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이도 학습을 하는 생물이 있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12-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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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 또는 외계 생명체를 소재로 한 SF영화는 대단히 많지만, 꽤 오래전에 제작된 ‘The Blob’이라는 영화가 있다. 1958년에 처음 선보인 스티브 맥퀸 주연의 SF/공포 영화로서 우리나라에는 ‘물방울(The Blob; 1958)’이라는 제목으로 수입된 적이 있다. 이후에 척 러셀 감독, 케빈 딜론 등의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우주 생명체 블롭(The Blob; 1988)’도 있는데,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하늘에서 갑자기 뭔가 떨어져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물체를 처음 발견하여 접근한 이는 괴상한 생물의 공격을 받아 쓰러져 결국 사망하고 만다. 거대한 물방울 또는 겔 형상의 괴생명체는 사람의 몸을 녹여 양분으로 섭취하면서 갈수록 커지며, 하수구 등을 통하여 이동하면서 온 마을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는 B급 공포 영화이다. 
 그런데 정말 블롭(Blob)이라고도 불리며 이 영화에 나오는 것과 일견 유사한 듯한 생물이 실제로 있다. 다만 영화의 설정처럼 우주에서 온 외계 생명체이거나 구소련에서 비밀리에 화학실험을 통하여 만들어낸 괴물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지구의 생물이며 다행히도(?)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블롭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생물의 정식 이름은 황색망사먼지 또는 황색망사점균이며, 학명은 ‘Physarum polycephalum Schwein’이다. 지리산 자락 등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는 생물로서 썩은 나무나 그루터기, 낙엽 등에 발생하여 황색의 얇은 그물 또는 엉킨 실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곰팡이나 버섯류와 비슷한 부류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과는 약간 다른 점균류(粘菌類; Myxomycota)에 속한다. 생물분류학상 점균류는 동물계나 식물계와는 별개로서 곰팡이나 버섯처럼 진균계(眞菌; fungi)로 속하는 듯하지만, 최근에는 원생생물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점균류는 세포벽 없이 변형체를 만드는 단세포의 진핵 미생물이지만, 단세포의 생활사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응집하여 다세포의 생활사를 보이며, 동물처럼 운동성도 지니는 독특한 생물이다. 이들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자실체(子實體)를 만들어서 많은 포자를 형성하기도 한다.
 점균류의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포자낭이 터지면서 작은 포자들을 방출한다. 그러나 포자는 발아한 후 곰팡이나 버섯처럼 균사를 만들지 않고 편모를 지닌 유주자가 되어 운동성을 지닌다. 그리고 유주자들끼리 서로 모이고 접합하여 원형질체를 형성하며, 원형질체는 습기와 먹이 등이 있는 좋은 환경에서는 왕성한 활동을 한다. 즉 세균이나 효모 등의 미생물이나 진균의 포자를 잡아먹기도 하며, 원형질체 자체가 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양분이 없거나 건조한 척박한 환경에서는 다른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즉 딱딱하게 마른 상태로 휴면에 들어가기도 하고, 이동을 멈추고 거대한 자실체 즉 포자낭을 형성함으로써, 이후 일부의 세포들이 포자로 분화하여 다른 곳으로 가서 계속 생활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점균류 중에서도 대표적인 종인 황색망사점균은 특히 흥미로운 연구대상으로서 많은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이 기존의 과학과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이며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블롭, 황색망사점균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발이 없는데도 동물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닐 수가 있고, 위와 같은 소화기관이 없는데도 여러 종의 다른 생물들을 잡아먹을 수 있다. 또한 미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 이상의 성(Sex)을 지니고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뇌와 신경계 없는데도 기억을 하고 학습을 한다는 점이다. 즉 실험 결과 황색망사점균은 미로를 찾아 나아가는 등 갖가지 문제해결 능력이 있으며, 심지어 네트워킹을 통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장에 가장 유리한 영양소를 지닌 먹이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으며, 싫어하는 물질에 적응할 줄 아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들이 형성하는 조직망은 인간이 구축하는 교통망과 유사해 보일 정도로 매우 효율적이라고 한다.
 이런 수준이라면 분명 황색망사점균에 ‘지능’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존 관념으로는 사람과 같은 영장류나 고등동물, 또는 적어도 ‘뇌’를 지닌 동물만이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뇌와 신경계를 갖기는커녕 단세포 생물에 불과한 황색망사점균이 어떻게 지능을 보유할 수 있는지, 어쩌면 지능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뇌 없는 천재’라고도 볼 수 있는 황색망사점균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생태학이나 동물행동학, 의학뿐 아니라, 컴퓨터과학이나 관련 공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데, 다음 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By 최성우

이미지1: 점균류의 일종인 황색망사점균의 모습 ⓒ Rich Hoyer
이미지2: 영화 The Blob(1958년)의 포스터

  • 묵공 ()

    역발상으로, 사람의 뇌도 어차피 단세포들이 모인 것이고 이들이 뉴런으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정보를 교환할 뿐입니다. 즉, '의식'이라는 것은 허상으로서, 각 개별 세포들의 총합으로 이뤄진 네트워크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자아를 상정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색망사점균 덩어리는 '가변형 뇌'입니다. 그게 어떤 신비한 조직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뇌가 그저 망일 뿐이지 하드웨어적으로 신비한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단순히 정보저장체와 전달체로 엮여 있고, 이게 어떤 신호처리 기능이 작동하는 구조만 되면 됩니다. 그게 뇌나 균덩어리가 그 조건을 갖춘 것에 불과하고, 이 기능이 없는 것들은 도태되어 존재하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겠죠.

    정리하면, 인간의 의식, 또는 자아나 식물의 세포군, 혹은 균 덩어리 모두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이 생각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도 비실존적인 것이라서 하드웨어나 물질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보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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