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살리는 길 -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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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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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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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공계가 무너지는 소리'는 이공계 문제에 대한 한 단면을 소개한 것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이미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고 푸념과 자조, 포기, 격분 등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제 더 이상 사람 현혹하는 정책이나 사탕발림으로는 이공계 기피문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누가 어떤 의도로 이 문제를 언급하든 혹은 덮으려 하든, 이미 알만한 사람은 실상을 알고있고 스스로 알아서 행동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민감한 부류는 학부모, 그것도 이공계 직업을 가진 학부모일 듯 싶고, 가장 둔감한 부류는 원래부터 이런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대다수 정치인/관료,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 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이공인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흐름이고, 문제해결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몇가지 해법에 대해 본인이 평소 생각했던 바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고견이 있으면 주저하지말고 본 의견에 첨삭을 가해주면 고맙겠다.


1. 이공계 문제의 이해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IMF때 이공계 인력 대량 실직, 이공계 교차지원자 급감, 서울대 이공계 박사과정 미달, 과학고 등 우수 졸업생 대부분 의대진학, '대덕아빠의 고뇌' 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밑바닥에서는 알려져 있던 고질화된 문제였었고 더 이상 문제를 숨기거나 호도할 수 없게 되자 터져나오게 된 것으로 차츰 인식되고 있다. 웹문화의 발달이 개인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이공인들을 각성시키게 된 주요한 동인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많은 이공인들이,

1) 이공인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현 정치, 언론의 인적구성,
2) 의사, 변호사들의 사회적 특권문제,
3) 과학기술 관련 정부부처 관료나 의원들의 과학기술 전문성 부재 문제,
4) 과학기술계 몰락에 따른 국가장래문제 등

이공계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과는 달리 이공인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제까지도 결국 이공계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이슈로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미 우리 사회 중견인력인 대졸자의 절반이 이공계(4년제는 약 1/3이지만, 2년제까지 포함한 대졸자는 약 1/2) 출신인 점을 감안할 때, 묻혀있던 이공인의 목소리는 분명 경우에 따라 엄청 커질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욕심이 적고, 학문적 배경이 취약하며(인문, 사회과학이 이 경우 상당히 유리), 조직적 대응에 서툰 이공인들이 내는 실질적인 목소리는 아직까지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학력(공고-이공계 박사) 및 직종(서로 연관성이 낮고 이해가 어려워 인문사회과학처럼 공통성이 별로 없다)이 천차만별이고, 직업 종류도 엄청 달라(고졸 생산직과 공대교수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공계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댄다?) 한 목소리 내기도 매우 힘들고, 또 통일된 문제로 인식해나가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과 온갖 장애요소에도 불구하고, 워낙 잠재돼왔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이 문제는 터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고, 일에는 우선 순위와 중요도, 시급성이 있는 법!  그리고 '일타 3피', '일파 만파'!

제대로 된 대책 한 두가지가 이공계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 문제를 몇 개로 압축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매우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공계 문제를 다음과 같이 압축해서 보고자 한다.

1) 우수 고졸자 이공계 기피 및 의대-법대 집중 문제
2) 우수 이공계 대학생 국내대학원 기피 및 해외유학/이민으로 인한 인력유출 문제
3) 이공계 고급인력(특히 박사급 연구원)의 낮은 사회적 위상, 열악한 처우 및 상대적 박탈감 문제
4) 21세기 국가발전을 주도할 국가 과학기술력의 총체적 부실 및 이공계 지도층 문제

그 외에도 산업계 인력부족 문제, 부실한 연구관리 및 평가 체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 공기업 및 정부산하기관의 미진한 구조조정 및 개혁문제, 이공계 관료제도의 정비문제,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의 이공계 비하의식 문제, 국가 중점 육성 기술분야 선정문제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일단 위 4가지로만 국한하여 간단한 원인분석과 대책을 논해보고자 한다.


2. 우수 고졸자 이공계 기피 및 의대-법대 집중 문제 대책

이 문제의 원인은 단순하다.
같은 노력이면 이공계 진학보다는 의대, 법대 진학이 엄청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과거에는 이런 문제가 그렇게까지는 심각하지 않았었나?"라고 의문을 갖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의대(수련의 과정), 법대(사시준비과정)의 어려움이 과장되게 포장된 반면, 이공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및 지원(장학금 및 병역특례 등)으로 심지어는 이공계 박사가 의사, 변호사보다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격세지감 -_-;)

하지만 그간 사정이 달라졌다. 인터넷 때문에 신문보다 더 생생한 '현장증언'을 접한 영악한 중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행동에 옮기면서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도 놀랄만큼 빠른 사회다. 이공계 기피문제가 불거진게 벌써 언제인데, 아직도 대책마련이나 하고 있으니, 굼뜬 정부나 기득권층이 당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바꿔볼 수 있는 대책은 없은가?
아무리 파격적인 이공계 홍보나 지원을 해도 의대와 법대의 상대적 가치가 이렇게 높아가지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일단 선진국의 1/3-1/5에 불과한 의사 및 변호사 비율을 대폭 현실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향후 4년간 의사 및 법조인 배출수를 적어도 2배 이상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매년 의대 및 사시정원을 25%씩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이공계 문제 해결 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완화 및 특권층 해소를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대책이다.

