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부리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09-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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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최초로 발명을 이룩한 사람들이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는 의외로 드물다. 온갖 고생 끝에 발명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용화나 사업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고 불행하게 삶을 마친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아무개가 번다.’라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데, 정작 큰돈을 번 사람은 발명가가 아니라 수완이 뛰어난 다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르블랑식 소다 제조법으로 큰 돈을 번 머스프랫 >
프랑스의 화학자 르블랑(Nicolas Leblanc; 1742-1806)이 소다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하고도,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권총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쳤다는 얘기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공모의 산물이었던 르블랑식 소다 제조법은 그 후로도 정작 프랑스에서는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하였고, 이것으로 큰 돈을 번 인물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사업가 제임스 머스프랫(James Muspratt: 1793-1886)이었다.

젊은 시절에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영국군에 입대하여 여러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해군의 엄격한 군율과 고된 훈련에 싫증을 느끼고 탈영을 감행하였다. 고향인 더블린으로 돌아간 그는 어린 시절에 약품 도매점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서 염산 등의 화학약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하다가, 비누에 꼭 필요한 소다의 중요성을 접하게 되었다.
머스프랫은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리버풀을 비롯한 영국의 여러 지역에 르블랑식 소다 공장을 세우고 많은 양의 소다를 생산해내었다.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되던 당시 영국에서는, 소다의 수요가 급증하였는데, 머스프랫은 이 기회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즉 산업혁명 초기에 방적기, 방직기의 발명과 개량으로 가장 먼저 발달한 것이 직물공업이었는데,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직물들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제품을 완성하려면 엄청난 양의 비누와 소다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머스프랫의 소다 제조 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 번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뛰어난 사업가였던 머스프랫도 끝까지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오늘날에도 간혹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공장의 폐가스로 인한 문제였다. 르블랑식 소다 제법은 소금과 황산으로 소다를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염산가스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는 염산가스로 피해를 입은 인근 농민과 지주들의 소송에 오랫동안 시달린 끝에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사업에서 은퇴하는 날까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였다.
아무튼 머스프랫에 의해 대성공을 거둔 영국의 소다 제조산업은 중화학공업 발전의 시초가 되었고, 르블랑식 소다 제조법은 19세기 후반 솔베이(Solbay)법이라는 새로운 소다 제법이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이용되었다.

< 특허 도용으로 세계적 재봉틀 기업을 일구다 >
요즘에는 일반 가정에서 재봉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의 예전 세대에서는 결혼하는 여성들의 ‘혼수품 1호’라고 할 만큼 중요시된 적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재봉틀을 발명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의 기계기술자 하우(Elias Howe; 1819-1867)였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선천적으로 몸이 병약했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였으나, 기계를 다루는 데에 재주가 있어서 일찍부터 재봉틀의 발명에 몰두하였다.
하우가 재봉틀 발명에 몰두하게 된 동기는 밤늦도록 삯바느질을 하는 아내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고생 끝에 1845년에 실용적인 재봉틀을 발명하였고 이듬해에 특허도 취득하였다.

하우는 자신의 발명품을 사업화하려고 무척 애썼으나, 자금부족, 시장개척의 어려움, 숙련기술자들의 반발 등으로 인하여 쉽게 되지 않았고, 기관차의 운전수로 일하면서 생계를 끌어갔다. 한번은 영국에서 하우의 재봉틀 특허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영국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재봉기술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실망 속에 귀국한 하우에게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하우가 없는 틈을 타서 싱거(Isaac Merrit Singer; 1811-1875)라는 사람이 하우의 재봉틀 기술을 도용하여, 미국에서 재봉틀을 대량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싱거는 하우의 재봉틀을 개량하여 자신의 특허도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는 발명가라기보다는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부품의 표준 확립, 대량생산체계 등을 세웠고, ‘한 가정에 한 대의 재봉틀을!’ 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이벤트를 열어서 재봉틀 보급을 크게 늘렸다. 또한 그는 오늘날에도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할부판매제도라는 새로운 판매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하우는 싱거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내었고, 결국은 승소하여 상당액을 배상받기도 했으나, 이미 싱거의 회사는 세계 제일의 재봉틀 회사로 성장해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싱거에게는 ‘재봉틀 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그의 회사는 최근까지 굴지의 재봉틀 회사로 이어져 왔다. 재봉틀이 가정에서 많이 쓰이던 시절 우리나라에도 싱거 회사에서 제작한 재봉틀이 많이 들어 온 바 있다.
물론 신제품의 사업화로 성공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여러 난관과 리스크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가능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의 사례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신제품 등의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각고의 노력 끝에 발명을 완성한 과학기술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기만한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By 최성우


이미지1 : 특허를 취득한 하우의 재봉틀
이미지2 : 르블랑식 소다 제조 사업으로 큰 돈을 번 머스프랫

  • Hithere ()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세계적인 거군요. 실제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돈을 번 과학자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번 글을 올려주셨으면 잘 읽을 것 같습니다.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최근의 예로는 청색LED 개발로 2014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까무라 슈지도 들 수 있겠습니다. (니치아 화학을 상대로 한 직무발명보상 청구 소송에서 1심에서는 승소하여 200억엔 배상 판결을 받았다가, 고등심에서는 화해 끝에 금액이 크게 줄어들기는 했습니다만...)

    본인이 이룩한 발견이나 발명을 바탕으로 사업에도 크게 성공한 과거의 사례로는, 합성염료 발명의 윌리엄 퍼킨, 전화기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공기 타이어의 개발자 존 보이드 던롭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벨과 던롭은 엄밀히는 '최초 발명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들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쓴 글이 있습니다...

  • 빨간거미 ()

    과학과 공학은 사업을 위해 필요한 수많은 요소들 중 '한가지'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 한가지가 특별한 경우는 거의 없죠.
    여기에 더해, 현대 사회에서는 한가지 기술이 특별한 우위를 갖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개인 발명가들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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