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구기관"의 발명자들... - 최성우

글쓴이
sysop
등록일
2002-11-0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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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니, 국내에서 잘 알려진 정치인 중 한 분이 '무한에너지 기관'을 곧 선보일 수 있다는 외신기자회견을 가졌다는 얘기가 있어서 참으로 어이없고 창피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이와 비슷한 '영구기관 사기사건'은 매우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일이라는 점에서, 참고로 한번 알아 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듯 해서 아래 글을 첨부합니다.  3년 전에 낸 제 첫번째 책 '과학사 X파일'에도 나오는 글입니다만...

 '과학사 X파일' 시리즈는 꽤 오래전 제가 L전자 연구소에 다니던 무렵에, 동료 연구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연구소 사내게시판에 연재를 시작했던 것인데...  ('독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결국 나중에 책으로까지 내게 되었습니다만...)

 여기에도 가끔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X파일' 이라고 해서 무슨 외계인이나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 것은 전혀 아니고, 저번에 회원게시판에도 하나 올렸던 것처럼 그냥 여러 과학사상 사건과 이야기 들 중에서 오늘날에도 교훈이 될만한 것들을 뽑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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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구기관의 발명자들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과학사 X파일(사이언스북스)' 中 에서 -


 어릴적부터 기계, 기술 등에 흥미와 재능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영구기관'의 제작을 한 번쯤은 꿈꾸어 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능이 좋은 발전기와 모터를 서로 연결하여, 외부전원 없이도 서로의 힘으로만 계속 작동하는 방식 등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열역학 제1법칙', 즉 에너지 보존의 원리를 배운 후부터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겠지만, 과학사를 살펴 보면 19세기 중반에 에너지 보존법칙이 확립되기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영구기관을 만들었다는 주장들이 숱게 등장한다. 마치 중세시대까지 연금술사들이 다른 물질로 금을 만들려고 숱한 노력을 기울였듯이, 영구기관을 제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끊이질 않았다. 

 증기기관 연구의 선구자 중 하나인 영국의 소머셋(Edward Somerset; 1601-1667)은 1638년 바퀴 속의 경사면에 납공을 굴려서, 그 반동으로 다시 바퀴를 돌릴 수 있다는 영구기관을 고안해낸 바 있고, 아르키메데스의 스크류를 사용하여 물을 순환시켜 수차를 돌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몇 명의 탁월한 수학자를 배출시켜서 수학자 집안으로 유명한 베르누이 가문의 장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도 유체를 이용한 영구기관을 제안한 바 있다. 

 이밖에도 자석을 이용한 영구기관, 전기장치로 된 영구기관, 열과 빛을 이용한 영구기관 등 온갖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다양한 종류와 모양의 영구기관들이 고안되었지만, 그중 제대로 작동된 것은 하나도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영구기관의 발명자'들 중에는 자기의 발명이 옳다고 확신한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기꾼들도 많았다. 영구기관을 완성했다고 하면 뜻 있는 부자나 권력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후원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18세기초 독일의 오르피레우스(Johann Bessler aka Orffyreus)의 자동바퀴사건은 영구기관을 빙자한 사기사건 중 비교적 큐모가 컸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와 추의 낙하를 교묘히 연결하여 바퀴를 영원히 돌릴 수 있다는 어이없는 장치였지만, 그는 장치의 중요부분을 가리고 사람을 밑에 숨겨서 밧줄로 잡아당기는 등의 속임수로 자신의 장치가 영구기관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귀족이나 부유한 상류층들으로부터 거액을 지원 받으면서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고, 러시아의 황제 피오트르1세에게 10만루블을 받고 자신의 '영구기관'(?)을 대여하려 한 적도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처럼, 결국은 사기극이 들통 나고 말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아서 그의 장치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미국의 존 킬리(John Worrell Keely; 1827-1898)라는 인물 또한 아주 탁월한 사기꾼이었다. 킬리의 발명은 단순한 영구기관이라고 하기에는 좀 복잡해서, 무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서 '공감적 진동'에 의해 재결합을 일으켜서 대량의 에너지를 낸다는 그럴듯한 이론을 폈다. 그는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언변이  뛰어났고, 난해한 용어들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혹세무민'의 대가였다. 킬리는 "한 양동이의 물이 세계를 바꾸는 힘을 가졌다." 라고 큰소리치면서 자신의 황당한 이론을 거침없이 설파하였다. 