또한 선진국형 의약분업의 강력한 추진과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층의 카드결제 의무화, 과세/납세 실적 공개 등을 통해 매월 수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비정상적인 폭리구조를 대폭 완화시켜 국민적 위화감을 해소하고 조세정의를 구현하는 모범사례로 삼을 필요가 있다.

간혹 이공인 문제와 의사, 변호사 문제는 무관하다고 강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문제해결의 예봉을 꺾으려는 시도로밖에는 볼 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3. 우수 이공계 대학생 국내대학원 기피 및 인력유출문제 대책

일단 우여곡절 끝에 이공계 대학에 진학을 했어도, 4년 내내 영어공부에 매달리거나 편입시험 준비, 자격증 준비에 매달리며, 해외유학을 떠나게 되는 것도 문제다. 특히 명문 이공계 대학원의 부실화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이공계 대학을 붕괴시키기 때문에 대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떠나간 인력들이 과거처럼 귀환하는 것이 아니고 영구 취직 즉, 이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는 국내에 잔류한 대다수 타 이공인들을 자극하여 중년 이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문사회전공자들과는 달리, 이공인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식과 적당한 정도의 어학실력, 개인주의적이고도 유연한 사고방식 때문에 쉽게 한국을 뜰 수 있다는 점을 십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 미국이 우수 이공인력을 전 세계로부터 흡수하여 일류국가를 유지하고 있고, 며칠 전 EU국가들이 과학기술인력 유출을 방지하고자 초국가적인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외인력 유출문제를 막을 것인가?
먼저, 국내대학원을 과거처럼 활성화해야 한다. 과거 KAIST 설립목적이 실질적으로 우수인력의 해외유학을 차단하고 국내정착을 유도하는 것이었는데, 서울대 및 포항공대 대학원 등 우수 국내 대학원도 함께 활성화 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더 구체적인 대책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해외유학자들에 대한 옥석구분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수 해외유학인력이 입는 선의의 피해방지를 위해서도 업체, 연구소, 학교에서 이들을 채용시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같은 조건이면 국내박사를 해외박사보다 우대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국내 타대학출신 박사비율을 일정 수준이상 유지하도록 교수채용시 강제하는 것이 한 예다.

또한 KAIST 활성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주된 원인 중 하나였던 병역특례 제도를 더욱 보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병역특례기간에 방산업체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전직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고 해외여행의 제한을 철폐하는 등의 조치는 돈 안 들고 광낼 수 있는 것들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과도한 영어 능력을 이공인들에게 요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영어가 필요한 것은 분명 맞지만, 이미 국어, 고어, 한자어에다 제 2외국어는 물론 해외유명학회지 게재까지 요구하는 국내 박사 요구조건이 부족해서 거기다가 능통한 영어실력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이다. 자신들의 고어인 라틴어만 조금 알아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상당수 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한국 이공인들이  5개언어에 친숙하고도 어려운 과학기술을 익히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는 것을 아는가?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떨쳐버리기 위해 국내박사들이 통과의례처럼 외국으로 포닥을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력유출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시간낭비 및 기술유출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니 차라리 외국 유학을 갔다오는 게 낫다는 식으로 발전하여, 언어습득이 해외유학을 가는 한 이유까지 되고 있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해외유학을 떠나는 또 한 부류는 이른바 비명문대 우수성적자들로서 학벌위주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선택하는 것이 해외유학이다. 모든 대학이 연구중심 대학원 체제로 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중심, 현장인력 양성 중심의 학부교육을 대부분의 대학이 실시하고, 연구중심 대학원(KAIST, 서울대, 포항공대 등 10여개 대학원으로 국한)은 대신 타 대학에 개방하도록 해야 이 문제도 완화된다고 본다.

