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0) - 시계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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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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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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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이후에는 저명 물리학자들의 관심사가 되기도 하였다. 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여 시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 바로 ‘근대 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이다. 그는 사원의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일정한 속도로 흔들림을 발견하고는 맥박을 짚어서 확인한 결과, 램프의 폭과 관계없이 흔들리는 주기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갈릴레이는, 직접 진자시계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그가 진자 등을 비롯한 물체의 운동에 관한 역학적 법칙의 기초를 세웠기에 훗날 좋은 시계들이 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또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는 처음으로 진자시계를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하였고, 1664년에는 최초의 항해용 시계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물체의 탄성은 주어진 힘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후크의 법칙을 발견한 후크(Robert Hooke; 1635-1703)는, 이를 바탕으로 용수철 운동의 등시성을 이용한 용수철 시계를 만들려고 노력한 바 있다.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시대에 이르러서도 정밀한 시계, 즉 보다 정확하게 시각과 시간 간격을 측정하는 일은 기술적, 공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물리학적 관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길이, 질량을 비롯한 시간은 물리량의 기본 단위계를 구성하므로, 곧 물리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이제는 시간의 단위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느려지는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한 기존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지금은 ‘1초’의 기준을 ‘바닥상태에 있는 세슘 원자가 2개의 초미세구조 사이에서 전이(轉移)할 때의 복사 또는 흡수하는 전자기에너지 주기의 9,192,631,770 배’로 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세슘 원자시계가 국제 원자시 설정의 기준이 되는데, 시간을 보다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첨단과학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이들도 여러 차례 나왔다.

 1989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물리학자 노먼 램지(Norman Foster Ramsey; 1915-2011)가 대표적이다. 그는 원자가 특정한 에너지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옮겨가는 것을 유도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세슘 원자시계에 대한 원리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램지는 두 개의 분리된 진동 전자기장을 통해 원자를 보냄으로써 원자구조를 연구하는 방법을 발전시켰고, 이를 응용하여 원자의 진동을 극도로 정밀하게 하면 매우 짧은 시간 간격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램지는 정밀원자분광학의 발전에 기여한 두 명의 독일 출신 물리학자, 데멜트(Hans Georg Dehmelt; 1922-) 및 파울(Wolfgang Paul; 1913-1993)과 공동으로 그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은 레이저광을 써서 원자를 냉각해 가두는 기술을 개발하여 더욱 심층적인 원자 수준의 연구를 가능하게 해 준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는데, 이 역시 정밀한 시간 측정과 관련이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의 스티븐 추(Steven Chul; 1948- ),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윌리엄 필립스(William D. Phillips; 1948- ), 프랑스의 클로드 코앙 타누지(Claude Cohen-Tannoudji; 1933-) 등 두 명의 미국 물리학자와 한 명의 프랑스 물리학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연구를 하여 레이저 광을 이용하여 원자를 절대온도 영도에 가깝게 냉각한 후, 계속 떠 있게 된 원자들을 다른 원자의 포위망 안에 가둘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또한 원자 빔을 레이저처럼 발사하는 원자 레이저의 개발에도 기여하였다.
 이와 같은 레이저 냉각과 원자 포획의 원리를 이용하면, 초정밀 원자시계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밀한 원자시계는 물질의 미세한 구조를 규명하는 데에 사용될 뿐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 간격 측정을 통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검증 등 기초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정밀한 시간 측정과 관련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배출되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홀(John L. Hall; 1934)과 독일의 핸슈(Theodor W. Hänsch; 1941-)는 레이저에 기반하여 원자나 분자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을 극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 즉 정밀 분광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다른 공동 수상자는 미국의 로이 글라우버(Roy J. Glauber; 1925- )로서 양자광학을 발전시킨 원로 물리학자였다.
 홀과 헨슈는 공동 작업을 통하여 광학 빈도, 즉 가시광선의 빈도를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이미 개발된 다른 측정방법, 이른바 광학빈도 사슬(Optical frequency chain)이라는 방법은 너무 복잡해서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들은 빛을 짧은 다발인 펄스(pulse)로 만들고 펄스의 폭을 극도로 좁히기 위하여 다른 많은 주파수의 파형을 조밀하게 합쳤는데, 이들 주파수 성분의 모습이 마치 머리를 빗는 빗처럼 조밀하다고 하여 이른바 ‘주파수 빗 기술(Frequency comb technique)’이라고 한다.
 빗의 톱니 간격을 극도로 좁히면 ‘1천조분의 1' 정도의 정확성으로 빛의 주파수를 구별해낼 수 있는 분광기술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를 더욱 정확한 시간 측정에 응용하면, 거의 30억 년에 1초가 틀리는 정도의 정밀한 시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인공위성을 통한 자동위치 측정 시스템, 즉 GPS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GPS 위성은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는데, 위치를 정확하게 식별하기 위해서는 위성이 보내온 정보의 미세한 색상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GPS를 이용하는 휴대전화 및 컴퓨터 데이터 네트워크의 동기화(synchronization) 등, 현대 문명의 이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으로도 정밀 분광학 기술을 비롯해서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은 기초과학 분야를 비롯해서 통신, 컴퓨터, 우주기술 등 첨단 응용분야에 널리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세슘원자시계를 살펴 보는 NIST(미국표준기술연구소)의 물리학자들
이미지2 : 주파수 빗기술 (저작권자 : hi-tech.mail.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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