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실패한 기술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09-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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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의외로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즉 처음에는 별로 주목받지 않았던 기술이 나중에야 크게 각광을 받는가 하면, 대단한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기술들이 정작 시장에서 허무하게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정보통신(IT) 분야에서는 이러한 예측이 더욱 어려운 편인데, 예상과는 달리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로서 종합정보통신망(ISDN)과 영상전화를 들 수 있다.

< 인터넷 시대에 결국 밀려나고 만 ISDN >
ISDN(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 종합정보통신망)이란, 디지털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문자·영상 등의 통신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던 통신서비스이다. 원래 ISDN의 구상은 1980년 11월 국제전신전화자문위원회(CCITT) 총회에서 발표되었으며, 미래 고도정보화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통신망으로서 기대를 모으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개발되고 시범 서비스된 바 있다.
ISDN은 위성통신, 광섬유 등 대용량 통신 기술과 디지털 전송 기술을 이용한 통신망으로서, 하나의 통신선으로 전화, 팩시밀리. 컴퓨터통신, 고화질텔레비전, 유선방송, 영상회의 등 온갖 영상과 통신서비스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꿈의 통신망으로 불렸다. 1990년대에 국내 전기전자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필자로서도, 당시 옆 연구실에서 ISDN용 팩시밀리를 개발했던 기억이 난다.
ISDN은 기존의 전화망에 비해 다양한 통신서비스를 고속, 고품질로 제공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단말기 장치에 쉽게 추가할 수 있고 2개 이상의 단말기 장치를 제어할 수 있으므로 복수통신이 가능하였다. KT(한국통신)에서는 1993년 7월부터 상용서비스를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가 되면 ISDN이 기본 통신망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인터넷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ISDN은 ADSL 등 다른 초고속 인터넷망에 밀려나고 말았다. 별도의 통신선을 깔아야 하므로 설치비용이 비쌌을 뿐 아니라, 기술과 통신속도 등의 측면에서도 ADSL에 성능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대중화가 급속히 진전될 무렵, 국내 TV광고에도 자주 등장하였던 ADSL (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이란 기존의 전화선을 이용하여 컴퓨터가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하는 통신수단이다. 즉 별도의 회선을 설치하지 않고도 일반 전화통신과 데이터 통신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상하향의 통신 속도가 다른 ‘비대칭형 서비스’였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었다.
즉 전화국에서 사용자로의 하향 신호는 고속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한 반면, 사용자에서 전화국으로의 상향 신호는 훨씬 느리게 해도 별 문제가 없다. 또한 ADSL은 음성통신은 낮은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고 데이터 통신은 높은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기 때문에, 혼선이 일어나지 않고 통신 속도도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ISDN에서는 전화와 데이터 통신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데이터 통신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0년대 이후 ISDN은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전직 정보통신부 장관 한분은 언젠가 ISDN을 ‘사기극’이라고까지 비유한 적도 있었다.

< 여전히 이용자가 적은 영상전화 >
영상전화 역시 예전의 기대가 철저히 빗나간 제품 중의 하나이다.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영상전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 미래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처음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벨 전화회사의 후신으로서 미국의 대표적 통신업체인 AT&T (American Telephone & Telegraph)는 이보다 앞선 1964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이미 영상전화를 출품하여 선보인 바 있다. 또한 1985년 무렵의 영상전화 시장 규모를 50억 달러로 예상했던 AT&T 뿐 아니라, 세계 굴지의 통신업체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지속적으로 제품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1980-90년대를 넘어서 21세기가 되어서도 영상전화는 계속 시장에서 실패하였다.
국내 통신업체들 역시 제3세대 이동통신이 대중화될 무렵, 각종 요란한 CF들을 내세우면서 차세대 이동전화의 영상통화 기능을 대대적으로 광고한 바 있으나, 예상보다 이용이 드물고 심지어 자신의 휴대전화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연인들끼리의 애정 표현이 유별난 이탈리아에서 그나마 영상통화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는 얘기도 있다.

일반 대중들이 의외로 영상통화를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서, 학자들은 ‘사람들이 전화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이유’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측면의 분석을 강조하기도 한다. 즉 전화란 소통을 위해서도 쓰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소통을 단절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따라서 영상전화는 ‘대면하지 않고 음성으로만 의사소통하기’라는 전화 사용의 기본 목적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해석이다.
아무튼 어떤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여전히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미래전망에 관심이 많은 엔지니어나 기업경영자 혹은 일반소비자들도 이러한 기술의 의외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ADSL모뎀라우터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1969년에 스웨덴 총리가 영상전화로 TV쇼 진행자와 통화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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