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은 과학기술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1-2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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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용어 중의 하나가 이른바 ‘금수저’이다. 부모로부터 상당한 재력을 물려받은 이들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금수저 관련 논쟁이 자주 되풀이되는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기술계에서도 대를 이어서 업적을 낸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부모인 저명과학기술자의 후광을 입은 경우도 있겠지만, 재능을 물려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탐구정신 등을 어릴 적부터 익힌 결과라면 그리 나쁘게 볼 일은 아닐 듯하다.

< 스티븐슨 부자, 노벨 부자, 베르누이 가문 >
 엔지니어로서 대를 이어서 큰 업적을 낸 인물로서, 증기기관차의 아버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6)과 그의 아들을 들 수 있다. 그보다 앞서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선구자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슨이 유명해진 것은, 그가 성능 좋은 증기기관차를 발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용적으로 널리 보급시키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증기기관차가 기존의 마차를 대체하고 육상교통의 혁명을 불러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조지 스티븐슨의 아들인 철도기술자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phenson; 1803-1859)의 공로가 컸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철도 가설사업에 일생을 걸고 매진했는데, 특히 철도용 교량 건설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상의 창시자’이자 다이너마이트와 무연화약의 발명으로 유럽 최고의 갑부가 되었던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1833-1896) 역시 가문의 대를 이은 과학기술자이다. 그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Immanuel Nobel; 1801-1872)은 기술자이자 발명가로서 일찍부터 화약제조사업에 종사하였고, 몇 차례 파산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흑색화약으로 기뢰 등을 생산하였다. 알프레드 노벨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화약공장 일을 도왔고,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공장이 신종 액체화약인 니트로글리세린으로 인하여 몇 차례 폭발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천왕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독일 태생의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 1738-1822)과 그의 누이동생 캐롤라인 허셜(Caroline Herschel; 1750-1848)은 남매가 눈물겹도록 협력하고 헌신해서 업적을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남매 명콤비’의 과학자에 그치지 않고, 윌리엄의 아들 존 프레더릭 허셜(John Frederick William Herschel; 1792-1871) 역시 탁월한 천문학자가 되었으니 대를 이어 가문의 명예를 떨친 셈이다. 존 프레더릭 허셜은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여 항성천문학을 더욱 발전시켰고, 광도계를 사용하여 1등성의 밝기가 6등성의 100배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5,000개 이상의 천체를 수록한 ‘성운, 성단 총목록’을 발표하는 등, 아버지 못지않은 업적을 남겼다.
 과학자 가문으로 매우 유명한 사례로서, 스위스의 베르누이 가문을 들 수 있다. 이들 가문은 100년 이상에 걸쳐서 대대로 다수의 탁월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배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체역학에서 ‘베르누이 정리’는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인데, 이를 발견한 것은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였던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1700-1782)이다.
 그의 아버지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 1667-1748)는 해석학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고 역학에서의 가상변위의 원리를 정립하였으며, 탁월한 아들뿐 아니라 세기적 수학자였던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를 제자로 두었다. 요한 베르누이의 형 야콥 베르누이(Jakob Bernoulli; 1654-1705)는 동생과 함께 해석학을 연구하였고, 급수와 확률론 등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 대를 이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 >
 과학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또는 번갈아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경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사례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인데, 부자(父子)간에도 같은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다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첫 사례로는, 전자의 발견자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과 그의 아들을 들 수 있다. 톰슨은 전자를 발견하여 원자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네온의 동위원소를 발견한 공로 등으로 1906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아들인 조지 톰슨(George Paget Thomson; 1892-1975) 전자의 파동성, 즉 얇은 막에 의한 전자 빔의 회절현상을 발견하여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확증한 공로로 1937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비교적 최근인 2006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저 콘버그(Roger David Kornberg;1947-)역시 부자가 다 노벨상을 받은 경우이다. 그는 유전자 발현 경로의 첫 단계인 유전정보 전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여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 1918-2007)는 세포가 분열할 때 DNA가 복제되는 과정을 규명한 공로로 1959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있다.
 노벨상을 아버지가 나중에, 아들이 훗날 받은 경우가 아니라, 아예 부자가 같은 해의 노벨과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경우도 있다. X선에 의한 결정 구조의 해석으로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헨리 브래그(William Henry Bragg; 1862-1942)와 그의 아들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890-1971)이다. 브래그 부자는 X선 회절에 관한 이른바 브래그의 식을 함께 유도하고 X선 분광기를 고안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는데, 아들인 로렌스 브래그는 당시 나이 25세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로는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부자지간은 아니지만, 대를 이은 노벨상 수상자로 유명한 또 하나의 사례가 바로 퀴리 모녀이다. 퀴리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방사선에 대한 연구 및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 등으로 190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스승인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 남편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과 함께 받았고, 남편이 죽은 후인 1911년도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바 있다. 마리 퀴리의 큰 딸인 이렌 퀴리(Irène Joliot-Curie; 1897-1956)는 인공 방사성 원소의 존재를 확인한 공로로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남편인 프레더릭 졸리오(Jean Frédéric Joliot-Curie; 1900-1958)와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퀴리 집안에서는 2대에 걸쳐서 세 차례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았으니, 역시 대단한 과학자 가문인 셈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알프레드 노벨의 생가
이미지2: 1915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인 X선회절에 관한 브레그의 법칙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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