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히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한 일본의 근현대 과학기술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9-11-1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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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난학자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 1728-1779), 난학자이자 의사였던 오가타 고안(緒方洪庵; 1810-1863)과 같은 선구자들의 활동을 기초로 하여, 일본의 근대적 과학기술은 메이지유신 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히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시대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5-1901)는 서양의 자연과학과 문물 등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여러 권의 저술을 통하여 후대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야마카와 겐지로(山川健次郞; 1854-1931) 등이 대표적인데, 메이지 유신에 반대하는 지역의 소년병 전투부대인 백호대 출신이었던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를 읽고 미국에 유학하여 일본인 최초의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독창적인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서양의 최신 물리학을 일본에 도입하는 데에 공헌하였고 뢴트겐의 X선 실험 등을 스스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했던 대표적인 일본 과학자로는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를 꼽을 수 있다. 현행 일본 1천엔권 화폐의 모델 인물이기도 한 그는 일본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록펠러 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세균학자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뱀독의 연구로 주목을 받았고 매독의 원인균인 스피로헤타를 발견했으며, 파상풍, 황열병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노벨생리의학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자신이 주로 연구하던 황열병에 감염되어 사망하였고, 오늘날에는 논문조작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즉 그가 발견하였다고 주장한 광견병, 소아마비, 황열병의 병원체는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로서 당시 수준의 광학현미경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였는지 아니면 기술적 한계로 인하여 오류가 생겼던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과학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1949년으로서, 그 주인공은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이다.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원자핵 내에서 핵력을 매개하는 중간자(中間子; meson)의 존재를 예견한 것인데,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일본인 과학자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하지 않고 일본 국내에서 연구하여 뛰어난 성과를 낸 것으로서 더욱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즉 그는 교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에 같은 대학의 연구실에서 β붕괴와 핵내 전자의 문제 등에 관해 연구하여 1935년에 중간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결국 1949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하였다. 
 이보다 앞선 1917년에 자연과학 종합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가 설립되어 일본 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뛰어난 과학자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리켄(理硏; RIKEN)이라는 약칭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연구소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중추를 이룬다.
 녹말분해효소인 디아스타아제를 처음 발견한 다카미네 조키치(高峰讓吉) 등의 제안으로 설립된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에 근대 수학을 도입한 기쿠치 다이로쿠(菊池大麓)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원자핵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의 제자였던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가 이화학연구소에 연구실을 꾸리면서 젊은 과학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유카와 히데키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1906-1979)는 양자전기역학 연구 공로로 파인만 등과 공동으로 1965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음으로써 일본에 2번째의 노벨과학상을 안겨주었는데, 그가 바로 이화학연구소의 연구생 출신이다.

 기초과학 분야뿐 아니라 기술과 산업의 측면에서도 일본은 매우 빠른 기간에 서양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854년에 미국 해군의 페리 제독이 일본의 개항 조약 협상을 위해 일본에 왔을 당시에 소형의 증기기관차 모형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일본 내에서 서양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습득하여 증기기관차를 만든 인물이 있었는데, ‘일본의 에디슨’이라 칭송받기도 하는 발명가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 1799-1880)이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난학 등을 통하여 서양의 기술을 습득하고 여러 기계장치 등을 발명하였다. 그가 제작한 것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서 일종의 자동기계장치(Automaton)인 문자쓰기 인형(文字書き人形), 정밀한 시계장치 등이 있다. 특히 그가 1851년에 발명한 시계는 이른바 ‘만년자명종(万年自鳴鐘)’이라 불리는데, 절기, 월, 달의 위상 등을 표시하는 천문시계를 겸한 정밀시계로서 일본의 근대 중요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다나카 히사시게가 1875년에 설립한 다나카제작소(田中製作所)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 기업인 도시바(Toshiba; 東芝)의 모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최초로 백열전구가 생산된 것은 1890년으로, 에디슨의 전구 발명 및 미국에서의 보급과 그다지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백열전구를 생산한 하쿠네쓰사(白熱舎;はくねつしゃ)는 다나카제작소 및 다른 기업들과 합병을 거듭하면서 도쿄시바우라덴키(東京芝浦電気), 즉 도시바로 발전하였다.
 기술에 바탕한 근현대적 기업의 성장 또한 에디슨의 연구소가 모태가 된 제너럴일렉트릭(GE), 전화기의 발명자 벨이 창업한 벨전화회사에서 발전한 AT&T 등의 예처럼, 일본 역시 서양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고 하겠다.   
 요컨대 일본의 근현대과학기술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미 서양의 선진국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지난 글과 이번 글은 일본의 과학기술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변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때마다 ‘우리는 왜 못받는가?’하고 묻는 조급증과 과민반응은 이제는 제발 떨쳐내고, 의연하게 우리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다나카 히사시게가 만든 정밀시계(만년자명종)
이미지2: 현행 일본 1천엔권 화폐의 모델 인물이기도 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 Hithere ()

