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선과 제로존 이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1-2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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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과학의 역사에서도 논문조작과 사기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으로 꾸며내거나 실험결과 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는 않았더라도,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발견을 이루었다고 발표했던 사례 역시 국내외에서 간혹 등장한 바 있다. 특히 동료 과학자들조차도 그릇된 애국심(?) 등으로 인하여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덩달아서 춤을 추는 어처구니없는 일마저 벌어지기도 한다.

< N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프랑스의 블롱들로 >
 독일의 과학자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1845-1923)에 의한 X선의 발견은 과학사상 대단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업적으로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뢴트겐은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고, 이후 유럽의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X선 관련 연구가 붐을 이루었다.
 그 무렵, 프랑스의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Rene Blondlot; 1849-1930)는 새로운 광선인 ‘N선’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X선 관련 연구를 하던 중 X선과는 또 다른 방사광의 존재를 확인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이 몸담았던 대학과 도시의 이름이었던 낭시(Nancy)를 따서 N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블랑들로는 N선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프리즘으로 N선을 굴절시키면 황화칼슘 실을 통하여 검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수십 명의 프랑스 과학자들이 자신의 실험실에서 N선의 존재를 확인하였다고 발표하였고, 관련 논문도 수백편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과학자들이 블랑들로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멀지 않아 노벨상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N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유명 과학잡지인 네이처(Nature) 역시 N선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N선이 유독 프랑스의 과학자들에게서 대부분 관찰되었을 뿐,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는 같은 실험을 해도 N선을 검출했다는 과학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네이처 지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미국 과학자 로버트 우드(Robert W. Wood)를 파견하여 검증을 하도록 하였고, 결국 N선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블랑들로와 그의 조교들이 N선 입증 실험을 하기에 앞서서 우드가 몰래 프리즘을 제거했지만, 이를 몰랐던 블랑들로는 N선이 똑똑이 감지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가 네이처에 공개되자, N선을 확인했다는 수많은 프랑스 과학자들은 그제서야 ‘솔직히 말해서 N선을 보지는 못했다’고 고백하였고, 이들은 블롱들로의 유명세 또는 그릇된 애국심 때문에 집단 환각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블롱들로는 이후에도 N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1909년에 60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채 쓸쓸히 여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1932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국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Irving Langmuir; 1881-1957)는 논문조작이나 사이비과학(Pseudo-Science)과는 약간 다른 범주의 ‘병적인 과학(Pathological science)’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대표적인 예로서 블롱들로에 의한 N선의 발견을 거론한 바 있다. 즉 놀라운 과학발견의 주장들 중에 궁극적으로는 오류로 밝혀진 것들이 적지 않은데, 의도적인 사기나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 상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 국내 재야과학자의 ‘제로 존 이론’ 파문 >
 지난 2007년 여름, 국내의 한 시사월간지는 국내 과학자가 세계 물리학계에 혁명을 일으킬 만한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치과의사 출신의 ‘재야 물리학자’가 주창한 이른바 ‘제로 존 이론’으로 질량, 길이, 시간 등 물리량의 7개 기본단위를 숫자로 바꿔서 호환되도록 했는데, 이는 기존 입자물리학에 커다란 충격을 줄 만한 엄청난 업적이며 노벨물리학상 수상도 확실시 된다고 흥분하였다. 또한 대학 부총장, 정부출연 연구기관 박사 등 상당수의 지도급 과학기술자들이 제로 존 이론을 지지하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썼는데, 이후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관련 기관에 진위를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러나 특종보도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국내 물리학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른바 제로 존 이론이란 단순히 물리 상수들을 짜 맞춘 숫자놀음에 불과하며, 과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더구나 그 몇 년 전 이 이론을 주창한 사람이 모 기업에 연구비를 요청하자 해당 기업은 어느 입자물리학자에게 제로 존 이론에 대해 검증을 부탁하며 연구자를 만나 보다 면밀하게 심사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 학자는 검토 결과 ‘과학적 검증을 거부하는 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유사과학의 위험성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결국 한국물리학회가 나서서 학회 산하의 대언론지원단을 통해 대책을 논의하고 공식적인 검증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소위 ‘제로 존 이론’은 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한때나마 대중들을 흥분시켰을 제로 존 이론 파문은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히 진화된 것은 아니었다. 

 제로 존 이론을 처음 소개했던 월간지는 후속 보도를 통하여 제로 존 이론의 우수성(?)을 강변하였는가 하면, 국내 최고의 과학단체조차도 이를 홍보하는 듯한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패널에 참석한 과학기술자들의 호의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이 제로 존 이론에는 과거 N선의 경우처럼 많은 국내 과학자들이 부화뇌동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지도급 과학기술자들이 이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상당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양에서 주로 발전해오던 최신 입자물리학 이론을 우리나라 재야 과학자가, 그것도 ‘동양사상적 기반과 직관에 의해 일거에 바꿀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에 솔깃하여, 왜곡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적 정서에 휩쓸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우려된다.
 특히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나는 해당 분야(입자물리학)를 전공하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면서까지 제로 존 이론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과학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조차 결여한 것이므로 철저히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블롱들로의 논문에서 검출되었다고 언급된 N선
이미지2: N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블롱들로 교수

  • tphysics ()

    한국에서도 민망한 사건이 있었네요. 저걸로 노벨 물리학상이라니...

  • 궁금이 ()

    최성우님의 칼럼을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이번 편은 특히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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