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발명 - 천지인 자판과 청색LED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1-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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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많은 예를 들었듯이, 과학기술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동안 ‘재주 잘 부리는 곰’ 정도로 인식되어온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 과학기술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움직임과 아울러, 특히 직무발명 등에서 정당하게 자기 몫을 찾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직무발명 보상 소송으로서 발명자가 소속 회사를 상대로 거액을 청구했던 이른바 천지인 자판 사건과 청색LED 사건이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직무발명과 천지인 자판 >
 예전에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개인 혹은 몇 명에 의해 중요한 발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엘리사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 백열전구와 축음기, 영화 등 1,300가지가 넘는 발명 특허를 얻어 발명왕이라 불리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 등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이름을 떨친 개인 발명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대 시대에 이르러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적 차원보다는 기업이나 연구소, 혹은 국가가 거액의 비용과 수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연구개발 및 발명을 이루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개인 발명가들의 발명 활동이 없지는 않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직무발명의 비율이 80%를 넘은 지 오래되었고,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전체의 97% 정도가 직무발명이라고 한다. 

 직무발명의 범위에 관하여는 “직무발명이란, 종업원, 법인의 임원 또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발명한 것이 성질상 사용자·법인 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범위에 속하고 그 발명을 하게 된 행위가 종업원등의 현재 또는 과거의 직무에 속하는 발명을 말한다.”고 발명진흥법 제2조에 명시되어 있다.
 현재 기업 등에서 직무발명이 이루어지는 경우, 발명자인 종업원은 출원과 더불어 ‘특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용자 측에 양도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발명자는 그 대가로 보상 등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사용자는 4개월 내에 그 발명에 대한 권리의 승계 여부를 종업원등에게 문서로 알려야 한다고 법령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직무발명 보상의 성격은 법적으로 볼 때에 권리를 사용자에게 양도하는 대신에 얻게 되는 청구권, 즉 채권의 일종으로서 사용자는 종업원에게 반드시 보상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종업원에게 제공하는 부가적인 편익(fringe benefit)이나 사용자의 임의에 따라 지급이 좌우되는 단순한 인센티브 차원이 전혀 아닌 것이다. 

 지난 2000년대 초, 한글자판 방식으로서 천지인 방식, 즉 ㅣ, ㆍ, ㅡ 3개의 문자를 조합해서 모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발명했던 최아무개 연구원은 소속사였던 삼성전자를 상대로 거액의 청구소송을 낸 바 있다. 지금도 휴대전화의 한글입력 방식으로 널리 쓰이는 천지인 자판 특허는 적어도 90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최씨가 직무발명보상금으로 회사로부터 받은 금액은 불과 21만원이었다.
 이 소송은 직무발명보상에 관해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직무발명 보상금 액수 자체보다는 직무발명이 아닌 ‘자유발명’인지 여부가 소송의 쟁점이 되었다. 즉 당시의 법률로는 사용자 측에서 승계한 직무발명을 4개월 내에 출원하지 않으면 자유발명으로 간주되었으나, 삼성전자는 7개월 후에 출원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최씨의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은 당사자 간의 합의 후에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 청색LED 발명자 나카무라 슈지 >   
 국내에서 천지인 사건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 무렵, 해외에서는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의 직무발명보상 청구소송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질화갈륨(GaN) 소재의 고휘도 청색 LED 개발하고 제품화에 성공하여 소속사인 니치아 화학공업(日亜化学工業)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었다. 니치아 화학공업은 청색LED 덕분에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지만, 나카무라 슈지가 그 대가로 받은 것은 2만엔의 수당과 과장 승진 정도였다.
 그 후 미국의 산타바바라대학(UC Santa Barbara) 교수로 전직한 그는 니치아 화학공업을 상대로 200억엔의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청구하였다. 2004년 1월, 1심의 도쿄지방법원은 니치아 화학공업이 나카무라 슈지에게 200억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그의 특허를 통한 청색LED 생산으로 니치아 화학공업이 얻은 독점이익에서 나카무라 슈지의 기여율을 50%로 인정하면 600억엔 이상이 되지만, ‘처분권주의’에 따라 청구액 전액만을 인정한 것이었다. (처분권주의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아니한 사항에 대해서는 판결하지 못한다는 민사재판의 기본원칙으로서, 원고가 청구한 200억엔에 대해서만 지급여부를 판결하고 나머지는 판결할 수 없다. 만약 나카무라 슈지가 600억엔을 청구했더라면 600억엔을 지급판결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이다. )

 그러나 전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1심의 판결과는 달리, 2심의 항소법원에서는 금액이 크게 줄어들어 결국 8억4천만엔을 니치아 화학공업이 지급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소송은 마무리되었다. 이에 크게 실망한 그는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나카무라 슈지는 지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여 다시금 화제의 인물이 된 바 있다.
 이들 거액의 청구소송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국내외에서 직무발명제도에 관해 관심이 집중되었고, 독일, 일본 등에서 이 제도의 개선이 뒤따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를 손질하여 직무발명 관련 조항을 개정된 발명진흥법으로 일원화한 바 있다. 당시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자문을 맡고 있었던 필자 역시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인 법령 개정을 위하여 나름 노력한 바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현직 연구원이 소속회사에 수십억원 이상의 직무발명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가끔씩 보도되곤 한다. 만약 회사에 더욱 큰 이익을 안겨준 결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면 회사로서도 아까워하지 않고 지급하는 것이 상생과 아울러, 대승적 차원에서 회사, 나아가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니치아 화학공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청색LED (GNU F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 2014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저작권자 : Glenn Bel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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