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새겨진 수학적 업적들(1)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05-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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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위인이나 저명한 인물들의 묘비에는 간략한 소개나 업적, 좌우명 등이 쓰여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학자나 과학자들 역시 생전의 업적과 관련된 것이 묘비에 새겨진 이들이 있는데, 도형이나 수식 등의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묘비를 주목할만한 최초의 수학자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가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 부르는 부력의 법칙 등 숱한 업적을 남긴 그는 또한 사상 최초로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의 원주율 값을 계산해 낸 수학자이기도 하다. π = 3.14... 라는 근사값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값을 바탕으로, 얇은 원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원기둥 및 구의 부피를 구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적분개념, 특히 구분구적법과 같은 원리인데, 이를 통하여 그는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의 체적은 원기둥의 2/3가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런데 그가 자기 집 뒤뜰에서 그림을 그려 가면서 이 연구를 계속하던 그 당시는 전쟁 중이었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BC 218-201) 때였는데,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도시인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었으므로 로마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로마 병사 하나가 그의 집에 침입해 원기둥 안에 구가 접해 있는 그림을 무심코 밟아 버렸다.
 아르키메데스는 화를 내면서 자기의 연구를 밟지 말라고 했으나, 도리어 로마 병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아르키메데스의 제자들은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면서 그의 마지막 업적을 묘지의 비문에 새겼고, 지금도 그의 묘비에는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노벨상이 없는 수학계에서 필즈상이라고도 불리는 필즈 메달(Fields Medal)은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최고의 업적을 낸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에게 4년마다 한 번씩 수여되는 ‘수학의 노벨상’인 셈인데, 이 필즈 메달의 앞면에 초상이 그려진 영예로운 수학자가 바로 아르키메데스이다. 또한 필즈 메달의 뒷면에 새겨진 디자인과 글씨는 바로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는 원기둥과 구의 도형 및 이 업적을 설명하는 문구이다.     

 아르키메데스보다 후대의 그리스 수학자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디오판토스 (Diophantus; 246?-330?) 역시 묘비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대표적 저서인 산수론(算數論; Arithmetica)에는 부정방정식을 비롯한 여러 방정식의 해법 등이 담겨 있다. 산수론은 원래 13권이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중간에 상당 부분이 소실되어 지금은 6권만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리고 아라비아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가 큰 영향을 미쳐서 중세 아라비아에서 방정식과 대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
 디오판토스는 또한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즉 페르마는 그의 저서에 심취하여 디오판토스 부정방정식의 해법과 관련해서 여러 연구성과를 남겼는데, 1670년에 출간된 산수론에는 페르마가 주석을 달거나 첨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페르마를 아는 대중들이라면 유명한 그의 마지막 정리, 즉 “xn + yn = zn 의 관계식에서, n이 3 이상일 경우에는 이 식을 만족하는 x, y, z의 세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정리가 떠오를 것이다. 그가 제시하기만 하고 증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1994년에 앤드루 와일스(Andrew Wiles)에 의해 증명되기까지 무려 350여년이 걸린 수학의 대표적 난제의 하나로서 숱한 수학자들을 괴롭혀왔다.
 그런데 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역시 디오판토스의 산수론에 나오는 ‘주어진 제곱수를 2개의 제곱수로 나누어라’라는 문제의 풀이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서 도출된 것이다.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의 대가답게, 그의 묘비에도 방정식으로 풀이하여 그의 나이를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쓰여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여기에 디오판토스 일생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생애의 1/6은 소년이었고, 그 후 1/12이 지나서 수염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1/7이 지나서 결혼을 하였다. 그는 결혼한 지 5년 뒤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하였다. 그는 아들이 죽은 지 4년 후에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는 부정방정식은 아니고 1차 정방정식을 세워서 답을 구하면 그의 향년 나이를 알 수 있는데, 요즘에는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중세를 거쳐 근대 수학이 발전한 이후로도 수학자나 과학자 중에서 자신의 대표적 업적을 묘비에 새긴 경우가 등장하여 후세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By 최성우

이미지1: 아르키메데스의 초상과 그의 업적이 새겨진 필즈 메달의 앞면과 뒷면
이미지2: 페르마가 내용을 추가한 디오판토스의 산수론 표지(1670년 간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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