하지만, EU국가들이 내놓는 대책에서도 드러나듯이 근본적으로 미국보다 더 집중적인 과학기술 투자를 하고, 보다 나은 대우를 통해서 우수인력이 해외진출보다는 국내 석박사 진학을 더 선호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


4. 이공계 고급인력의 낮은 사회적 위상, 열악한 처우 및 상대적 박탈감 문제 대책

중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1, 2 등 하던 사람들이 서울대 법대나 의대보다 KAIST나 서울대 공대, 또는 포항공대 등의 명문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해보니 '현실은 이게 아니구나!'하고 느끼면서 이 문제가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분명 70학번에서 90학번대의 대학졸업자들은 한 때 화공과,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가 최고의 학과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고 또 예비고사나 수능 수석합격자들이 자신의 희망전공으로 밝히던 것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IMF를 거치고, 이공계에 대한 환상과 거품이 꺼지면서 이공계 푸대접 문제가 표면으로 급격히 부상했다. 과학기술자들은 교사나 약사들보다 더 사회적으로 발언권과 협상력도 없고, 그들이 20년 넘게 갈고 닦아온 지식은 헐값에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믿기가 힘들다. 이미 직업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어버린 연봉수준이 공학박사가 나이 어린 학사출신 은행대리보다 낮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렇듯 우리 사회 대졸자의 절반에 해당되는 이공인들은 정치인, 관료, 언론인, 경영인 등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전통적인 '사농공상' 의식, 과학기술이 현대문명을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한 기득권층의 거부감 및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무지, 이공계와 인문사회전공자들간 빈약한 교류 등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는, 우선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파격적인 위상정립을 들 수 있다. 자기 자신도 공학인이었던 중국 장쩌민이 했던 것처럼 원로 과학기술자를 병문안 하고 외국인 이공계 교수를 일반 중국인 교수보다 50배이상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것까지는 안 바라고, 몇가지 상징적인 조치라도 우선 시행했으면 한다.

1) 국가 공식행사시 의전서열에서 법조인이나 정관계 인사보다는 과학기술계 인사를 우선
2) 매년 연초에 학계의 권위자를 초빙해서 국제정세니 경제전망이니 남북통일같은 것을 듣는 대신, 과학기술자들이 나와 세계 과학기술 전망이나 경제, 안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3) 우수 과학기술자의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소 안치 (비슷한 얘기가 대책으로 나왔지만 내용은 이 의견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4) 연구개발중 순직한 과학기술자는 순국선열 반열에 추서하고, 무공훈장과 동등한 수준의 훈장 수여

다음 처우개선 문제에 있어서 모든 이공인을 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겠으나 일부 성과가 우수한 인력에 한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과학기술자 대우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1) 1억원이상 연봉자('01년 기준, 약 2만명)의 절반이상이 이공인이 될 수 있도록 정책목표 선정
2) 1억원이상 연봉 연구원 수가 전체 연구원의 10%를 넘도록 우선적으로 추진
3) 연구개발 기술 및 제품 로열티의 20-50%(최대 개인별로 10억원)를 참여인력에게 인센티브로 제공
4) '우수연구원' 정년을 선진국 이공인 수준이나 국내 교수수준에 맞게 65세까지 현실화하고 '일반 연구원'은 교사수준으로 62-63세로 제한

이와 더불어 타 이공계 인력(2년제 및 4년제 대학 졸업자, 공고 및 직업학교 졸업자 등)에 대한 처우개선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나 독일처럼 숙련된 '기능인'과 '기술자'를 '스승(mentor)'의 반열에 올려놓고 '학자'처럼 우대하지 않고서는, 산업기술이 정착될 수 없음이다.  이런 섬세한 일들을 변호사나 경영인 출신 정치인에게 맡겨서는 제대로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건 이공계 지도층이다, 바로 이런 꿈이 이루어지게 할 사람은.


5. 국가 과학기술력의 총체적 부실 및 이공계 지도층 문제 대책

이공계 문제의 심각성은 이제 더 이상 이공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국가 생존전략 차원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기득권층(보수 정치인 및 관료, 수구언론, 기성 지식인, 경제인, 법조인, 의료인, 고소득 연예인 등)은 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변화와 근대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러 번 회자되는 사실이지만, 중국 지도자 7명 중 6명이 이공계(주로 공대) 출신이고, 동구 유럽의 대통령이나 총리 중에 공대 출신이 매우 많으며, 북한만 하더라도 과학기술관련 정부부처가 전체 부처의 60%에 달하고, 미국이나 일본, 독일 모두가 공업과 기술을 경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 있는 것이다. 

엘빈 토플러는 현대문명은 과학기술이 주도하고 있음을 명백히 했고, 그 중에서도 전자공학이 현대 과학기술의 1/4정도가 되며, 특히 정보통신기술이 그 중심에 있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가 실수한 대목은 과학기술자들에게로 권력이동(power shift)이 일어난다고 한 점일게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니..... 원래 권력이동은 소리소문 없이 이뤄져야 가능한 법인데, 이렇게 떠들어댔으니 수구세력이 만반의 채비를 다하지 않았겠는가?

