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원전 사고의 교훈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9-05-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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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등을 중심으로 향후 탈원전을 선언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여전히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들이 가동 중에 있다. 또한 그동안 크고 작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는데, 막대한 피해와 충격을 안겨주었던 심각한 원전 사고들을 관련 영화와 함께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핵연료 누출사고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 기계 고장과 운전원의 실수가 겹치면서 냉각장치가 파열되고 노심이 노출되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격납용기 덕분에 폭발이나 방사능의 대량 누출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인근 주민들이 놀라서 대피하는 등 큰 소동을 빚었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국제원자력 사고등급을 의미하는 INES 5등급 수준으로서 이후 발생한 7등급의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보다는 피해가 적었지만,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충격과 공포를 야기하였다. 즉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측면에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 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제기되었고, 세계 각국은 유사 사고 방지와 안전 대책에 보다 힘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경에 발생하였다. 원자로에서 비정상적인 핵반응으로 열이 많이 발생해 냉각수를 증발시키고, 이때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원자로는 불이 붙기 쉬운 흑연을 감속재(減速材)로 사용하고 있어서 수소 폭발이 더욱 증폭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원자로의 격납용기조차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후진적인 원전이었기 때문에 폭발과 함께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들이 그대로 누출되는 최악의 사태를 빚게 되었다.
 폭발사고 이후 발생한 화재의 소화 작업에 나선 원전 직원 및 소방원 수십 명이 심각한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하였고, 원자로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 여명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멀리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인근의 방사능 낙진 및 후유증으로 인한 암 발생 등의 피해자가 최대 27만 명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의 피해를 키운 구소련의 낙후된 원자력 발전 기술도 큰 문제로 지목되었지만, 사고의 원인은 체르노빌 원전 관리자들이 운영 규칙을 어기고 안전절차를 무시한 데에서 비롯된 어이없는 인재(人災)였다는 점이 더욱 세상을 놀랍게 만들었다. 즉 전기 기사가 원전이 불시 정지했을 때 터빈의 관성의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는 황당한 생각에서, 핵분열의 제어봉을 제거하고 비상 노심 냉각을 차단하여 시험하다가 결국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고 폭발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로는 러시아에서 2013년에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개봉되었던 ‘체르노빌: 원전 대폭발(Inseparable; 2013)이 있지만, 재난영화라기보다는 로맨스영화로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이보다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연작 영화 다이하드의 다섯 번째 시리즈인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A Good Day to Die Hard; 2013)‘가 체르노빌의 옛 원전 터를 무대로 하여 나름 관객들의 주목과 흥미를 끌었다.
 물론 이 영화 역시 원전 사고의 심각성 등을 다룬 재난영화라기보다는, 초인적 힘을 발휘해서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볼거리 등이 버무려진 오락영화의 성격이지만, 의미있게 볼 만한 대목들이 꽤 등장한다. 
 즉 이 영화에서는 핵연료와 자재 등을 빼돌려서 사익을 취해온 원전 관리자들의 부정부패가 사고의 원인인 듯 묘사하고 있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황당한 인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그럴듯한 영화적 상상력이라 하겠다. 더구나 사고 직후부터 체르노빌 원전 소장 및 구소련 당국은 사고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 안일하게 대처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피해 상황 등도 턱없이 축소 발표하여 갖가지 의혹을 산 바 있었다. 

 영화에서는 정치범을 구출하고 악의 세력을 응징하고자 체르노빌까지 간 맥클레인 부자의 활약이 펼쳐지면서, 지금은 폐허가 되어 방치된 원전 건물 곳곳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 과 총격전 등이 자주 등장한다. 현실의 체르노빌 발전소는 어떨까?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다량의 방사능 누출로 인하여 토양이 오염되어 농작물 재배도 불가능하고, 동식물들은 유전자 변형으로 갖가지 기형이 속출한 바 있어서 아직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원자로는 이후 구소련 당국이 몇 년에 걸친 작업으로 석관구조물을 덮어서 일종의 ‘콘크리트 무덤’처럼 되어 있는 형태이다. 원전 부근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매우 높기는 하겠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이제는 영화에서처럼 방호복을 입고 원전 관련 건물에 출입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 악당들이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가면서 원전 내부를 둘러보던 중, 독특한 화합물을 살포했더니 방사능 수치가 급격히 감소해서 결국 방호복을 벗어도 될 만한 상태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매우 먼 영화적 허구에 불과하다. 현재 어떠한 화합물로도 오염된 부분의 방사능 자체를 줄일 수는 없으며, 방사능과 방사성 물질들의 특성 상 앞으로도 그런 특수한 화합물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만약 방사능을 줄이거나 중화시키는 그런 특수한 화합물이 있다면, 혹은 머지않아 그런 물질을 만들 수 있다면 세계 원자력 발전 산업에는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은 선물이 될 것이다. 원전 작업 시에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면 일인당 피폭 제한 등에 구애받지 않고 방사능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원자력 산업은 다시 한번 딜레마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처럼 바로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키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체르노빌 사고에 못지않을 것으로 추정되며, 후쿠시마 사고의 INES는 체르노빌과 같은 7등급인 최고 등급이다
 비록 대형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비롯되기는 하였으나, 구소련과 달리 안전에 관한 한 철저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다시 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및 타당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다 하겠다. 일본 당국 역시 사고 이후로 적지 않은 사실을 은폐하거나, 사고 수습에도 위기관리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여 큰 실망과 불안감을 안겨준 바 있다. 
 실제 재난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강진으로 인하여 심각한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빠진다는 설정의 영화 '판도라(Pandora; 2016)'가 몇 년 전에 상영된 바 있다. 국내에서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지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원전 현황 및 관련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최근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에 대해서도 찬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고도의 과학기술의 산물이지만, 사회적 수용성과 합의가 대단히 중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탈원전 등에 대한 그동안의 논란 과정을 지켜보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접근이나 아전인수식의 주장이 난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떤 방향이든지 항상 신뢰와 소통, 그리고 합의 도출의 매커니즘을 중시해야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폭발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오른쪽부터 왼쪽으로 1호기~4호기, 저작권자 : Digital Globe )
이미지2: 사고 직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1986년, 저작권자 : Garvey STS)

  • 묵공 ()

    원자력발전은 다른 인류의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자연재해나 사고가 발생하면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사고, 즉 중대사고로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을 때는 원전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다른 대안들이 많이 나와서 원전이 이제는 경제성조차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안전성이나 환경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의견 감사합니다...  최근 국내에서 한빛1호기의 아찔한 사고도 있다보니, 위의 영화들이 더욱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무자격자의 운전에, 근무자의 계산착오와 실수에, 더하여 한수원의 관리부실과 거짓말, 안전불감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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