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배우는 융합 연구의 중요성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0-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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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인 듯하다. 최근 들어서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용어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학문의 각 분야뿐 아니라, 예술의 여러 장르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융합 연구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재차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융합 연구에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기에, 최근에 와서야 융합 연구가 등장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를 잘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융합 연구, 학문 분야 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가 큰 힘을 발휘한 지는 매우 오래되었으나, 그동안 그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 등이 핵분열의 원리를 발견한 것과,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사례이다. 또한 멘델, 베게너 등 획기적인 업적으로 시대를 앞섰던 선구적 과학자들 역시 잘 살펴보면 융합 연구의 대가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핵분열 원리 및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은 다 같이 이후 인류 역사를 뒤흔들 정도로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사례는 여성 과학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점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즉 해당 연구를 둘러싸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정작 마지막 승리자가 된 이들은 그동안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었던 점도 동일하다. 
 핵분열 원리 발견의 단초가 된 우라늄 중성자 충돌 실험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 등이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는 1938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페르미상’이 있을 정도로 과학계의 거장이다. 또한 퀴리 부인의 큰딸과 사위였던 이렌 퀴리(Irene Curie; 1897-1956)와 프레데릭 졸리오(Frederic Joliot; 1900-1958) 역시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쟁쟁한 과학자들로서, 핵분열 원리 발견의 일보 직전까지 연구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연구의 최종 결실을 맺은 오토 한(Otto Hahn; 1879-1960),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은 이전까지는 그다지 주목받던 인물들이 아니었다.
 DNA의 구조 연구에 뛰어들었던 과학자들 역시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었다. 어윈 샤르가프 (Erwin Chargaff; 1905–2002)는 DNA 염기 조성(Base Composition)에 관한 규칙인 ‘샤르가프의 법칙’을 밝혔고, 이는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ling; 1901-1994)은 당시 이온구조화학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던 과학자로서 그가 밝힌 전기음성도 이론은 오늘날 화학교과서에 그의 이름과 함께 나온다.  이들에 비해 DNA가 이중나선 구조임을 최종적으로 밝혀냈던 왓슨(James Watson; 1928-)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은 업적을 이룰 당시에 20, 30대의 나이에 불과한 애송이들이었다.
 
 이 두 사례에서 생소했던 인물들이 당대의 대가들을 제치고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융합 연구, 학문 분야 간의 연구였다. 핵분열 원리를 밝힌 오토 한, 마이트너, 슈트라스만은 방사화학자, 물리학자, 분석화학자가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학문 분야 간 연구팀이었다. 오토 한은 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마이트너는 물리학자로서 핵분열 및 연쇄반응의 원리를 명확히 밝혀내었다. 또한 슈트라스만은 전문 분석화학자로서 방사성 우라늄(U)의 핵분열 결과 나온 물질이 바륨(Ba)과 크립톤(Kr)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앞서서 동일한 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던 이렌 퀴리 부부와 대조를 이루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 역시 마찬가지이다. 왓슨은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했던 생물학자였고, 크릭은 X선 회절에 관해 연구했던 물리학자 출신이었다. 원래는 서로 분야가 달랐던 이들의 융합 연구가 아니었더라면, 새파란 젊은이들이 어윈 샤르가프, 라이너스 폴링과 같은 당대의 대가들을 제치고 먼저 업적을 이룩한 기적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전 법칙을 처음으로 발견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와 대륙이동설의 창시자 베게너(Alfred L. Wegener, 1880-1930)는 중요한 업적을 이루고도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은 지 한참을 지나서야 뒤늦게 각광을 받았던 선구적인 과학자였다.
 유전법칙은 생물학 상 대단히 중요한 발견인데도 오스트리아의 멘델 신부가 1866년에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학자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멘델의 유전법칙의 가치가 다시 발견된 것은 멘델이 죽은 지 16년, 멘델의 논문이 나온 지 34년이 지난 후로서, 드프리이스, 코렌스, 체르마크 세 명의 생물학자가 1900년에 멘델의 논문과 동일하였던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생물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독일의 지구과학자이며 탐험가인 베게너는 ‘대륙이 움직인다’는 대담한 발상을 이론화하여 1912년부터 논문과 저서를 통하여 발표하였으나, 세계 지질학계의 주류는 베게너의 주장을 황당한 것으로 치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게너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들을 찾기 위해 1930년에 그린란드 원정을 떠났다가 눈보라 속에서 사망하고 말았고, 그의 죽음과 함께 대륙이동설도 잊혀졌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고지자기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화려하게 부활하여 현대 지질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멘델과 베게너가 당대의 기존관념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 그들이 한 가지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유했던 사실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멘델은 다른 생물학자들과는 달리 수학과 통계 처리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기에 방대한 실험결과를 잘 정리하여 유전법칙을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역으로 당시의 생물학자들에게는 수학적, 통계적으로 정리된 그의 이론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을 가능성도 크다.
 베게너 역시 지질학뿐 아니라 천문학․기상학․고생물학 등 다른 인접과학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고 또한 탐험가로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소중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지질학자들은 꿈꾸지도 못했던 새로운 이론을 주장할만한 근거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멘델과 베게너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 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융합 연구와도 일맥상통하는, 즉 혼자서 이룩한 융합 연구의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계 전반적으로도 융합 연구의 활성화를 위하여 교육 여건의 개선이나 제도적 뒷받침 등을 통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위의 역사적 사례들을 교훈삼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발휘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By 최성우

이미지1 : 공동 연구 중인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이미지2 :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

  • Hithere ()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의견은 과거에 비해 지금 너무 학문이 세분화 되어있고 전문화 시켜서 오히려 융합이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것 아닌 가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학제각 벽이 너무 커서 같은 전공에서 조차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뭐 지금은 워낙 그때에 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넓게 보다가는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관심 감사합니다...  학문의 지나친 세분화/전문화가 도리어 역설적으로 융합의 필요성을 불러왔다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특히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분야간 대화 단절은 약간 다른 맥락에서 볼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 최성우 ()

    '혼자서 이룩한 융합 연구'의 선구적 사례를 하나만 더 든다면...    1963년 ‘결정론적인 비주기성 흐름’이라는 논문을 대기과학지에 실어 오늘날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과학의 단초를 제공한 기상학자 로렌츠(Edward Lorenz; 1917-2008)도 멘델, 베게너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선구적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기과학자들이 그러한 수학/물리학적 문제에 별 관심을 가졌을리가 없고, 또한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만한) 수학자/물리학자들은 대기과학지까지 꼼꼼히 살펴볼 일이 없었을테니 별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요. 
    그나마 나중에 각광을 받아서 (멘델, 베게너와는 달리) 생전에 카오스 이론의 선구자로 인정을 받게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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