 1872년에 10여명의 기술자, 자본가 등이 1만달러를 출자해서 '킬리 모터회사'를 설립했고, 킬리는 이 돈으로 부품을 사서 금속관, 구, 밸브 등이 복잡하게 조립된 기계를 만들었다. 1874년에는 필라델피아의 유지들이 모인 가운데 킬리모터의 공개실험을 하였는데, 이 실험을 지켜본 사람 중 하나는 "압력계는 1제곱인치당 5만 파운드 이상의 압력을 나타냈다. 굵은 밧줄이 끊어지고 쇠막대가 휘었으며, 총알은 12인치 두께의 판을 관통했다." 라고 하면서 놀라워했다. 또한 킬리는 "나는 약 1리터의 맹물로 기차를 필라델피아에서 뉴욕까지 달리게 할 수 있다." 라고 호언장담하면서 후원을 부탁하였다.

 이 실험으로 많은 출자자들이 서슴없이 거액의 돈을 투자하였고, 킬리는 자신이 고안한 기계의 상업적 실용화 비용으로 거듭 더 많은 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연구는 지지부진하였고 킬리는 자신의 기계장치가 정밀히 테스트되지 않도록 교묘히 회피하였다.

 그러는 동안 2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1898년에 그는 죽었고, 그후 출자자들은 킬리모터란 설계도도 존재하지 않았고, 거액의 투자비는 그의 사치스런 생활비로 탕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100만달러를 사기당하고도 자신들이 어떻게 속았는지를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죽은 킬리와 함께, '킬리모터의 비밀'도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일찍부터 킬리에게 의심을 품었던 사람 중 하나가 그의 실험실이 있던 건물을 임대하여 샅샅이 조사한 결과 킬리모터의 사기극이 비로소 드러났다. 실험실의 마루 밑에 압축공기탱크가 숨겨져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파이프를 끌어 들여서 압축공기의 힘으로 기계를 움직였던 것이 밝혀졌다.

 킬리모터가 엄청난 사기였음이 드러난 오늘날에도 킬리가 주장했던 이론과 기술을 여전히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킬리가 원자 아래 단계의 입자에 대해서 최초로 연구한 소립자 물리학자였다는 주장도 있고, 그의 공명이론과 중력에 관한 연구에 새롭게 주목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아직도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특허 출원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세계 각국의 특허청 담당자들을 골치아프게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특허청에서도 영구기관 특허를 둘러 싸고 '재야 발명가'들과 특허청 직원들의 실랑이가 해마다 끊이질 읺는데, 미국 특허청의 경우는 이러한 '영구기관' 특허는 신청서류에 반드시 동작하는 모형을 첨부한다는 조건을 붙임으로써 특허출원 자체를 저지하고 있다고 한다.

  • 닐리리 ()

      국내에도 영구기관을 발명하였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모씨 던가 ?

  • 닐리리 ()

      그런데 영구기관 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특허 신청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 무슨 희안한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현혹 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정부과제에도 신청하여 연구비 까지 받은 적도 잇는

  • 닐리리 ()

      그런데 영구기관 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특허 신청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 무슨 희안한 이름을 붙여 사람들을 현혹 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정부과제에도 신청하여 연구비 까지 받은 적도 있는 모양입니다. 원자력 연구소 이던가 어디하고도 일을 같이 하는 것 처럼도 이야기 하고 모대학 교수님 이름도 팔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러보면 타당한 것 같고, 일부는 다른 분야에 적용도 가능할 것 같고 한데 전반적인 내용은 결국 영구기관이더군요. 답답해서...

  • 닐리리 ()

      찾았읍니다. 혹세무민하는 영구기관 홈페이지. 장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유료로 회워가입을 하라는 군요. <a href=http://www.amino.co.kr target=_blank>http://www.amino.co.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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