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오토마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1-08-12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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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사이버네틱스의 원조(1)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자주 거론되는 오늘날,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 및 그 응용기술 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오래전에 그 초석을 놓은 인물 중에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과학자와 공학자, 수학자들도 적지 않다. 컴퓨터의 원조라고도 볼 수 있는 암호해독 기계 콜로서스(Colossus)를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 비밀리에 발명했던 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최근 영국 50파운드 지폐의 새 모델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사이버네틱스를 창시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으며, 로봇이라는 단어는 1920년대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인 ‘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앞서서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거나 연구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구자들도 적지 않다. 또한 로봇이나 컴퓨터의 오래된 기원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들도 적지 않은데. 이들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하다.

 고대 그리스어로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뜻인 ’오토마톤(Automaton)’은 기계장치 등을 통하여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을 일컫는다. 매우 초보적인 오토마톤은 무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 물론 고대의 오토마톤이 현대적인 로봇이나 컴퓨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오토마톤이 곧 인간의 특정한 목적에 따르는 다소 복잡한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나 제어장치일 것이므로, 로봇과 컴퓨터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근대 이후에 선보인 몇몇 오토마톤들을 보면, 특정한 임무를 위한 로봇이나 컴퓨터와 유사해 보이는 것들도 적지 않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크테시비우스(Ctesibius)가 발명한 물시계인 ‘클렙시드라(Clepsydra)’는 인형이 움직이면서 눈금을 가리켜 시각을 알려주는 오래된 오토마톤의 일종이다. 그와 동시대의 인물인 헤론(Heron)은 증기기관의 원조 격인 증기구 ‘에오리아의 공(Aeolipile)’을 비롯해서 수많은 정교한 기계장치들을 발명해서 일명 기계인간이란 뜻의 미케니코스라고 불린다. 증기의 힘을 이용한 ‘저절로 열리는 신전 문’, 오늘날의 커피 자동판매기와 유사한 동전을 넣으면 성수(聖水)가 나오는 장치 등이 그가 만든 것들인데, 자신의 연구와 발명품에 대해 설명한 ‘오토마타(Automata)’라는 저술도 남겼다.   
 고대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오토마톤으로는 스스로 방위를 알려주는 수레인 지남차(指南車)를 들 수 있다. 지남차의 유래와 최초 발명자에 대해서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의 전설이나 주나라의 주공(周公)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숱한 얘기들이 있고, 중국 역사상 이름난 여러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이를 개량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침반이나 자석이 내장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와는 관련이 없고 톱니바퀴 장치에 의하여 수레의 회전이나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맨 위에 수직으로 세워 놓은 목제인형이 늘 남쪽만을 가리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세종 시대에 활동했던 우리 역사상의 천재적인 기술자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와 옥루(玉漏) 역시 정교한 오토마톤이다.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여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 시각마다 옥녀(玉女), 무사(武士), 십이신(十二神) 등의 여러 인형이 자동으로 등장하여 북과 종, 징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유럽 등지에서 영향을 받아 선보인 자동인형이 공연이나 행사 등에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를 가라쿠리(からくり)라 불렀다. 일본식 오토마톤인 가라쿠리를 제작한 장인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로서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가 있다. 일본의 유명 기업 도시바(東芝)의 모태인 다나카제작소(田中製作所)를 창립한 그는 만년자명종(万年自鳴鐘)이라는 정밀 시계를 발명하였고, 증기기관차의 모형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나카 히사시게는 태엽과 톱니바퀴 장치 등으로 작동되는 문자쓰기 인형(文字書き人形), 활쏘는 어린이(弓曳童子) 등 여러 가지 오토마톤을 제작하였다.
 근대 서양의 오토마톤 중에서 특히 흥미 있을 법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스스로 체스를 두는 오토마톤이다. 1770년에 볼프강 켐펠렌(Wolfgang von Kempelen)이라는 헝가리인이 만든 체스 자동인형은 ‘터키 사람(The Turk)’이라 불렸는데, 사람을 상대해서 알아서 체스를 둘 수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오토마톤은 심지어 당대의 저명한 인물들과의 체스 대결에서도 승리함으로써 대중들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사실은 기계 안의 작은 공간에 사람이 숨어서 체스 말을 움직였던 속임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오토마톤이 첨단과학기술이라기보다는 과학적 원리와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된, 통섭과 융합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하나로도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동서양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오토마톤이 로봇과 인공지능, 컴퓨터의 탄생과 발전 등에도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다나카히사시게가 만든 오토마톤인 문자쓰기 인형 ( ⓒ 稲益誠之 )
이미지2: 톱니바퀴 장치에 의해 늘 남쪽을 가리키는 지남차 ( ⓒ Andy Ding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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