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 테슬라 모터스, 인간DNA...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7-0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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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의 하나이자, 해결 또는 합의를 이루어야할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서 카피레프트, 즉 지적재산권의 공유(共有) 문제가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라는 용어는 저작권,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미국 MIT 대학의 컴퓨터학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공유와 자유로운 복제, 사용을 통한 정보화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하면서, 1984년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90년대 초반에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리누스 토발즈(Linus Tovals)가 유닉스(Unix)를 기반으로 공개용 오퍼레이팅 시스템인 리눅스(Linux)를 개발한 이후 카피레프트 운동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X선의 발견자인 뢴트겐(Wilhelm Konrad Rontgen; 1845-1923)이야말로 카피레프트 정신의 선구자라 할 만한데, 그 후로도 뢴트겐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데자뷔를 보는 듯 종종 나타난 바 있다.

< 카피레프트의 선구자(?) 뢴트겐 >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은 1895년 11월 8일부터 크룩스관을 이용하여 음극선 실험을 하던 중, 검은 종이를 꿰뚫는 신비한 광선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이 광선의 성질을 계속 연구하던 그는 12월 22일에 이 광선을 이용하여 아내의 손뼈를 찍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뢴트겐은 미지의 새로운 광선을 X선이라 이름 짓고 곧 연구 결과를 보고했는데, 이는 물리학회, 의학회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언론 등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뢴트겐은 노벨물리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고, X선의 발견은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즉, 방사선의 발견에도 X선이 계기가 되었고,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에 X선을 쬐여서 구조를 알아내는 X선결정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가 생겨났으며, 이후에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그런데 X선이 한창 각광을 받고 있던 어느 날, 독일의 가장 큰 전기회사 대표가 뢴트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뢴트겐에게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X선의 특허권을 자신의 회사로 양도해 달라고 청탁하였다. 뢴트겐이 틀림없이 X선 발생장치를 이미 특허로 출원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X선 특허권을 양도받아 큰 돈을 벌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뢴트겐은 고개를 저으며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하였다고 한다.
“X선을 특허로 낸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X선을 혼자서 독차지하겠다는 말인가? X선은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것을 내가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X선은 온 인류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뢴트겐은 자신이 고안한 X선 발생장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개량에 힘써서 더욱 성능이 좋은 X선 장치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뢴트겐의 말처럼 X선 자체는 애초부터 이미 존재하던 것이므로 그 발견 자체가 특허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고안한 X선 발생장치나 그 이용방법 등은 충분히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서, 그 권리를 독점했다면 뢴트겐은 갑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 수학을 특허로 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
뢴트겐이 현대적인 카피레프트 이념을 지녔던 것인지, 아니면 과학자가 돈벌이에 골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비정신’에 따른 것인지 확언하기 어렵겠지만, 이후로도 뢴트겐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과학기술자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퀴리(Curie) 부인 역시 방사성 원소의 분리 및 이용 등에 관해 특허를 받았더라면, 거뜬히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지난 1999년, 아일랜드의 사라 플래너리(Sarah Flannery; 1982-)라는 여고생이 기존의 전자우편 보안체계보다 30배나 빠른 새로운 암호체계를 발견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행렬수학을 이용한 새로운 암호체계로 케일리-퍼서 알고리즘이라 이름 붙여졌고, 그녀는 이를 통하여 청소년 과학자대회 등에서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한 세계 굴지의 컴퓨터업체들이 몰려들어 취업과 특허권 사용을 제의하였으나, 당시 16세의 이 소녀는 “내 발명품은 기본적으로 수학이다. 수학을 특허로 하는 것은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안 된다.” 라고 어른스럽게 말하면서 그들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수학이나 수식 자체는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으나, 수식을 이용한 알고리즘이나 암호체계 등은 특허를 어떤 방식으로 출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특허권을 획득할 수 있다. 여고생 플래너리의 당찬 생각은 뢴트겐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세계 전기자동차 업체의 선두주자이자 대표적인 혁신기업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테슬라 모터스는 지난 2014년 6월, 자사 보유의 전기차 관련 특허를 모두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발표하여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전기차 업체가 테슬라의 특허 기술을 마음대로 가져다 사용하거나, 이를 통하여 테슬라 전기차와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도 절대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슬라 모터스의 CEO 엘론 머스크가 순수한 카피레프트적인 이념이나 뢴트겐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특허를 공개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전기자동차가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극히 적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술의 독점보다는 공개를 통하여 전체 전기자동차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결국은 자기네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업가적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 자체에 특허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으나, 세계 각국의 특허청은 유용성이 입증된 인간 유전자는 특허를 부여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에 따라 이미 엄청난 개수의 인간 유전자 특허가 등록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 유전자 특허 일부에 특허무효 판결을 내림으로써, 특허로 등록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상기시키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미리어드라는 생명공학 기업이 1990년대 초반에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에 영향을 끼치는 브래커1(BRAC1)과 브래커2(BRAC2)로 불리는 돌연변이 유전자 2개의 정확한 위치와 배열을 발견해 특허권을 취득한 데에서 시작하였다. 이를 통하여 환자의 암 발병 가능성을 진단하는 고가의 의료상품을 독점 판매해온 해당 기업에 대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2009년 특허 취소 소송을 내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렸으나, 연방 대법원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디엔에이(DNA)는 자연의 산물이며 그것은 단순히 분리해냈다는 이유만으로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물론 모든 인간 유전자 특허가 무효라는 의미는 아니며, 인위적 합성 유전자는 특허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으나,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특허를 받을 수는 없다.’던 뢴트겐의 이상이 다시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1: 테슬러 모터스의 로고
이미지2: 새로운 암호체계를 개발한 사라 플래너리가 쓴 책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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