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중인 과학문화재 - 첨성대와 거북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0-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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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적부터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교과서 등에서 접해왔다. 우리는 이들 자랑스러운 과학문화재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은 그 진위 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다.

< 첨성대는 천문대인가, 제단인가? >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나 수학여행 중인 학생들이 불국사, 석굴암 등과 함께 반드시 들러보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첨성대이다. 최근의 지진으로 안타깝게도 다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첨성대는 1천년 이상을 지켜 온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첨성대(瞻星臺)라는 명칭의 사전적 의미가 ‘별을 보는 구조물’이므로 예전에는 당연히 천체 현상을 관측하는 천문대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첨성대의 외관이나 내부 구조 등이 별이나 천체를 관측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하고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첨성대가 과연 천문대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에 불이 붙게 되었다.
즉 천문대라기보다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나 일종의 상징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설이 힘을 얻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확실하지도 않은 주장으로 우리의 자랑거리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또한 개방형 돔 형태의 천문대, 또는 태양고도나 동지점(冬至點) 등을 알아내는 다목적 관측대일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사실 천문대에 관한 과거 기록들을 보면, 무엇을 하기 위하여 세운 것인지 정확하지 않고 해석에 따라 다른 관점이 나올 여지가 있다. 고려시대인 1281년 무렵에 간행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첨성대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오지만 “신라 선덕여왕 대에 첨성대를 세웠다”라고 쓰여 있을 뿐, 어떠한 용도로 건설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조선시대인 15세기 말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첨성대는 위가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며, 속이 비어있어서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물었다.”라고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천문을 물었다(以候天文)’라는 구절을 현대적인 의미로 ‘천체를 관측하였다.’ 라고만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묻는 행위란 구체적으로 해, 달, 별 등의 천체를 관측하는 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제례를 지내는 행위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첨성대가 근대적 의미의 천체 관측소이든, 상징물이나 제단이든 문제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첨성대가 고대의 천문대라는 정설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 거북선은 철갑선인가? >
최근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을 자주 접하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이 연전연승을 거둔 비결이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에 더하여, 주력전투함과 화포 등 왜군에 비해 월등했던 무기의 성능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가 아닌가 하는 것 역시 첨성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는 문제인데, 10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왔다. 또한 거북선이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왜군의 배를 침몰시킨 조선수군의 주력전투함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수군의 주력전투함은 거북선이라기보다는 판옥선(板屋船)이었고, 거북선은 오늘날 육군의 탱크처럼 돌격선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북선이 실제로 철갑선이었는지 여부는 지금도 학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로서, 보다 조심스럽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주력전투함이었던 판옥선은 임진왜란 직전인 명종 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존의 평선(平船)과 달리 2층 구조로 건조해서, 노를 젓는 병사들은 배의 아래층에, 공격을 담당하는 병사들은 위층에 배치하도록 하였다. 판옥선은 갑판이 높았으므로 왜구들의 장점인 선상 백병전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아군의 활쏘기, 함포공격 등을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 전투력과 기동성, 견고함을 두루 갖춘 뛰어난 함정이었다.
거북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 초기 태종 대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처음 나온다. 이 거북선과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이 어떤 관계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의 윗부분을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거북선을 창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북선은 ‘두터운 장갑을 두르고 그 위에 칼, 송곳 등을 꽂아놓았다’고 전해질 뿐, 명확히 ‘철갑’을 썼다는 기록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서양과 일본에서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 인정하는 편이다.

이에 대해 일부 국내 과학사학자들은 조심스러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즉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수들이 패전을 변명하고자 “메쿠라부네(めくらぶね; 장님배라는 뜻으로 왜군들이 거북선을 지칭하던 말)가 무시무시한 철갑선이어서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라고 둘러댔고, 근대 이후 한반도 침략의 야망을 키우던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의 패배를 합리화하고자 철갑선 주장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1895년에 쓴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 역시 군국주의적인 일본서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북선이 탁월한 위력을 지닌 당대 최고 수준의 전투함인 것인 분명하지만, 철갑선 여부 등은 보다 합리적인 접근과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 듯하다.

                                                                        By 최성우


이미지 1 : 1795년에 그려진 거북선의 모습_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 2 : 1906년 당시의 첨성대

  • Hithere ()

    첨성대가 제단인가 천문대인가는 문외한인 저지만, 좀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가 생각되네요. 근대 과학이 발달하였던 유럽에서도 (사실 우리가 앞섰을 수도 ...) 이 당시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이 현대 과학처럼 명확하게 경계가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현대의 잣대로 과거를 돌아다봐서 생긴 문제점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 tatsache ()

    거북선 철갑의 경우, 성문에 철엽(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16012515150500.JPG )을 설치한 것을 본다면 그다지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서 기록에서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성문에 적용하여 검증된 방법(기술)을 거북선에 도입한 것으로 보아야 할겁니다. 다만 철엽의 바다환경에서 녹의 발생, 상부설치로 인한 선박의 무게중심 이동문제 등에 대해서는 좀더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통나무 ()

    또다른 포인트는 나무일겁니다.
    철갑의 형태가 어떻든 왜군들 배 사이로 들어가 부짖쳐서 박살을 낼 정도인데, 거기다 뛰어 오르지 못하게 하거나 영화에 나오는 충돌시 앞에 쇠나 돌로 뭔가를 달아서 구멍을 낼려면 나무가 단단해야 하는데요.
    경상도쪽 남은 목조건축은 임진왜란때 왜군이 진주한 곳은 다 불타서 없어졌고 그 진주로를 피한곳에 남아있는것을 보면 조선 중기 이전과 이후 집들을 지은 나무의 지름 자체가 어이없을정도로 차이가 크더군요. 제일 오래된 고가는 압도적인 두께를 보여주고 거기다 소나무....
    조선 명종때 동래쪽 왜란이후 준비해놓은게 임진왜란때 주력으로 싸운 함선들이라는데 일본배와 기본적인 설계가 다른것과 또 그때만 해도 질좋고 두꺼운 소나무가 충당가능할정도로 있었따는 것이죠. 이렇게 강한 나무에 철갑을 입히던 돌을 박아서 부딪치면, 거기다 함포까지 때려 박으면...왜군쪽에 남은 기록들이 도저히 당해낼수 없다는게 결코 과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철갑이 먼저가 아니라 좋은 목재 그것도 강한 소나무에, 배 자체의 건조능력에 조총과 일본의 백병전에 대하는 전략이 철갑을 입혀서 그냥 박살을 내버리고 멀리서는 함포로 때려버리는....어떤 책에서는 최초의 근대적 함포 해전이라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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