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8) - 그래핀과 노벨과학상 조급증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01-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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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C)는 지구상에서 매우 흔한 원소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원소이기도 하다. 인간과 동식물 등 생물체를 이루는 분자들의 기본 요소이면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원소이다. 대기 중에서는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가장 많이 존재하며, 유기화합물의 중요한 성분으로서 탄소는 지구상에서 식물의 광합성, 동물의 호흡 등 각종 경로를 통하여 순환을 하고 있다.
 단원소 물질로서 탄소는 예전에는 숯을 비롯한 비결정형 탄소와 흑연, 다이아몬드의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왔다. 비결정형 탄소는 흑연의 특수한 형태로 볼 수도 있겠으나, 화려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새까만 숯덩이나 흑연과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일견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다이아몬드가 숯과 마찬가지로 탄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18세기말 영국의 화학자 스미슨 테넌트(Smithson Tennant; 1761-1815)에 의해 입증되었다. 이처럼 같은 원소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어도 원자들의 배열이나 구조의 차이로 인하여 겉모양과 성질이 전혀 다른 물질들을 동소체라 부른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이후 탄소의 새로운 동소체들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이와 관련해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는 이들도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이들 물질들은 전혀 새로운 물성과 독특한 특성을 나타냄으로서, 반도체 재료를 비롯한 첨단과학기술 및 나노과학기술의 발전 측면에서도 큰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새로운 탄소 동소체의 발견과 관련된 노벨과학상은 물리학상보다 화학상에서 먼저 나왔다. 즉 풀러렌(Fullerene)이 그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화학자 스몰리(Rechard E. Smalley)와 컬 2세(Robert F. Curl Jr.), 영국의 화학자 크로토(Harold W. Kroto)는 탄소로 이루어졌지만 다이아몬드나 흑연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분석한 결과 탄소 원자 60개로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이라고도 불리는 풀러렌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할 뿐 아니라 여러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나노과학기술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풀러렌 발견의 공로로 스몰리, 컬 2세, 크로토는 1996년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 또 다른 탄소의 동소체가 과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즉 탄소나노튜브 등이다. 탄소나노튜브는 하나의 탄소 원자가 3개의 다른 탄소 원자와 결합되어 있고 육각형의 벌집무늬를 이루고 있으며, 지름이 몇 나노미터 정도인 매우 미세한 대롱 형태의 튜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세한 구조의 변화에 따라 도체, 반도체 등으로 특성이 변하고, 굵기는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정도로서 구리보다 전기 전도성이 높으며 열전달 능력도 매우 우수하다.
 이러한 특성들로 인하여 탄소나노튜브는 진작부터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 꼽혀왔는데, 이를 이용한 반도체 소자가 실용화된다면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와 성능 면에서 훨씬 우수한 반도체 제품들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탄소 원자들 간의 결합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경량의 초강력 섬유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 등의 연구에는 한국인 물리학자들도 활발히 참여한 바 있는데, 탄소나노튜브와 유사한 특성을 지닌 탄소 동소체로서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그래핀(Graphene)이라는 물질도 있다. 그래핀은 6각형의 벌집 모양이 층층이 쌓아올려진 구조로 이루어진 흑연에서 가장 얇은 한 겹을 떼어낸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두께 0.2nm 정도의 매우 얇은 2차원 평면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반면에 물리적, 화학적 특성들은 매우 우수하고 안정적이다.
 그래핀 역시 탄소나노튜브 이상으로 차세대 신소재 물질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고집적, 초고속의 반도체 뿐 아니라 고효율의 태양전지,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매체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나 그래핀 연구와 관련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배출될 것이라는 그동안의 기대와 예상이 얼마 전 드디어 현실화되었다. 2010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그래핀을 연구해 온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Andre K. Geim; 1958-)과 그의 제자였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S. Novoselov; 1974-)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2004년에 스카치테이프의 접착력을 이용한 간단한 방법으로 흑연으로부터 그래핀을 떼어서 분리해 내는 데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런데 2010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무렵에, 국내 언론들은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의 ‘실수’로 인하여 그래핀 연구에 공로가 많았던 한국인 출신 물리학자 김필립 박사가 노벨상 수상자에서 제외되었다.”는 기사를 다투어 쏟아낸 적이 있다. 즉 당시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필립 박사도 당연히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위원회가 중대한 실수를 하는 바람에 김필립 교수의 노벨상이 아깝게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실과는 매우 다르다. 노벨상 위원회가 당해 연도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임과 노보셀로프, 그리고 또 다른 그래핀 연구자였던 김필립 교수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일부 사소한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과 김필립 교수가 2010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것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노벨 물리학상은 3명의 개인에게까지 공동 수상이 허용되므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비슷한 분야를 연구해서 업적을 쌓아 온 김필립 교수가 가임, 노보셀로프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를 기대한 것은 물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임과 노보셀로프가 워낙 뚜렷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김필립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해서 노벨상 위원회의 평가가 결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이는 김교수 자신도 솔직하게 인정을 한 바 있다.

 이는 결국 노벨상 위원회의 일부 오류를 지적한 다른 학자의 얘기와, 한국인 출신 첫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기대감이 뒤죽박죽으로 섞이면서, 결국 여러 국내 언론들이 과장 보도를 넘어서 오보를 내는 한바탕 해프닝이 일어났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시즌이 되면 국내 언론들의 ‘노벨과학상 조급증’과 과민반응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논란의 당사자였던 김필립 박사도 이후 국내 강연 자리에서 “연구의 최종 목적이 노벨상 수상은 아니다.”라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바 있는데, 연구자이건 언론이건 이제는 제발 ‘노벨과학상 콤플렉스’와 조급증에서 좀 벗어났으면 한다. 또한 그것이 도리어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앞당기는 길이 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평면적 구조를 지닌 그래핀 (원작자 : Alexander AIU)

이미지2 : 풀러렌의 구조 (GNU Free Documentation Li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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