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과 영구기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8-08-27 10:23
조회
2,572회
추천
0건
댓글
0건
[최성우의 공감의 과학] 보물선과 영구기관

울릉도 근해에 침몰해있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군함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고 투자자 등을 모은 이른바 보물선 투자사기 의혹 사건이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세간에 전해지는 것처럼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도 이 배를 인양하려는 시도는 몇 차례 있었다.   
보물선 사기사건은 오래전부터 국내외에서 가끔씩 반복되곤 하는데, 이와 매우 유사해 보이는 것이 바로 ‘영구기관 사기사건’이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일에 순진한 사람들을 꼬드겨 부당한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닮아있다.
 
외부에서 에너지나 동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장치인 영구기관(永久機關; Perpetual Mobile)은 오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보려고 애썼던 꿈의 기계였다. 1840년대 이후 에너지 보존법칙 등이 확립되어 영구기관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전후에도 영구기관의 발명은 끊임없이 시도되었고 그중에는 사기꾼도 적지 않았다.   
18세기 초에 독일의 오르피레우스는 자동바퀴라는 영구기관을 선보였는데, 톱니바퀴 장치의 중요 부분을 가리고 밑에 숨은 사람이 밧줄을 잡아당기는 어처구니없는 속임수였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황제 등 여러 나라의 귀족과 부유층들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으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존 킬리라는 또 다른 탁월한 사기꾼이 “나는 약 1L의 맹물로 기차를 필라델피아에서 뉴욕까지 달리게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거액의 투자와 후원금을 모았다. 그가 죽은 후에 건물의 마루 밑에 숨겨둔 압축공기 장치로 영구기관(?)을 움직였던 사기극이 드러났지만, 거액의 투자비는 모두 탕진된 후였다.   
그런데 영구기관 사기사건은 과거에만 일어났던 해프닝이 아니라, 여전히 되풀이되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력 정치인 등 저명인사들과 언론, 정부기관들마저 영구기관을 빙자한 사기꾼이나 그와 유사한 주장 등에 속아 피해를 보거나 망신을 당하는 일들이 데자뷔처럼 반복되고 있다. 보물선 사기사건이든 영구기관 사기사건이든 앞으로는 제발 다시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근절될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중앙일보]  2018.08.27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1841 묘비에 새겨진 수학적 업적들(1) 최성우 05-30 3229 0
1840 프리먼 다이슨, 조지 가모프, 그리고 스티븐 호킹 최성우 05-23 2813 0
1839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다는 구충제 이버멕틴이란? 댓글 5 최성우 04-30 2636 1
1838 코로나19의 집단면역은 가능할까? 최성우 04-19 2223 0
1837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최성우 04-05 2467 0
1836 코로나19의 종료 시점을 예측할 수 있을까? 댓글 6 최성우 03-30 3803 0
1835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실험실 유출설은 근거가 있을까? 최성우 03-23 2242 0
1834 바이러스만큼이나 심각한 가짜 뉴스의 범람 댓글 2 최성우 03-14 2333 0
1833 코로나19의 중간 숙주는 무엇일까? 댓글 8 최성우 03-09 2952 0
1832 장영실은 과연 정치적 희생양이었을까? 최성우 03-03 2548 0
1831 중국 출신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3) - 투유유와 말라리아 치료제 최성우 02-21 2282 0
1830 중국 출신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2) - 물리학상, 화학상... 최성우 02-16 2354 0
1829 중국 출신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1) 댓글 2 최성우 02-12 2332 0
1828 섣부르거나 과장된 과학기술 보도 최성우 01-31 2238 0
1827 기초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의 관계는? (2) 최성우 01-17 1939 0
1826 기초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의 관계는? (1) 최성우 01-09 2259 0
1825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역사와 전망 최성우 12-13 3575 0
1824 급속히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한 일본의 근현대 과학기술 댓글 6 최성우 11-17 3314 2
1823 일본 근대과학의 선구자들 최성우 11-11 2953 0
1822 2019년도 노벨과학상을 종합해 보면... 댓글 3 최성우 11-09 2914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