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과학 문화재 - 측우기와 다라니경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7-01-0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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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의 과학 문화재들 중에서는 세계 최초인 것들도 적지 않다. 즉 서양보다 훨씬 앞섰던 금속활자, 설계도가 남아 있던 것 중에서 최초의 로켓무기로서 최근 복원된 신기전(神機箭) 등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공인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 여겨 온 익숙한 과학 문화재가, 엉뚱하게도 해외학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안타까운 사례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구인 측우기와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 다라니경이다.

< 청나라 연호만으로 중국의 발명품? >
최근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공중파 드라마 및 장영실의 이름을 딴 과학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이 방영되기도 하면서, 장영실과 그의 삶, 그리고 세종대왕 시절의 우리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관심 등이 크게 높아진 바 있다. 장영실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있고 오해도 적지 않은데, 일반 대중들 중에는 측우기가 장영실의 발명품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장남인 문종이다. 즉 문종이 세자 시절에 그릇 등에 빗물을 받아 양을 재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세종 23년(1441년)에 발명했던 것이다. 그 이듬해인 세종 24년(1442년)에는 측우기를 이용한 전국적인 우량 관측 및 보고 제도가 정립되어, 중앙의 천문 관서인 서운관(書雲觀) 및 전국 팔도의 감영과 관아에 측우기를 설치하고 강우량을 기록하게 하였다.

측우기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도 세종 시절부터이며, 측우기는 유럽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카스텔리의 우량계(1639년)보다 무려 200년 가까이 앞서는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측우기를 이용한 강우량 측정제도는 한때 명맥이 끊겼으나 영조시대에 다시 부활하여, 측우기에 의한 강우량의 관측과 보고는 20세기 초에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종 시절의 측우기는 현재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고, 현존하는 측우기로는 헌종 3년(1837년)에 제작되어 공주 감영에 설치되었으나, 이후 일본에 반출되었다가 반환된 이른바 금영측우기(錦營測雨器; 보물 제561호)가 유일하다. 그러나 물통을 제외한 받침대 부분, 즉 측우대는 관상감 측우대와 경상감영 측우대 등 여러 기가 남아 있다.

측우기가 중국의 발명품이라는 설의 유일한 근거는 선화당 측우대라고도 불리는 경상감영 측우대(보물 제842호)에 쓰여 있는 ‘건륭경인오월(乾隆庚寅五月)’이라는 문구이다. 건륭은 청나라 고종황제의 연호이니, 측우기는 중국에서 만들어서 조선에 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청나라의 연호를 널리 사용하고 있었음을 중국의 학자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더 나아가서 세종 시절의 측우기도 명나라에서 제작되어 하사되었을 것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에는 실물로 전해오는 측우기나 측우대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측우기에 의한 강우량 관측 기록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로서 중국과 동양 과학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던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이 “측우기는 한국(조선)에 운용 기록과 실물이 전해오지만, 중국에서 먼저 발명되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는 바람에 중국에 우선권에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사 학자들은 측우기 중국 발명설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으나, 니덤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서양학자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 다라니경도 과학판 동북공정의 희생양 >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해체, 복원 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으며, 705년 전후의 인쇄물로 여겨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팔만대장경, 금속활자와 아울러, 우리 조상들의 뛰어났던 인쇄문화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귀중한 과학문화재인 셈이다.
다라니경의 정확한 인쇄연도를 알기는 어렵지만 석가탑 건립연대의 하한선인 751년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인쇄물로 알려졌던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百萬塔陀羅尼經; 770년 인쇄)’보다 20년가량 앞서는 셈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라니경 역시 세계 학계에서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것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 역시 측우기의 경우와 데자뷔처럼 유사하다. 즉 다라니경에서 발견된 일부 한자가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기(690~705년)에만 쓰이던 것이었으므로, 다라니경은 중국에서 인쇄되어 신라로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지프 니덤이 그의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측우기와 마찬가지로 다라니경 역시 중국의 편을 들어준 바 있다.

당나라에서 쓰던 한자를 신라에서도 도입해 썼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일 것이며, 다라니경의 종이가 당나라 것이 아니라 신라 것이라는 일본 보존과학자들의 분석 결과가 나오는 등, 다라니경이 중국이 아니라 신라에서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여러 고고학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학자들은 다라니경에서도 ‘과학판 동북공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의 과학 문화재 등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막연하게 전통 과학기술의 우수성 등을 강조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의 뿌리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여, 우리의 것을 남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 건륭경인오월이라는 제작연도가 쓰여진 측우대
이미지2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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