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함정에 빠뜨린 과학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7-02-2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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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에서도 적지 않은 조작이나 사기 사건들이 있었고, 여러 경우를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단순한 거짓이나 날조가 아니라, 일부러 함정을 파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린 사건들도 있었다. 20세기말에 이른바 과학전쟁을 촉발시킨 소칼 교수의 지적사기 사건이 대표적인데, 과거에 화석의 정체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 가짜 화석에 속은 베링거 교수 >
화석의 정체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여러 의견이 분분했으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29)가 처음으로 ‘화석은 생물의 유해가 돌처럼 굳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확한 해석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근대사회 초기만 해도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도리어 화석은 동식물의 유해가 아니라,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후 실수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잊어버려서 만들어진 것이라거나, 우연히 생물체의 모양을 닮은 돌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만만치 않았다.
 독일의 화석연구가 베링거(Johann Beringer; 1667-1740) 교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뷔르츠부르크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도 화석이 될 수 있다는 이른바 화석의 무기기원설을 적극 주장하였다. 즉, 대부분의 화석들은 신의 세공품이라고 보았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평소 베링거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같은 대학의 동료교수 로데릭(Ignatz Roderick)과 도서관 사서 엑카르트(Georg von Eckart)는 베링거가 오만하고 너무 독단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베링거를 골탕 먹이기 위하여 모종의 ‘작전’을 꾸미게 되었는데, 석회암에 생물모양 등을 조각해서 화석처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소년들을 시켜서 그 가짜화석들을 땅 속에 묻은 후, 베링거가 화석탐사를 할 때에 맞춰 발굴되도록 하였다.
부근의 산지에서 화석 발굴작업을 벌이던 베링거는 물고기, 새, 곤충, 뱀 등 여러 동물의 모양이 새겨진 돌과 식물 모양의 돌, 심지어 해, 달, 별 등의 모양이 그려진 돌 등 갖가지 화석들을 다수 발굴하는 개가(?)를 올렸고 그는 이들이 무기기원 화석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였다.

베링거는 이들을 자료로 하여 자신의 견해를 담은 책자도 발간해서 학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또한,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가 새겨진 돌들도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번역해보니 신의 이름인 ‘여호와(Jehovah)’를 뜻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링거는 더욱 고무되어서, 신이 자신의 세공품에 사인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발굴한 화석이 동료들의 조작극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베링거도 뒤늦게야 눈치를 채게 되었다. 나중에 암석들 중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화석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베링거는 재산을 털어서 그간 출판된 책들을 모두 수거해서 불태워 버리려 했으나, 그 일을 마치지 못하고 1740년에 죽었다. 그 후 1767년에는 출판업자가 그 책을 잘못된 믿음의 표본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덧붙여 재판을 발행했는데, 초판보다 수천부나 많이 팔렸다고 한다.

< 소칼의 지적사기 사건과 과학전쟁 >
20세기가 거의 저물어가던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른바 소칼의 ‘지적사기 사건’ 및 앞뒤를 이은 ‘과학전쟁’으로 인하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면서 과학기술학계 및 저명 과학자들이 함께 격랑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자연과학 이론의 진리성, 가치중립성 및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논란 등이 또 한 번 불거지면서 과학자들과 일부 과학사회학자들, 나아가서는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 진영 사이에 심각한 대립과 논쟁이 되풀이되었다.
지적사기 사건의 발단은 뉴욕 대학의 수리물리학자인 앨런 소칼(Alan Sokal) 교수가 포스트모더니즘적 조류를 지닌 ‘소셜 텍스트’라는 학술지에 ‘양자 중력의 변형적인 해석학을 위해서’라는 난해한 논문을 기고하면서 출발하였다. 또한 이 잡지는 과학적 진리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상대주의적인 과학관을 강조하는 이른바 스트롱 프로그램 사회구성주의, 혹은 SSK(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과학사회학에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보였다.
소칼은 논문에서 뉴에이지 운동 등의 신비주의적 개념이 양자중력 이론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현대 수학의 비선형성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뒷받침한다는 등 잡지 편집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주장들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잡지가 출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칼은 소셜 텍스트에 기고했던 자신의 논문이 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엉터리 날조에 불과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고, 자신의 기대(?)대로 그 논문이 출판된 것은 소셜 텍스트 편집인을 비롯한 상대방 진영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소칼의 폭로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계 및 SSK 과학사회학 진영에 ‘화염병’을 던진 것으로 여겨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과학전쟁이 더욱 불붙게 되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스스로 지적 사기사건(Hoax)을 일으킨 소칼의 방법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는 사회구성주의 과학사회학이 사람들이 자연과학적 진리를 제멋대로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만들어 폄하하면서 잘못된 이론을 주장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하기 힘들어서, 이들의 허구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일부러 엉터리 논문을 써서 내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얘기하였다.
소칼의 지적사기 사건과 과학전쟁은 이후로도 여러 후폭풍을 낳으면서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간에 감정적 골을 더 깊게 패이게 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온 후에 땅이 굳는’ 식으로 극단적 대립과 치열한 논쟁을 겪고 난 이후에 비로소 진정한 화해와 상호 이해의 계기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베링거의 책에 수록된 해달별 모양의 화석
이미지2: 지적사기사건을 일으킨 알랜 소칼 교수 ⓒ Cml3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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