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과연 정치적 희생양이었을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03-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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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의 과학 문화재 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특히 우리 역사상 전통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인 조선 세종 대의 탁월한 과학기술자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과 TV드라마, 영화 등이 줄을 이은 바 있다. 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벼슬까지 올랐던 장영실의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또한 그가 감독하였던 왕의 가마가 제작 직후 부서지는 바람에 관직에서 파면되고 곤장형을 받았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장영실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는 그가 외교적 문제로 인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즉 천문과 역법 문제로 인하여 조선과 명나라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천문기기를 제작했던 장영실에게 책임이 돌아가 그가 몰락하였거나 또는 조정에서 그를 보호하려 잠적하게 했다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가정은 과연 사실일 수도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이는 소설이나 영화상의 허구일 뿐,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이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 세종 시기에 활동했던 장영실을 비롯한 여러 과학기술자의 활약상을 살펴보고, 또한 칠정산 등의 천문역법 등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원나라 출신의 귀화인인 부친과 천민이었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관노였던 장영실은 태종 시기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궁중기술자로 종사하였다. 특히 그는 제련 및 축성, 그리고 농기구와 무기의 수리 등 다양한 기술적 분야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장영실이 간의(簡儀)를 비롯한 제반 천문관측기구의 제작에도 참여했던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세종 시기의 모든 과학기술적 업적이 장영실 혼자만의 결과물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은 오해로 인하여, 많은 대중들은 측우기(測雨器) 역시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측우기는 유럽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카스텔리의 우량계(1639년)보다 무려 200년 가까이 앞서는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측우기로서 보물 제561호였던 금영 측우기, 즉 공주 감영 측우기는 받침대인 몇 기의 측우대와 함께 최근 국보로 승격하게 되었으나, 세계 학계에서는 우리의 것이 아닌 중국의 발명품으로 더 잘 알려진 안타까운 과학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장남인 문종이다. 즉 문종이 세자 시절에 그릇 등에 빗물을 받아 양을 재는 방식으로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세종 23년(1441년)에 발명한 것으로 세종실록에도 명시되어 있다.

기술자로서 장영실의 천재적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는 과학 문화재는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와 옥루(玉漏)이다. 자격루는 11세기 중국 송나라 시기의 과학기술자 소송(蘇訟)이 만들었던 거대한 물시계 및 쇠공이 굴러떨어지면서 종과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아라비아의 자동 물시계 등을 참고하여 장영실이 만든 것이다. 또한 옥루는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천문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결합한 새로운 자동 물시계로서 역시 장영실이 발명하여 경복궁 안 흠경각에 설치하였다.
자격루와 옥루는 물시계일뿐 아니라, 옥녀(玉女), 무사(武士), 십이신(十二神) 등의 여러 인형이 등장하여 북과 종, 징 등을 쳐서 시각을 알리는 정교한 자동장치(Automaton)이기도 한데, 장영실은 이들을 제작한 공로로 관직이 종3품인 대호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조선 세종 시기의 천문역법을 대표하는 중요한 것으로는, 각종 천문관측기구뿐 아니라 자체의 달력인 칠정산(七政算)을 들 수 있다. 내편 3권과 외편 5권으로 구성된 칠정산은 이순지, 정인지, 정초 등이 이슬람의 회회력(回回曆), 원나라의 곽수경이 만든 수시력(授時曆) 등을 참고해서 우리에게 맞도록 만든 것으로서, 역시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만약 조선이 명나라와 천문역법으로 인하여 갈등이 생겼다면, 천문관측기구가 아니라 달력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조선 고유의 역법이었던 칠정산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중국식 역법으로 바뀌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정산이 완성되어 간행된 시기는 세종 26년인 1444년인 반면에, 장영실이 곤장형을 받고 쫓겨났던 것은 세종 24년인 1442년으로서 그보다 더 이전이다. 따라서 이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셈이 된다.
더구나 장영실은 탁월한 공학기술자이기는 했으나 천문학자는 아니었으므로 달력인 칠정산 제작에는 관여한 바가 없다. 따라서 만약 명나라가 천문역법 갈등의 책임을 물으려 했다면 이는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 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이순지(李純之) 등에게 물었어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간의 등 천문관측기구의 제작 역시 장영실의 공이 많기는 하지만, 금속 주조 등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가 기술자로서 주로 참여한 것이지 총책임자였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만에 하나 달력뿐 아니라 천문관측기구 제작으로 인한 외교적 갈등이 생겼다면, 이 역시 장영실보다 연배도 위이고 벼슬 역시 더 높은 정2품까지 올랐던 이천(李蕆)의 책임이 더 컸을 것이다.
요컨대 어느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장영실이 명나라와의 외교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설은 사실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허구 및 가상을 토대로 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서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거나, 또는 대중매체 등이 그럴듯한 음모론에 편승하여 대중들이 영화나 소설상의 허구를 역사적 사실로 믿도록 부채질한다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일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천문관측기구인 간의( ⓒ Jocelyndurrey)
이미지2: 중국 송나라의 소송이 11세기에 만든 물시계의 개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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