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의 관계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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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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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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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기술 개발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면, 기초과학 연구가 먼저 이루어지고 나서 그를 기반으로 응용기술 또는 제품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리어 기술이나 제품이 먼저 선보인 후 그것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기초과학이 발전한 역사적 사례가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처럼 탄탄한 기초과학 연구가 기술 및 제품 개발에 선행되는 필수 조건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은 대략 20세기 초중반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로서 나일론의 발명 과정을 꼽을 수 있다.
 1938년 9월 미국의 유명한 화학회사 뒤퐁(Du Pont)이 내놓은 나일론(Nylon)은 기존의 섬유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획기적인 신제품이었다. 당시 언론에서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질긴 섬유’로 보도된 나일론은 기존의 면화나 비단처럼 동식물 재료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화학적으로 합성된 제품이었던 것이다. 신문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석탄과 공기와 물’ 따위로 섬유를 만들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하였다.
 1939년의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나일론은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었고, 1940년 5월 뉴욕에서 여성용 나일론 스타킹의 판매가 시작되자 수많은 여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스타킹을 구입하고서 치마를 걷어붙이고 그 자리에서 신어 보았다고 한다. 값이 저렴하면서 품질도 뛰어난 나일론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일론은 낙하산 제작 등 군수용으로 주로 사용되어, 민간용으로는 항상 공급이 모자랄 정도였다.   

 이와 같은 빅히트상품인 나일론을 발명한 인물은 공학자나 발명가가 아니라, 기초과학인 유기화학을 전공한 화학자 캐러더즈(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이다. 유기화합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스승의 추천으로 1928년 뒤퐁사 중앙연구소에 입사하였고, 이듬해에 ‘기초과학 연구부장’이 되어서 고분자 중합연구를 주도하였다.
 1931년 합성고무 네오프렌의 발명을 성공적으로 마친 캐러더스의 연구팀은 고분자 연구를 계속하던 중, 연구원 중의 한 명인 줄리언 힐(Julian Hill)이 이상한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즉 실패한 찌꺼기를 씻어 내다가 불을 쬐어 본 결과, 찌꺼기가 계속 늘어나서 마치 실과 같은 물질이 된 것이다. 이것을 본 캐러더즈는 합성 섬유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고, 1935년에 마침내 합성 섬유로 적합한 폴리아미드를 이용하여 나일론의 시제품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시제품 나일론을 상품화하기 위하여 뒤퐁사는 230명의 화학기술자를 포함하는 대규모의 연구개발 인력과 시설을 총동원하였다. 상품화 및 양산 공정을 위한 문제를 해결한 뒤퐁사는 1938년에 나일론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고, 이후 나일론은 양말, 의류뿐 아니라 로프 등 각종 생활용품에도 널리 사용되면서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나일론의 개발은 이처럼 기초과학 연구의 뜻밖의 성과와 뒤를 이은 응용, 상품화연구가 어떻게 연결되어 대성공을 이루었는지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트랜지스터의 탄생 역시 기초과학 연구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를 발명한 과학자는 당시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쇼클리(William Shockley; 1910-1989), 바딘(John Bardeen; 1908-1991), 브래튼(Walter Brattain; 1902-1987)이다. 그런데 트랜지스터를 공동으로 발명한 세 사람은 모두 기초과학인 고체물리학, 반도체 물리학의 대가로서, 단순히 기술적, 공학적 문제 등의 해결을 통하여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앞의 나일론 발명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면, 기초과학 연구를 하던 중에 뜻밖의 우연한 계기에 의하여 발명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새로운 소자를 개발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연구를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즉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기존의 진공관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트랜지스터가 선보이기 이전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전자부품인 진공관은 에디슨 효과, 즉 진공에서 금속을 가열할 때 방출되는 전자를 전기장으로 제어하여 정류, 증폭 등의 특성을 구현할 수 있다.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이 발명한 2극 진공관은 무선전신의 검파 등에 이용되었고, 여기에 또 하나의 극을 추가한 3극 진공관은 1906년에 드포레스트(Lee de Forest; 1873-1961)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리드 전극으로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3극 진공관은 증폭의 기능이 있으므로, 오디온(Audion)이라 불리며 라디오 등의 당시 전기전자제품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진공관의 사용이 늘어날수록 제품의 부피가 너무 커지고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18,000여개의 진공관을 채용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30톤의 무게에 크기가 거의 집채만 했을 뿐 아니라, 전력 사용량도 엄청나서 작동할 때마다 주변의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따라서 크기와 소모전력이 작은 새로운 소자의 개발이 반드시 요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트랜지스터 발명의 핵심인물인 쇼클리는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고체물리학의 에너지 띠 문제 등을 비롯하여 이론과 실험 물리학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와 같은 물리학적 배경이 없었더라면 트랜지스터 발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동 발명자인 바딘 역시 탁월한 물리학자로서 반도체와 금속의 전기전도, 원자의 확산 등 고체물리학 전반에 관하여 폭넓게 연구하여 여러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에는 초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여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초전도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였다. 또 다른 공동 발명자인 브래튼 역시 물리학 전공자로서, 벨전화연구소에서 고체 표면의 물성 및 반도체 연구에 주로 종사하면서 트랜지스터 개발에 동참하였다.
 즉 트랜지스터 발명의 삼총사인 물리학자들은 과거의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나 다른 개인 발명가들처럼 장인적 재능이나 오랜 경험을 통하여 발명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인 물리학적 지식과 실험 능력 등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 사람이 1956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순수하게 자연의 원리를 밝히기 위한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장래의 기술이나 제품개발에도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논란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다음 글에서 다루어보기로 한다.

                                                                                By 최성우

이미지1: 나일론 최초 시판 직후에 스타킹을 구입 즉시 신어보는 여성
이미지2: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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