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발명 - DDT와 보르도액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7-01-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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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역사상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하면 새로운 제품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거나, 그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자연현상이나 물질의 존재 등을 밝혀내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발명이 또 하나 있으니, 이미 알려진 물질의 새로운 용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용도 발명’을 이루면, 다른 형태의 발명과 마찬가지로 특허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 영욕이 교차했던 살충제의 대명사 DDT >
용도 발명의 대표로 꼽힐 만한 것이 바로 예전에 농약과 살충제로 널리 쓰였던 DDT이다.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이라는 화학물질의 정식 명칭은 너무 길고 어려워서 일반 대중들이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므로, 두문자를 따서 통상 DDT라 지칭한다.
DDT는 원래 자연에 있었던 물질은 아니고 새롭게 만들어진 화학물질인데,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자이들러(Othmar Zeidler; 1850?1911)가 1874년에 처음으로 합성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DDT에 살충효과가 있는지 전혀 몰랐고, 이것이 밝혀진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화학적인 살충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국화과의 다년생화초인 제충국(除蟲菊; pyrethrum)이 모기를 죽이는 향불 및 천연농약으로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충국은 양도 적고 너무 비쌌으므로 대량으로 일반에 공급되기는 어려웠는데, 특히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제충국 원료의 공급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의 염료회사 가이기 연구소에서 살충제를 연구하던 뮐러(Paul Herman Muller; 1899-1965)는 제충국과 유사한 성분의 화학물질을 찾던 중, DDT라는 합성물질이 곤충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성질이 있음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1941년 살충제 DDT를 특허로 출원했고, 이듬해 제품으로 출시되어 살충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방전선 등 열대지역에서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던 미군들에게 DDT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귀중한 선물이었다. 1942년 말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 둘러싸인 스위스의 가이기 회사로부터 미국이 DDT의 샘플과 자료를 입수하는 일은 어느 중요한 군사작전보다도 더 비밀스럽게 진행되었고, 결국은 성공하여 DDT 는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싼 가격으로 대량생산될 수 있었던 DDT는 전쟁 이후에는 살충용 농약으로도 널리 공급되었고, DDT 용도 발명자 뮐러는 말라리아모기 퇴치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DDT를 세계 각국이 남용하면서 환경에 대한 유해성과 부작용 문제 등이 제기되었고, 특히 생물학자이자 작가였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1962년에 출간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DDT의 위험성과 피해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인류를 구한 기적의 살충제 DDT가 환경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된 셈이다. 결국 DDT가 인체에 직접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곤충과 조류 등 각종 동물에 DDT가 축적되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1970년대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DDT를 농약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 포도서리를 막는 착색제에서 농약으로 >
DDT와 유사한 용도 발명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특히 착색제 보르도액을 농약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데자뷔라 할 만큼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포도주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대학 교수로 부임해 온 식물학자 미야르데(Pierre Marie Alexis Millardet; 1838-1902)는 포도의 병충해를 막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1882년에 노균병에 걸린 포도나무들을 살펴보던 미야르데는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포도나무가 병에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길가에 있던 포도나무들은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길가의 포도나무에는 황산구리와 석회를 섞은 용액이 뿌려져 있다는 점 이외에는 다른 차이는 없었다.
이른바 보르도액(Bordeaux mixture)이라고 불리는 이 혼합액은 어린이들의 장난이나 포도를 훔치려는 사람들로부터 포도서리를 막기 위하여 뿌려진 것인데, 보기에도 흉측한 녹색이어서 독약처럼 보이는데다가 나쁜 맛을 내기 때문에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포도를 지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다.

미야르데는 보르도액을 뿌리지 않은 포도는 노균병에 걸린 반면, 이것을 뿌린 포도는 병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욱 깊이 연구한 결과, 보르도액의 황산구리 속에 녹아 있는 구리이온이 노균병 방지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르도액이 포도나무의 노균병 방지에 특효가 있는 것이 밝혀지자, 대량으로 생산되어 프랑스 곳곳의 포도밭에 뿌려졌고, 유럽의 다른 지방에도 소문이 퍼져서 포도농가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야르데는 또한, 감자나 토마토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가 포도의 노균병균과 유사하는데에 착안하여, 보르도액을 감자의 병해를 예방하는 실험을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보르도액은 전 세계에서 여러 다양한 농작물들의 병해를 막아 주는 중요한 농약으로 쓰이게 되었다. 보르도액을 그저 포도서리 방지용으로만 보아 넘겼다면, 인간에게 큰 혜택을 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보르도액은 DDT의 경우와는 달리 비교적 친환경적인 농약으로서 현재까지도 과수나 화훼작물에 보호 살균제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보르도액은 사용하려고 할 때 각 농가에서 직접 제조하여 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By 최성우


이미지1 : 모기 박멸을 위해 살포하는 DDT
이미지2 : 착색제에서 농약이 된 보르도액

  • 긍정이 ()

    비아그라나 탈모치료제인 프로페시아도 용도 발명에 해당되겠네요 ^^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최성우 ()

    비아그라, 미녹시딜 등은 원래 의도했던 목적의 치료가 아닌 다른 효과가 발견되어서 도리어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인데, 일종의 용도발명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의약품 분야에 이런 사례가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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