90년대 들어 유난히 빈번했던 각종 대형사고 및 사상초유로 당한 IMF사태 등은 흔히들 지적하듯 부정, 부패나 개인의 실수, 안전의식 결여가 근본원인이 아니고, 총체적인 국가과학기술력 부족에서 기인했던 것들이다. 아무리 기득권층이 인정 안 하려 해도 이미 현대문명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것이고, 국가 운영의 중심에는 당연히 과학기술이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법치주의가 어떻고 복지국가가 어떻고 지방자치가 어떻고 한다는 것은 초점을 못 맞춰도 한참 못 맞춘 것이라는 것이다.

왜 초강대국 미국의 클린턴이 '21세기는 기술패권주의 시대'라면서 첨단기술개발을 직접 독려했으며, 부통령이 국가 정보화 CIO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나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을 몇 년 후퇴시킬 실책이라고 본다.  한편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수많은 이슈들을 제쳐두고 '정보 강국 실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KGB 출신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첨단기술 및 과학기술자 유출방지'를 주요 관심사로두고 직접 챙기고 있다. 무슨 유행처럼 국가 지도자들이 이렇게들 과학기술에 목을 매는 것을 다 생쇼라고 볼 것인가?

우리는 전설 속의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과학기술에 그나마 관심이라도 갖는 국가 지도자를 만나본 바가 없다. 현재 국회 과학기술관련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중 이공계 출신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청와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행자부, 법무부, 외교통상부, 국방부, 인적자원부 등 힘있는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과학기술 관련 부처 국장급 이상 주요 직위에는 기술고시 출신이나 이공계 출신자들이 10%도 안된다는 얘기다.

일부 이공계 기관장들이야 어쩔 수 없이 이공인들이 맡고 있긴 하지만, 이공계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가장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곳이 이공계 고위층이라, 정치적인 역량을 갖고 카리스마가 있는 이공계 지도자가 나올 수 없게 되어있다. 다들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고 연구비나 인력 따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국가 과학기술 장래를 기획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21세기를 향해 막 발을 떼고 있는 한국 과학기술계 지도층의 현주소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답답한 현 상황를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1) 당장 이공계 대통령까지는 어렵더라도 청와대에 과학기술 수석을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대통령도 경제수석을 둘을 두어 하나는 방위산업부문(당시 과학기술의 거의 전부)만 전담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일반 경제정책을 맡게 하였던 전례가 있다.

2) 적어도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과학기술 관련 부처 국장급 이상 주요 직위는 90%이상 이공계로만 채우고, 나머지 정부부처에도 이공인의 비율을 4년제 대졸자 비율에 맞게 30% 정도가 되도록 기술고시 선발인원 및 직종을 대폭 확대한다.

3)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는 물론 청와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행자부, 법무부, 외교통상부, 국방부, 인적자원부 등 핵심부서의 국장급 외부인사 직위에 이공계 박사급 연구원/교수출신 인사를 50%이상 할당하여 국가 과학기술의 씽크탱크로 삼는다.

4)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 백년대계'를 세워, 21세기 국가 경영 전략의 근간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범부처 및 산학연 관계자, 학회인사가 망라된 이공인 전문가 집단의 기획력이 요구된다.

5) 여성계 인사 할당처럼 특수 소외계층인 이공계에도 일단 국회의원 할당을 요구하여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공인 스스로가 국회의원, 언론인으로 적극 진출하여 적어도 전체 정치인 및 언론인의 20%을 이공계 인사가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직업 안정성 확보 및 이공계 지도자 육성을 위해, 선진국의 경우처럼 업체 및 연구소 인력을 다수의 전문가 그룹과 소수정예의 관리자 그룹으로 분화시킨다. 이렇게 해서 관리자 그룹에서 기술 경영진 및 이공계 지도자도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6. 결론

여러 가지 대책을 제안했지만 이 중에는 시급을 요하는 것도 있을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예산을 확보하여 치밀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스쳐라도 구경했으면 하는게 소박한 바램이다.

1) 대선후보, 장관, 과학기술관련 의원, 이공계 기관장 자녀들의 대학진학 전공 및 유학실태 공개
2)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GDP 분석결과 및 이들의 21세기 국가생존전략에 대한 TV 기획특집 방영
3) 망치들고 못도 박고 전구도 직접 손으로 갈아 끼우는 대통령이나 장관모습 (생쑈라도 좋다!)

이 모든 게 어렵다면, 마지막으로 한가지 대책이 있다.
'무대책!'  바로 그것이다.
이공계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각자 자신의 본업에나 충실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필귀정!'
결국 언젠가는 우리가  지금 뿌린 그대로,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그 곳으로,  이공계, 그리고 '변호사-의사 국가, 한국'은 멀리 멀리 가 있을 것이다. 

그때 전 세계는 그게 '한국'임을 알아차리고는, 모두가 깜짝 놀랄 것이다.          - 거시기 임딩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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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우리가 어떻게 국가를 이끌 것인가? - 임호랑 댓글 3 sysop2 08-22 46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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