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1) - 현미경과 물리학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0-2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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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획기적인 물리학 이론을 정립하는 경우도 있고, 뛰어난 실험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의 검증에 기여할 수도 있다. 예전 칼럼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최근에는 물리학의 업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 공학적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정교한 실험장치를 개발하는 것도 포함된다. 어쩌면 이러한 유형의 업적은 이론적/학문적 측면과 실험적/기술적 측면을 모두 포괄하여야만 가능한 것일 수 있다.

 고도의 실험장치를 제작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도 여럿 되지만, 이러한 실험장치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예로서 ‘현미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미경은 발명된 지도 오래되었고 어린 학생들도 학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친숙한 도구인데, 현미경 정도로 노벨상까지 받다니 의외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세하게 살펴보면, 현미경이 의외로 중요한 기기임을 깨달을 수 있다. 현미경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작은 물체를 크게 확대해서 보는 기기’라는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또한 현미경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에서 생물수업 등에 주로 사용하는 단순한 광학식 현미경 이외에도, 상당히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작동 원리도 판이하게 다른 고가의 현미경들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나노(Nano)과학기술, 즉 극미(極微)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도 고성능의 현미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현미경의 개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첫 번째 경우로서,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제르니케(Frits Zernike; 1888-1966)를 들 수 있다. 그는 위상차 현미경을 발명하여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제르니케는 처음에는 광학 분야에서 천체 망원경과 관련된 연구를 하였다. 그는 회절격자의 파인 선들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흠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광파면(光波面)의 변형, 즉 위상차(位相差)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미소물체에서 굴절률이 다른 부분을 식별해내는 데 응용하여 이와 관련된 수학적 이론을 확립하였다. 이 연구는 처음에는 그다지 주의를 끌지 못하였지만, 서로 다른 투명한 물질들을 통과한 광선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을 응용하여 위상차 현미경을 개발하였다.
 보통의 광학 현미경은 물체의 명암이나 색상의 차이를 이용하여 관찰을 한다. 따라서 빛의 흡수가 동일한 투명한 물체에서는 굴절률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해도 명암이 똑같기 때문에 이 차이를 구분할 수가 없다. 반면 위상차 현미경은 물질을 통과한 빛이 물질의 굴절률의 차이에 의해 위상차를 갖게 되었을 때, 이를 명암으로 바꾸어 관찰하는 현미경이다.
따라서 무색의 투명한 시료라도 내부의 구조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위상차 현미경을 사용하면, 관찰 대상인 시료를 염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바이러스, 세균 등을 비롯한 살아 있는 생물체를 관찰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위상차현미경의 개발은 생물학, 의학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광학 현미경과는 원리가 상당히 다른 현미경으로서, 이른바 전자현미경이라는 것이 있다. 광학 현미경의 최고 성능, 즉 배율의 한계는 분해능(分解能; Resolving power)으로 결정되는데, 이는 광학에서 ‘인접한 두개의 물체를 별개의 것으로 구별할 수 있는 최소 거리’를 의미한다. 광학 이론에 따르면, 분해능의 극한은 빛의 파장의 절반 정도가 된다. 가시광선 중에서 가장 파장이 짧은 쪽, 즉 약 0.4μm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분해능의 한계는 0.2μm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광학 현미경의 경우, 아무리 크게 만들거나 성능이 좋은 고가의 렌즈를 채용한다고 해도, 0.2μm보다 작은 물체는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분해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현미경이 바로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이다. 가시광선 대신에 전자 다발을 이용하는 방식인데, 전자를 파장이 매우 짧은 전자기파처럼 간주할 수 있으므로,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것까지도 볼 수 있다. 전자현미경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투과형 전자현미경(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TEM)과 주사형 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SEM)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현미경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독일의 전기공학자 루스카(Ernst Ruska; 1906-1988) 이다. 그는 빛과 같은 방식으로 사물에 전자를 쏘아준다면 광학 현미경보다 더 좋은 분해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먼저 전자 렌즈, 즉 일반 렌즈가 가시광선의 초점을 맞추듯이 전자 빔의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전자 자석을 개발하였고, 이러한 전자 렌즈들을 일직선으로 연결하여 1933년에 최초의 투과형 전자현미경을 완성하였다.
 루스카는 이 공로로 만년인 198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해에 루스카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들 역시 전자현미경 개발의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즉 독일 태생의 비니히(Gerd Binnig; 1947-)와 스위스의 물리학자 로러(Heinrich Rohrer; 1933-)인데, 두 사람은 기존의 전자현미경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전자현미경을 함께 개발하였다. 이들이 제작한 새로운 전자현미경은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STM)이라고 불리는데, 그 원리는 시료 표면에 전자를 쏘아준 후, 전자가 터널링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용하여 시료의 구조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에는 너비가 약 1Å(옹스트롬)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조그만 텅스텐 탐침이 달려 있다. 이 탐침 끝의 전위가 물질 표면의 전위와 일정한 차이를 보이게 만들면, 양자역학의 터널링 효과에 의하여 이들 사이에는 미세한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 전류를 측정하면서 탐침을 움직이면, 결국 시료 물질 표면의 윤곽지도도 그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 한 개의 지름이 1Å 정도이므로,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의 탐침 끝 너비는 원자 하나의 폭 정도로 극도로 작은 셈이다. 또한 탐침과 시료물질 표면 사이의 거리도 5~10Å 정도로서, 원자 몇 개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은 원자 단위의 극미 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나노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었다. 

                                                                                          By 최성우

이미지1 : 루스카가 최초로 개발한 전자현미경 (출처 : Electron Microscope Deutsches Museum)
이미지2 :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의 원리 (저작권자 : Michael Sch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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