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와지에, 아인슈타인, 벨의 공통점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7-02-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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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과학기술자들의 위대한 업적

                                                        By 최성우
 
 우리 사회에서 ‘아마추어(amateur)’하면 사전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서툰 비전문가, 즉 직업적으로 일을 하는 이들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통하곤 한다. 과학기술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에는 물론 연구개발 등을 직업으로 삼았던 이들이 매우 많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직업적인 과학기술자’로 보기에는 어려운 인물들 또는 다른 일을 생업으로 삼았던 아마추어들에 의하여 매우 중요한 과학기술상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자 하면 이공계대학 교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연구원 등을 떠올리게 되므로, 사람들은 직업으로서의 과학기술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학기술자들이 시쳇말로 ‘과학기술 연구로만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근대 과학혁명 초기에만 해도 소수의 대학교수들을 빼면, 많은 과학자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부자나 고위 귀족 출신이었다. 만유인력 상수를 측정한 캐번디시(Henry Cavendish; 1731-1810),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부와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캐번디시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귀족으로서, 사람들을 싫어하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비틀림 진자를 이용한 만유인력 상수의 측정, 수소(水素)의 발견, 열 및 정전기의 연구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그는 ‘모든 학자 중에서 가장 부유했으며, 또한 모든 부자 중에서는 가장 학식 있는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라부와지에 역시 아버지가 유명 변호사였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과학연구에 매진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본업은 세금 징수관이었다. 그러나 이 직업은 훗날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후에 ‘가난한 시민들을 수탈한 죄’로 그를 단두대로 몰아넣은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는 20세기말까지도 풀리지 않았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그 역시 변호사, 지방의회 의원 등으로 활동했던 아마추어 수학자였다.
 역사상 저명한 과학자 중에는 부자나 귀족 출신은 아니라 해도, 성직자로서 비교적 여유롭게 과학을 연구할 형편이 되었던 이들도 있었다. 영국의 프리스틀리 목사, 오스트리아의 멘델 신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는 산소(酸素)를 발견한 화학자 중의 한사람이며, 전기학의 연구에도 조예가 깊어서 관련 저술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목사로서, 신학자이자 사회사상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한 바 있다. 멘델 신부(Gregor Johann Mendel, 1822-1884)는 유전법칙을 처음으로 발견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몸담던 수도원의 뒤뜰에서 완두콩을 재료로 실험했던 자신의 연구가 당시 생물학자로부터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자, 수도원장으로서 조용한 여생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예로 든 근대 과학자들, 즉 부유한 귀족이나 성직자 출신으로서 취미나 기호 삼아 과학연구를 하였던 이들이야말로 ‘애호가’라는 본래 의미의 아마추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적인 과학기술자들과의 경쟁에서 끝내 승리하거나, 이들을 능가하는 업적을 남긴 위대한 아마추어들도 적지 않다.
 ‘프로를 이긴 아마추어’의 대표적인 경우로서 바로 전화기의 발명자인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을 떠올릴 수 있다. 벨과 전화기 특허권을 다투었던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는 전문 발명가로서 벨보다 성능이 우수한 전화기를 발명하고도 결국 경쟁에서 패배하였는데, 벨이 아마추어였던 점이 도리어 승리의 요인이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즉 당시 미국의 통신사업을 독점하던 거대기업 웨스턴 유니언 전신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그레이는 전화보다는 다중전신 등을 개발해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반면에, 음성학자이자 교육자 출신으로서 웨스턴 유니언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벨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자적으로 전화의 실용화 및 사업화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역시 위대한 아마추어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이른바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로 불리는 1905년에 특수상대성 이론, 광양자 가설, 브라운 운동의 해석 등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논문들을 쏟아내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대학교수도, 연구소의 연구원도 아닌,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특허 심사를 하는 일이 본업이었다.   

 반면에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과학자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멘델 신부와 ‘대륙이동설’의 제창자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가 그런 예이다. 만약 멘델이 학회에서 유전법칙을 발표할 당시에, 과학 분야에 관한 것이라곤 대리교사 경력이 전부인 가톨릭 신부가 아니라 저명한 대학교수나 생물학자였다면, 상황은 혹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유전법칙이 당시 생물학의 주 관심분야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처럼 중요한 논문이 대다수 생물학자들에게 잊힌 채 수십 년간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사장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베게너 또한 탐험가이자 지구과학자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주장을 펼칠 당시 왕립기상관측소에서 일하는 기상학자였지, 지질학의 전문가로 인정받던 사람은 아니었다. 보수적인 대다수 정통 지질학자의 눈에는 ‘대륙이 움직인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는 그가 풋내기 아마추어 지질학자 정도로 비쳤을 것임이 틀림없다.
 1963년 ‘결정론적인 비주기성 흐름’이라는 논문을 대기과학지에 실어 오늘날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과학의 단초를 제공한 기상학자 로렌츠(Edward Lorenz; 1917-2008) 역시 수학과 물리학에는 아마추어였을 것이므로 처음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의 논문이 뒤늦게나마 각광을 받고 생전에 카오스 이론의 창시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기술적 발견, 발명들은 과학기술 연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정부나 민간자본의 지원 아래 수십, 수백 명 이상의 과학기술자를 동원한 조직적 연구개발이 빈번한 요즘에는 옛날보다 아마추어 과학기술자들의 입지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때에 따라서는 직업적인 전문 과학기술자 못지않게 아마추어들도 좋은 업적을 낼 수 있는 경우도 분명 있으며, 아마추어들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사고가 다시 과학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넓힐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미지1: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
이미지2: 프리스틀리가 사용한 실험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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