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이여 일어나라 - 여인철

글쓴이
sysop
등록일
2002-02-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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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능시험 응시학생의 계열별 지원현황을 보면 4, 5년 전만 해도 40%가량이 유지되던 자연계열 응시자 비율이 2001 학년도에 29.5%, 그리고 2002학년도엔 26.9%로 잠정집계되었다 한다. 자연계열 지원학생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 자연계열을 지원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많은 우수학생이 의대, 치대, 한의대 등 경제적 부가 보장된 의료 전문직종에 몰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사회풍조가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세계와 경쟁해야 할 우리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부가 진작부터 변호사, 금융인, 의사, 약사 등의 전문직종에 집중되어 있기는 했어도 학생들이 이공계열로 가는 데는 과학기술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과학기술인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긍지마저도 놓게 하였으며, 이제 모두가 노골적으로 돈 벌리는 곳으로만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사회적 지위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면 누가 굳이 부와 사회적 지위는커녕 보람조차 없는 이공계를 선택하겠는가. 고시 바람, 펀드매니저 바람, 한의대의 급격한 부상 등은 그런 세태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어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어린 학생들까지도 영악스럽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것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참으로 괴이한 일은 이 나라 과학기술인들이 모두 실어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의사, 약사, 그리고 변호사들은 남들이 무어라 하든 그 큰 밥그릇 더 챙기는데 열심인데, 그리하여 그들의 혈색은 날로 좋아져 가는데, 그 그늘에 가려 주눅이 들었는가 말을 잊었다. 자기의 밥그릇이 아니라 나라의 밥그릇을 키우자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인의 사기저하는 과학기술의 쇠퇴로 이어지고 이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일이건만, 행여나 남들처럼 밥그릇 지키려 한다는 시선이 두려운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래, 그렇게 하다 어디 한번 망할 때까지 가 보자는 심산인가.

그리스 신화에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라는 신이 있다. 필자는 이따금 이 땅의 과학기술인이 꼭 그 형벌을 받고 있는 아틀라스 신세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양어깨 위에 나라를 떠받치는 무거운 짐을 진 아틀라스. 그의 천형은 언제 끝날 것인가. 언제나 저 땅위에 올라가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인가.

학생이 진로를 어떻게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젊은 학생의 대부분이 인문계열로 가고 그나마 자연계 학생들은 돈 잘 벌리는 의약계로만 몰려간다면, 도대체 누가 반도체, 자동차를 생산하고 세탁기, 냉장고를 만들어 내다 팔 것인가. 일본의 이지스함 하나면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죄다 판검사 하고 펀드매니저 하고 의사 하면 누가 남아서 구축함을 만들어 우리의 안위를 지켜낼 것인가.

더 이상 침묵할 수는 없다. 필자가 속해 있는 과학기술계의 밥그릇 챙기기라 한다 해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을 그저 재주부리는 곰쯤으로 여기는 이 땅의 위정자들과 아무 생각없이 사는 동료들에게 이쯤에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죄가 될 것이다. 먼저 깨인 자의 의무라 할까. 그리하여 나는 오늘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이렇게 외치고자 한다. “과학기술인이여, 일어나 말하라.”

여인철/ 한국선급 수석연구원·공학박사


  • 익명좋아 ()

      자기 좋아하는 것을 택했으면 책임을 져야겠죠. 세상을 욕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니 그것은 능력에 따라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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