    왠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보면 중국의 축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일본 근대 과학이 100년을 넘은 반면 우리나라는 사실 걸음마 단계로 보이네요. 아무리 투자해도 전체 역량이 안되고 매우 어설퍼보여서 헛발질하는 중국 축구느낌이 듭니다.

    쓰신 글을 보니 일본의 많은 기업이 기술개발연구집단에서 나왔다는 점도 우리나라랑 매우 다르네요. 아무래도 원래가 기술기업이 시작이었던 곳이 많지 않으니 연구 투자에 인색한 기업문화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고요. 물론 제가 모르는 많은 기업들이 있겠지만, 대표적 기술 기반의 기업은 게임회사들 빼고는 크게눈에 보이지 않네요.

    이런 역사를 보면 한 숨이 나오기도 하는데, 또 짧은 시간에 올라 온 것을 보면 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맨날 야구, 축구 이기는 것도 좋은데, 과학기술에서는 상대가 아직 안되는 것에 국민 전체가 좀 흥분해도 좋을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야구는 이기길...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제가 젊은 시절 L전자에 다닐 때만 해도, 소니, 도시바 등 일본기업들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전 등에서 일본을 따라잡거나 도리어 추월을 한 상태이지요..
    기초과학 분야는 사정이 좀 다르니 기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역시 언젠가 따라잡을 날이 올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축구, 야구처럼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서 곧바로 이길수 있게 되면 좋기는 하겠지만...^^)

  • 최성우 ()

    "일본은 노벨과학상을 자주 받는데 우리는 왜 못받나?" 라는 얘기는 숱하게 들리지만....    "미국은 해마다 노벨과학상을 쓸어가다시피 하는데, 왜 우리는 하나도 못받느냐?"라고 하거나 "독일은 노벨과학상을 자주 받는데 우리는 왜 아직 못받느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바보같은 질문이라 생각하겠지요...)
    사실 근대화 과정을 보면 일본은 독일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물론 동서양의 차이는 있겠지만,메이지 유신이 진행될 무렵과 독일의 통일(1871년) 및 급속한 산업화가 추진된 시기가 거의 비슷하고... 일찍 근대국가를 형성하고 산업혁명을 겪은 영국, 프랑스 등에 비해 중세 봉건적 색채를 뒤늦게야 탈피한 면도 그렇고...  (그러니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서 제2차 세계대전도 함께 일으켰겠지요...) 

    어차피 다 같은 어리석은 얘기이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집착한다고 해서 노벨과학상을 일찍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벨상 수상이 최상의 목적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정 그렇게 노벨과학상을 들먹이며 비교를 하고 싶다면...  "일본은 받는데 우리는 왜?" 라고 할게 아니라 차라리 "노벨과학상 수상 대열에서 중국에는 너무 뒤쳐지지 말자..." 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인(?) 제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댓글의 댓글 Hithere ()

    제가 전공하는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선지 오래되어서 쫏아가기도 버겁습니다. 노벨상이 없는 분야라 다행이네요. 가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는 해도 그 양이 중국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일본 쫏아가려 열심히 뛰고 있는데, 중국이 쌩하고 지나가는 형국이네요.

  • 댓글의 댓글 최성우 ()

    중국은 인구도 워낙 많은데다가 최근 중국 정부가 첨단과학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가 중국과 경쟁하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요...
    참고로 중국인 출신으로는 양쩐닝(楊振寧), 리쩡따오(李政道)가 1957년도 노벨물리학상을 함께 받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미국에 유학하여 거기서 대학교수를 지내고 나중에 시민권도 취득했으니 미국 과학자로 분류해야할 듯하고...  (그밖에 홍콩 출신 영국인, 중국 이민자2세 미국인 등이 노벨상을 받았고...) 
    중국인으로서 중국 과학계의 업적으로 노벨과학상을 처음 받는 이는 2015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여성과학자 투유유(屠呦呦)로 볼 수 있겠으니, 엄밀한 중국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아직 1명인 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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