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2) - 저온의 물리학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6-12-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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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저온’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온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라, 절대 온도 0도, 즉 섭씨 영하 273도 부근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상온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이한 물리현상들이 발견되곤 한다. 초전도 현상도 그 대표적 예 중의 하나이며, 그밖에도 원자, 분자 수준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여러 현상들이 관측되는 경우가 많아서 고체물리학자들의 좋은 연구거리가 된다. 따라서 고체물리학자들 중에 저온을 연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그중에서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거머쥔 이들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많다고 볼 수 있다.
 저온 연구로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는 바로 초전도 현상을 처음 발견한 하이케 카메를링 오네스(Heike Kamerlingh Onnes; 1853-1926)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레이덴 대학의 실험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온에서의 금속과 유체의 성질을 주로 연구하였고, 또한 저온을 만들 수 있는 실험기법을 완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결국 저온물리학에 대한 연구와 액체 헬륨을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 받아 1913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또한 그가 레이덴 대학에 설립한 극저온 연구소는 세계적인 저온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고,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카메를링 오네스 연구소로 불리고 있다.

 본격적인 초전도 현상의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들은 전편에서 이미 상세히 언급한 바 있다. 저온의 물리학은 초전도 뿐 아니라, 레이저 및 분광학, 전자 및 물성의 연구 등 여러 다른 분야들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특히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들과 관련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잇달아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1996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액체'로 꼽히는 초유동체 헬륨-3(3He: 원자량이 3인 헬륨)을 발견한 미국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초유동체란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점성이 사라지면서 벽을 타고 위로 흐르거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특성을 지닌 물질을 말한다. 
 저온물리학의 전문가들인 세 명의 물리학자, 즉 로버트 리처드슨(Robert C. Richardson; 1937-2013), 오셔로프(Douglas D. Osheroff; 1945- ), 데이비드 리(David M. Lee; 1931-)는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가 절대온도 0도의 약 2/1000℃에서 초유동성을 띤다는 사실을 1972년에 밝혀냈다.
 이들의 발견은 저온물리학 연구에 더욱 기여하였고 또한 우주 형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를 활용하면 우주를 형성하게 된 최초의 '대폭발(Big bang)'이 일어난 지 1/1,000,000초 뒤에 최초의 구조물들이 우주에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헬륨-3은 특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축의 방향이 달라지면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이방성(異方性)인데, 한 가지 형태의 헬륨-3이 다른 형태의 헬륨-3으로 바뀌는 물리적 변화는 대폭발이 일어난 직후에 순간적으로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우주의 위상 변화의 모델로 이용된다. 뿐만 아니라 헬륨-3는 고온초전도체를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세라믹 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고온 초전도체 연구에도 공헌했던 스티븐 추(Steven Chu; 1948- )를 비롯한 199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은 예전의 ‘시계의 물리학’ 편에서도 소개했지만, 이들 역시 저온 연구와도 큰 관련이 있다. 스티븐 추와 윌리엄 필립스(William D. Phillips; 1948- ), 클로드 코앙 타누지(Claude Cohen-Tannoudji; 1933-)는 원자와 기체를 얼리지 않고도 극저온으로 냉각시키는 방법과 기술을 각각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결국 레이저 광으로 원자를 가두어 두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구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이라는 새로운 물질상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하고, 원자 하나로 형성되는 레이저를 만드는 데에도 응용되었다.

 이듬해인 1998년도 노벨 물리학상 역시 저온물리학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독일 출신의 호르스트 슈퇴르머(Horst L. Stormer; 1949-),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다니엘 추이(Daniel C. Tsui; 1939-), 스탠퍼드대학의 로버트 래플린(Robert B. Laughlin; 1950-)은 극저온의 아주 강한 자기장 속에 위치한 반도체 내의 전자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극저온의 강자기장이 걸린 상태에서는 전자들이 강하게 끌어당기면서 일종의 유체처럼 행동하므로 ‘양자 유체’라고 불리는데, 또한 이들 전자들은 마치 분수(分數)의 전하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분수 양자 홀 효과’라 불리는 이들의 이론은 고체물리학, 통계물리학, 입자물리학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보다 넓은 틀을 제공하여,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홀 효과(Hall Effect)란 자기장이 걸린 도체에 자기장의 직각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과 전류 모두에 직각방향으로 전기장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1879년에 미국의 물리학자인 에드윈 홀(Edwin Hall)이 처음으로 발견하여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학부의 물리학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나오며 이를 응용한 센서도 개발되어 있다.
 또한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클리칭(Klaus von Klitzing; 1943-)는 홀 효과가 양자역학적 차원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입증하여 198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다. 즉 적당한 자기장에서 일반적으로 홀 저항은 자기장의 세기 변화에 따라 일정하게 연속적으로 변하는데, 특정한 조건에서 자기장을 변화시키면 홀 저항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불연속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즉 홀 효과가 양자화(量子化; quantized)된 셈이므로, 이는 ‘양자 홀 효과’라 불린다.
 슈퇴르머와 추이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낮은 온도와 더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면 양자 홀 효과에 관계하는 입자들이 전자의 1/3, 1/5 또는 1/7과 같은 분수 전하를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분수 양자 홀 효과’를 발견하였다. 러플린은 거기에 부합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스스로 만들어 낸 새로운 종류의 양자 유체를 통하여 ‘분수 전하를 가진 준입자의 존재’를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러플린은 한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을 역임하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물리학자이다.
 저온의 물리학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을 떠나서도, 앞으로도 고체물리학 뿐 아니라 우주론, 입자물리학 등 물리학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단서와 새로운 이론의 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By  최성우

이미지 1 : 초유동성을 보이는 액체헬륨
이미지 2 : 저온물리학의 산실이 된 카메를링 오네스 연구소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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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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