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이탄지 화재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07-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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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빈도 및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는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진화하기 어려운 경우마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 등은 몇 달씩 지속되는가 하면, 특히 작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거의 6개월쯤 계속된 끝에 폭우가 내리면서 간신히 꺼진 바 있다.   
 피해 규모 역시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오랜 세월 동안 산불과 함께 진화해온 식물들은 잿더미 위에서 다시 새순을 돋고 예전의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동물들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10억 마리 정도의 야생동물이 떼죽음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행동이 느려서 수많은 개체가 희생된 코알라는 멸종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 바 있다.   
 더구나 최근의 산불은 여름이 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만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산불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들마저 대규모의 산불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즉 인도네시아나 아마존의 열대우림 지역에서부터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의 한랭한 툰드라 지역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지구적으로 산불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산불의 빈도와 규모, 발생지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와 큰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8 년 여름에는 사상 최초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산불이 일어났는가 하면, 그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는 58,0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여 엄청난 규모의 산림이 불에 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기온이 점점 올라가고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예전에는 산불이 잘 일어나지 않았던 지역마저 고온 건조하게 변화하면서 산불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는 셈이다.
 기후변화와 아울러 인간의 행태 역시 최근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나 아마존 등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사람들이 개간이나 채굴 등의 목적으로 방화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산불 다발국가의 대열에 들어선 인도네시아의 경우, 바이오 연료 및 식료품, 각종 제품의 원료로서 수익성이 높은 팜나무 등을 심기 위하여 원시림에 불을 내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2015년에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로 260만 헥타르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고, 작년인 2019년 역시 그에 못지않은 대규모의 산불로 서울시 면적의 수십 배가 불타고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등지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바 있다. 올해에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중앙지역에서 700곳이 넘는 산불발화지점이 확인되면서, 다시 산불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 며칠 전의 외신 보도가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최근 산불이 특히 우려되는 것은, 규모나 빈도뿐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이른바 이탄지(泥炭地; peatland)에서 발생하는 화재 때문이다. 이탄지란 오랜 세월 동안 수생식물이나 정수식물의 유해가 분해되지 않은 채로 쌓이거나 약간만 분해된 상태로 두껍게 퇴적되어 늪지나 해안 습지 등에 형성되는 토지이다. 갈대 등의 수생식물과 물을 잘 흡수하는 물이끼 등이 이탄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물속의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패 속도가 느려서 완전히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상태가 유지된다. 
 이처럼 기묘한 생태계인 이탄지는 지구의 표면에서 매우 적은 면적만을 차지하지만, 매년 수억 톤 이상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서 막대한 분량의 탄소를 저장한다. 따라서 지구 전체의 탄소 순환 및 지구온난화의 방지에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농지를 만들기 위하여 이탄지의 물을 뺐는데, 산불이 이곳까지 번지면서 막대한 피해와 함께 심각한 환경 재앙이 닥쳤던 것이다. 이탄지의 화재로 10억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는가 하면, 앞으로 탄소를 더 이상 저장하지 못하게 되므로 이로 인해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탄지의 화재는 인도네시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고, 농부들이 강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발생했고, 러시아의 모스크바 인근에서도 일어난 바 있다. 이탄지 화재는 온실가스의 대량 방출이라는 환경적 재앙 이외에도 골치 아픈 문제를 여럿 동반한다.
 이탄지를 이루는 이탄 역시 넓게 보면 석탄처럼 화석연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오래도록 타면서 여간해서는 꺼지지 않는다. 또한 이탄지의 화재는 몇 개월씩 다량의 연기와 유독 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항공기의 운항마저 중단되는 경우가 생기고 대기오염이 가속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을 앓게 된다. 지난 2011년의 모스크바 인근 이탄지 화재로 인하여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탄지 화재는 지하에서 불이 나기 때문에 기존의 화재 진압 방식으로는 불을 끄기가 더욱 어려우며, 땅이나 도로가 아래의 불구덩이 쪽으로 내려앉는 위험천만한 경우마저 발생한다. 최근의 이탄지 화재는 특수 설계한 금속봉을 지하 깊숙이 내려보내 고압의 물살을 주입하여 간신히 불길을 잡았다고 한다.
 
                                                                              By 최성우

이미지1: 2019년 인도네시아 이탄지 화재 후의 모습 ( ⓒ Muhammad Pasya Ramadhan )
이미지2: 최근의 오스트레일리아 산불로 많은 희생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코알라 (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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