적으로 1972년에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즉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최초의 물리학자가 된 셈이다. (이보다 앞선 퀴리부인은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공동 발명자인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1902-1987) 역시 물리학 전공자로서, 벨전화연구소에서 고체 표면의 물성 및 반도체 연구에 주로 종사하면서 트랜지스터 개발에 동참하였다.
즉 트랜지스터 발명의 삼총사인 물리학자들이 모두 고체 물리학, 반도체 물리학의 대가로서, 이는 단순한 기술적, 공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발명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 물리학적 지식과 실험 능력 등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또한 트랜지스터는 전자공학뿐 아니라, 반도체물리학, 고체물리학의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발명자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하겠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터널링 현상, 즉 뉴턴 시대의 물리학인 고전역학적 관점에서는 해석이 불가능했던, 포텐셜 장벽을 뛰어넘는 양자역학적인 터널링 효과는 트랜지스터에 의해서 실증적으로 잘 입증이 되었다. 트랜지스터에서는 전자들이 에너지 장벽을 뛰어넘는 현상들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 발명의 또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세 명의 물리학자들이 공동으로, 그러면서도 각자의 장점을 살리면서 효율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여 중요한 발명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에디슨과 같은 개인 발명가들이 혼자서 중요한 발명을 한 적도 많았으나, 20세기 초중반 과학기술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보다는 여러 명이 공동으로 발명을 하거나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된 것이다. 또한 벨전화연구소라는 기업연구소가 트랜지스터 개발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지적재산권의 측면, 즉 트랜지스터 발명의 삼총사인 세 명의 물리학자가 ‘직무발명’이자 공동으로 발명을 완성한 것에 대해 특허제도 등의 관점에서도 조명해볼 만한 점들이 적지 않은데, 주제에서 좀 벗어날 뿐 아니라 얘기가 너무 길어질 듯하여 이에 관해서는 혹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By 최성우

  • 강인규 ()

      물리1 수업에서 잘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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