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데이? 과학의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8-04-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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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인 과학의 달에는 해마다 다양한 과학문화 행사 등이 줄을 이으며, 또한 과학의 날인 4월 21일 즈음에는 정부에서 주관하는 기념식이 열리곤 한다. 그러나 필자 역시 과학기술인의 한사람으로서, 더구나 과학대중화 활동 등에 나름 힘을 기울이는 과학저널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이를 반겨야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착잡한 생각이 앞서곤 한다.
현행 과학의 날인 4월 21일은 1967년에 과학기술처가 정부 독립 부처로 발족하면서 이를 기념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과학 대중화 운동이 태동하고 관련 기념행사 등이 시작된 것은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즉 일제 강점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1934년 4월 19일에 시행된 ‘과학 데이’가 바로 최초의 과학의 날 행사라 볼 수 있다.

과학데이 행사를 주도한 인물은 발명학회의 설립자인 김용관(金容瓘; 1897-1967)이다. 그는 경성공전 요업과 1회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요업공학 전문가였지만, 최초의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민족 자립을 이루고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취지에서 발명가를 양성하고 발명을 공업화하기 위한 이화학연구기관의 설립을 겨냥하여 발명학회를 설립하였지만, 여러 열악한 여건으로 발명학회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침체된 발명학회를 재건하기 위해 민족진영의 유력 인사들을 끌어들였고, 1933년에 종합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하여 새로운 문화운동으로서 과학계몽운동에 나섰다.
김용관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은 과학대중화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과학데이와 같은 행사가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기일인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였다.
‘과학은 힘이다. 배우고 옹호하자.’ ‘한 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오늘날에는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1934년 4월 19일의 제1회 과학데이 행사 당시에 외쳤던 구호들로서 나름 절박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관(현 YMCA 회관)에 8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성공리에 첫 과학데이 행사를 마친 김용관과 관련 인사들은 과학지식보급회를 결성하였고, 이듬해인 1935년의 과학데이 행사는 이 단체의 주관으로 더욱 성대하게 전국적으로 거행되었다.
과학데이라는 깃발을 앞세운 50여대의 자동차가 종로, 을지로 등 서울 한복판에서 시가행진을 하였으며, 홍난파가 작곡한 ‘과학의 노래’가 군악대에 의해 연주되고 독립운동가 여운형은 과학자들에게 당부하는 강연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 식민통치 아래 진행된 과학데이 행사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만큼 일제 당국의 탄압을 피할 수 없었고, 1938년에 김용관이 체포되고 관련 학회와 단체는 해체되거나 친일 단체로 변질되었다. 이에 따라 결국 일제 치하의 과학 대중화 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첫 과학데이 행사가 치러진 지 무려 80년이 더 지났지만, 과학대중화 운동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과학의 달에 열리는 각종 행사 등 과학문화 활동들도 물량적 측면에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대하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인식수준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보다 과연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심지어 과학대중화운동을 전개하는 활동주체들의 인식 역시 과거 시절보다 얼마나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대표적인 예로서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한국인 우주인 배출사업을 들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을 더욱 고양시키기 위한 전 국민적 이벤트로서’ 기획, 추진되었던 이 사업은, 꼭 10년 전인 2008년 4월 과학의 달에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우주선에 탑승하여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다가 귀환함으로서 나름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소연 씨는 결국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함으로써 이른바 ‘먹튀’ 라는 비판을 받았고, 최근 언론과의 대담에서 과거의 개운치 않은 뒷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애초부터 ‘국비 우주관광객 사업’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이 사업은 철저한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과학대중화 운동 역시 까마득한 과거인 일제 강점기 시절의 과학계몽운동 수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사학자나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과학데이였던 4월 19일로 과학의 날을 옮겨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되어 한때 독립 부처의 지위를 상실하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힘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학의 날이 대다수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과학기술인들만 모이는 연례행사로 되풀이된다면, 그날이 언제인 것이 뭐 그리 중요할 일일까 싶다. 국민 대다수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대중적 관심이 넘쳐흐르고, 과학기술인들이 뿌듯한 자부심과 드높은 긍지로 감격에 겨울 수 있는 진정한 ‘과학의 날’을 과연 언제쯤 맞을 수 있을까?

  • 아식스 ()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요? 과학기술인의 위상이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으니까요!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좋은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과학기술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을지 몰라도, 과연 그만큼 '과학기술인'의 위상도 높아졌는가 하는 점은 의문입니다...

  • remorse ()

    잘 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변을 보면 아직도 엔지니어 = 공구통 들고다니는 수리기사 정도의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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