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폭탄의 아버지 - 텔러와 칼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01-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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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수소폭탄을 비롯한 핵무기가 다시금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지니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핵무기인 원자폭탄은 잘 알려진 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하여 개발되었다. 전쟁 후에는 수소폭탄이 개발, 실험되었는데,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은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 1952년 세계 최초로 수소폭탄 실험 >
같은 핵무기이지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은 원리가 약간 다르며, 수소폭탄이 원자폭탄보다 훨씬 큰 위력을 지닌다. 원자폭탄은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 등의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고속으로 진행시켜 막대한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시키도록 한 것이다.
수소폭탄은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을 이용한 것으로서, 이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고온에서 반응하면 헬륨의 원자핵이 융합되면서 역시 막대한 열과 에너지가 분출된다. 그러나 핵융합에 이를 정도의 고온을 순식간에 내려면 현재의 기술로는 원자폭탄의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으므로,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을 방아쇠로 이용하는 열핵무기, 또는 핵융합무기인 셈이다.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로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뛰어난 물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과학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연구개발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고 과학자들을 잘 이끌어서 결국은 극비리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참여한 수많은 과학자 중에,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라는 물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원자폭탄 방식보다는 열핵폭탄, 즉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의 개발에 관심이 많았으나, 당시로서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았으므로 결국 원자폭탄이 먼저 개발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함께 참여했던 폴란드 출신의 수학자 스태니슬로 울람(Stanisław Marcin Ulam; 1909-1984)으로부터 원자폭탄의 핵분열 에너지를 핵융합의 기폭제로 쓸 수 있다는 구상을 들은 텔러는 전쟁 후에 수소폭탄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결국 이른바 ‘텔러-울람’ 설계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수소폭탄 아이비 마이크(Ivy Mike)가 완성되었고, 1952년 서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폭발 실험이 이루어졌다.

< 위험한 데자뷔 - 텔러와 칼람 >
‘인도의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릴만한 인물은 압둘 칼람(Abdul Kalam; 1931-2015)이다. 1931년 인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학교를 마치고 마드라스 공과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칼람은 인도의 첫 인공위성 발사 및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인도 정부에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도록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그가 인도 과학자문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1998년에 전격적으로 행해진 인도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미국조차도 미리 눈치를 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히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는 인도는 수억의 인구를 지닌 큰 나라답게 사고하고 행동해야하며 작은 나라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청소년들에게 항상 꿈을 가지라고 강조했던 ‘인도에 꿈을 가르쳐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칼람은 수소폭탄 실험 성공 이후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인도의 제 11대 대통령으로 재직한 바 있다. 총리가 정치적 실권을 지니는 인도에서 대통령직은 의전적인 국가원수의 자리이긴 하지만, 아무튼 과학자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은 셈이다. 그가 작년 7월에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거의 모든 인도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을 총지휘한 에드워드 텔러를 비롯해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탁월한 과학자 중에는 유럽 중동부의 작은 나라인 헝가리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즉 우라늄 연쇄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레오 실라드(Leo Szilard; 1898-1964), 실라드와 함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설득하여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나치독일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제언하도록 했던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 1902-1995), 원자폭탄의 새로운 기폭 방법을 컴퓨터 계산으로 입증하고 후에 ‘컴퓨터의 아버지’가 된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 역시 헝가리 출신이었다.
이들 헝가리 출신 천재 과학자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류의 파멸마저도 초래할 수 있는 핵무기의 개발에 매달렸는지는 흥미로운 의문의 하나인데, 혹시 오랫동안 유럽의 강대국들로부터 시달려온 헝가리의 민족적 설움을, 가공할 무기의 개발을 통해서 풀어보려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던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텔러는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을 밀어붙였을 뿐 아니라, 현재의 미사일방어(MD) 체제의 원조 격인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별들의 전쟁(스타워즈)’ 계획까지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텔러나 칼람의 수소폭탄 개발은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군비경쟁과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을 끝낸 이듬해인 1953년에 소련 역시 수소폭탄을 성공적으로 제작하였다. 뒤를 이어 영국도 1957년에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시켰고, 중국과 프랑스 역시 1960년대에 수소폭탄을 제작하여 실험하였다.
인도의 수소폭탄 실험이 성공한 같은 해인 1998년, 인접국이자 인도와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하여 핵무기 보유국가의 대열에 합류했을 뿐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의 핵보유 의지 및 핵개발을 촉발시킨 격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핵무기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약 20여년 전, 한국인 출신 천재 물리학자가 박정희 정권 하에서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한 소설이 수백만 명의 독자를 감동시키며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대중들은 ‘한국의 칼람’, ‘한국의 텔러’를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나 핵무기의 짜릿한 유혹에 앞서서, 그 위험성을 먼저 우려해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아이비 마이크의 폭발실험(1952년)
이미지2 : 인도 핵무기의 아버지이자 대통령을 지낸 압둘 칼람(오른쪽) (원작자 : Jas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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