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의 도약을 기대하면서...

글쓴이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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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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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 강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 측면에서 본다면 그보다도 순위가 더 앞서는 당당한 강대국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연구개발(R&D)비 투자 금액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은 세계 5위이고 국제특허 건수는 세계 4위이며, 그밖에 다른 지표들을 통해 살펴본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역시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언급되는 분야가 바로 기초연구 분야이다. 물론 기초연구 분야 역시 꾸준한 투자 확대와 함께 정부 연구개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국정 목표로 기초연구 예산을 2017년도 대비 2배 정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초연구의 성과는 양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인 수준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초연구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초연구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 및 연구정책 등이 필요한지 고찰해 보기로 한다. 

 사실 기초연구라는 정확한 개념 및 범주에 대해서부터 제대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융합과 통섭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 기초연구와 응용기술 연구, 그리고 제품개발 연구 등의 구분이 과거처럼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구분하더라도 그 경계가 급속히 흐릿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장의 연구개발 목표 및 그 성과가 명확한 응용기술이나 제품개발 연구에 비해, 기초연구 분야는 목전의 성과보다는 긴 안목에서 장기적이고 자율적인 연구가 차별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라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대체적으로 기초연구란 ‘활용 목적이 아닌 자연 현상의 이해 및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즉 자연의 원리를 밝히려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 차원의 연구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OECD 등의 국제기구나 정책 전문가들은 기초연구를 다시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사회경제적 효익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순수기초’와 현재 또는 미래의 문제 해결에 기여할 지식기반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기초’로 구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순수기초와 목적기초의 개념 구분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에도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나라 또는 학자마다 명칭과 개념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유사하게 기초연구를 둘로 구분하여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기초 연구라고 해서 먼 미래까지도 경제적 효익이나 응용 가능성 등이 전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며, 또한 목적기초 연구라고 해서 반드시 향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장래의 활용 가능성도 불투명한 기초연구에 거액을 투자하는 이유가,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 충족만을 위해서는 결코 아닐 것이다. 기초연구는 성공할 경우 원천기술의 독점적 확보 등을 통하여 장기적으로는 도리어 응용기술이나 제품개발 연구보다 훨씬 큰 경제적 효용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즉 금융상품에 비유한다면 ‘고위험-고수익’ 상품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개념은 최근 고위험 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미국의 기초연구 계획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몇가지 예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인류의 문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획기적 기술이나 중요한 발명품들이 ‘기초연구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즉 예전에는 기초과학적 지식보다는 기술자나 발명가 개인의 탁월한 장인적 재능과 경험 등이 더욱 중요한 관건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이 열역학이나 기계공학의 기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발전 순서는 도리어 그 반대였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Wright) 형제 역시 비행의 원리 등에 대한 지식을 나름 쌓기는 했지만, 고졸 정도의 학력에 자전거포 직공이었던 그들이 유체역학을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 또한 물리학이나 재료공학 등에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어서 전구를 비롯한 숱한 발명품들을 완성해낸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면서 기초연구가 기술 및 제품개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사례들이 나타났고, 이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듀폰(Du Pont) 사에서 개발한 화학섬유 나일론이다. 발명자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는 유기화학을 전공한 화학자로서, 듀폰 사에 입사하여 기초과학연구부장으로 일하던 중에 우연히 나일론 개발의 계기를 접하게 되었다. 즉 연구팀원 한 명이 실패한 찌꺼기를 씻어 내려 불을 쬐다가 찌꺼기가 계속 늘어나서 실 같은 물질이 되는 것을 보고 합성 섬유의 개발을 추진하였고, 이후 수백 명에 달하는 듀폰사의 화학기술자와 개발인력이 상품화에 총력을 기울인 끝에 나일론이 탄생하여 이른바 초대박 히트상품이 되었다. 나일론의 개발은 이처럼 기초연구의 뜻밖의 성과와 뒤를 이은 응용, 상품화연구가 어떻게 연결되어 대성공을 이루었는지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트랜지스터의 탄생 역시 기초연구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중에 트랜지스터를 공동으로 발명한 쇼클리(William Shockley; 1910-1989), 바딘(John Bardeen; 1908-1991), 브래튼(Walter Brattain; 1902-1987)의 세 사람은 모두 고체물리학, 반도체 물리학의 대가로서, 단순히 기술적, 공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즉 기초과학인 물리학적 지식이론과 실험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오늘날의 용어로 설명한다면 ‘목적기초 연구’의 성공사례라 하겠다.

 나일론이나 트랜지스터는 기초연구와 응용, 상품화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졌지만, 이와는 달리 기초연구의 성과가 나온 지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기술적으로 응용되거나,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자기파의 존재를 맥스웰 방정식을 통하여 수식적으로 예언한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실험을 통하여 이를 입증한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는 당시만 해도 ‘순수기초 연구’ 차원에서 연구를 했을 뿐, 전자기파가 통신기술 등에 응용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의 무선전신 발명 이후 텔레비전, 휴대전화 등이 탄생한 오늘날 우리는 가히 전자기파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트랜지스터만큼이나 중요한 발명품이라 평가되는 레이저 역시 기반이 되는 기초연구와 기술, 제품 간의 간격이 무척 긴 경우이다. 1960년대에 탄생한 레이저는 1917년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에 의해 발표된 ‘유도방출에 의한 전자기파 발생’ 이론이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순수 물리학의 영역인 자신의 연구가 수십 년 후에 매우 중요한 응용광학기술과 제품을 낳을 것이라고는 역사상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이라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초연구가 더욱 좋은 성과들을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과 정책적 방안 등이 필요할까? 먼저 기초분야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동안 기초연구 투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연구자들의 수 역시 증가하면서, 현장의 과학자들은 충분한 기초연구 지원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과거에는 다양한 기초연구 지원사업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지원 사업이 등장할 경우, 기초연구 전체 지원 금액의 확대보다는 결국 기존의 사업 일부가 축소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는 도리어 기초연구의 안정성을 해치며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신진연구자들의 육성과 안정적 지원에 보다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정부기관만이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기초연구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연구비 재원을 더욱 확대하고 다양하게 해야 할 것이다. 현대 생명과학기술 혁명의 기반이 된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출현과 정립이 1930년대 이후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에 힘입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 한 대기업이 자금을 출연하여 처음으로 기초과학재단을 출범시켰는데, 이와 같은 사례가 더욱 확대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초분야 연구자들도 스스로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학기술정책과 역점 지원사업 등도 바뀌는 등 연구자들도 나름 고충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시류 등에 영합하여 연구 분야를 정하거나 변경한다면, 이는 이 나라 기초과학의 장래는 물론 연구자 개인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세부 분야이건 남들이 당장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꾸준하고 진득하게 연구에 매진한다면, 도리어 빛나는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날은 더욱 일찍 찾아올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아인슈타인의 유도방출 이론을 기초로 하여 발명된 레이저
이미지2: 벨연구소에서 발명된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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