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벨상 유감... -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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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등록일
2002-11-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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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이웃 일본에서 노벨상을 두명씩이나, 그것도 과학부문 3년 연속 수상을 했으니 우리의 씁슬한 처지와는 더욱 비교가 될 듯합니다. 
 냄비 언론들이나 사정을 모르는 높으신 어른들은 "일본은 두 명씩이나 타는데, 우리 과학자들은 뭐하냐?"는 식으로 한마디씩 끼려 할 것 같습니다.

 아래에 작년 3월에 낸 한겨레신문 칼럼글(21세기를 여는 열쇠)에서도 노벨상에 대해 짧게 언급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 글의 '본문'에 해당하는 좀 긴 글을 첨부합니다.  꼭 노벨상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을 토로하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이를 매개로 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관련 문제점들, 나아가서는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려 한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처음 쓴 것은 1996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6년이 지났는데, (통신공간에 '노벨상 유감'이라는 제목으로...) 이번에 책을 내면서 일부를 고치고 보완하기는 했지만 당시에 지적했던 문제들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이미 요즘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예측했다."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오만한 얘기겠습니다만, 아무튼 상당한 우려와 고민을 표했는데 그 뒤로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결국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좀 길고 너무 많은 얘기들을 한꺼번에 언급한 감이 있긴 합니다만, 어쩌면 제가 대학 3학년 시절 이후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체험해 온 것들을 토대로 한 것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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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콤플렉스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해마다 10월 중순쯤 되면 스웨덴의 한림원에서 발표하는 노벨상 각부문 수상자들과 그들의 업적, 관련기사 등이 나온다. 또한 그에 때맞추어 우리나라에는 '노벨상 신드롬'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반짝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2000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노벨상에 대한 관심도는 실로 지대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은 발빠르게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평소에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번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은 누가 받았나 한번 훑어보게 마련이다. 이공계 관련 학과의 교수, 학생들은 그들의 업적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데, 필자 역시 대학 4학년 때인가 당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업적과 관련된 문제가 중간고사에 출제되어서 다들 '노벨상 문제'라고 입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문, 방송에서는 '우리나라 사람이 과학분야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노벨과학상에 도전한다' 등의 기사, 프로그램 등이 앞다퉈 선보이기도 하였다.

 노벨상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상임에는 틀림없고, 지금은 매년 6개 분야에서 배출되는 노벨상 수상자는 과학자든 문학가든 사회운동가든 최고의 영예를 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벨상이란 제도와 수상자 선정 기준을 둘러싼 의문과 잡음도 끊이질 않는다. '왜 노벨 수학상은 없느냐?'는 것은 매우 해묵은 질문인데, 여기에 대해선 노벨과 동시대인이었던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 레플러(Mittag Leffler)가 노벨의 연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호사가들의 설명과, 노벨이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실용적인 과학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물리학 같은 분야를 보더라도 노벨상 수상자 선정위원회의 보수성 때문인지, 이론물리학자 보다는 실험물리학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가 왜 아직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종종 제기된다. 하긴, 아인슈타인 역시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은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광량자가설로 가까스로 노벨상 수상자 대열에 합류했을 뿐이다. 양자역학의 단서를 마련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도 오랫동안 '만년 후보'로 있다가 아주 뒤늦게야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실용기술이나 공학 분야의 공로자에게 줄만한 마땅한 분야도 없어서, 발명왕 에디슨(Thomas Edison), 컴퓨터의 아버지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등도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무선전신의 발명자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2000년도 물리학부문 수상자인 집적회로(IC)의 창시자 킬비(Jack Kilby) 정도가 공학적인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천문학이나 지구과학 분야도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우주팽창론을 제시한 저명한 천문학자 허블(Edwin Hubble)도 수상 대열에서 제외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상을 수여한다는 규정도 종종 문제로 지적되는데, 이것은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뉴턴(Isaac Newton), 패러데이(Michael Faraday) 등 이미 고인이 된 대가들이 계속 노벨상을 '싹쓸이'할지도 모르는 폐단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규정으로 인해 원자번호와 원자핵의 전하량 사이의 관계를 밝혀서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되던 영국의 과학자 모즐리(Henry Moseley)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하는 바람에 상을 받지 못하는 등의 여러 안타까운 사례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와 같은 탁월한 여성과학자들이 차별과 편견으로 인하여 남성 경쟁자들에게 밀려 났다든가, 부자(父子)간에, 혹은 사제지간에 노벨상을 '물려받는' 경우도 적지 않는 등 소수 국가 및 연구그룹들이 독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자주 들린다. 또한 정치적인 입김이나 인종적 편견 등도 제3세계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필자가 대학 3학년 때, 그러니까 1984년의 일로 기억된다. 필자 소속인 물리학과에서 교수와 학생간의 간담회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학원자율화문제,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학생들은 '이 시대에 과학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때 어느 교수님이 다음과 같이 한 말씀 하셨다.

 "자네들이 그토록 조국과 민족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네. 그렇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업적을 내어서 노벨상 받게. 그것만큼 자네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괜히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기 바라네..." 

 그 교수님의 말씀이 매우 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다 노벨상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영광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훌륭한 과학자를 꿈꾸어 온 사람이라면, '나도 노벨과학상을 목표로...'라고 한번쯤은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사회의 노벨상 신드롬이 항상 부정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 등지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법조, 경영 등 다른 분야만 선호하는 바람에 앞으로 미국사회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울 지도 모른다고 꽤 걱정한다고들 한다. 벌써 미국의 저명 이공계대학의 상위권은 상당수가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동양계 학생들의 차지라는 소식도 가끔 들린다.

 최근 우리나라 역시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과거 한때나마 '노벨상에 대한 염원'이 우수한 어린 인재들을 이공계로 향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자신의 과거 선택을 회한하면서 "내 자식만은 절대로 이공계에 보내지 않겠다"는 과학기술자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이 곧 선진국 여부를 가늠하는 중대한 척도라도 되는 듯 여겨지는 이상한 풍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을 받을 만한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기 위한' 목적의 고등과학원이라는 연구기관이 설립 추진되어, 몇 년 전 개원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새로운 연구기관이 설립된 마당에,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 마지않는 바이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실제로 노벨상을 수상한 경력의 여러 외국과학자들을 '모셔 오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과학분야의 수상자를 내기를 염원하는 노벨상이라는 상의 진정한 가치와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접어 두더라도,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수준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정말 곧 노벨과학상도 받게 될 것인가? '상을 받기 위해서' 무슨 연구기관을 설립한다는 것도 참 우습거니와, 아무튼 허례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와 정부정책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당시에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상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무슨 집단적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가끔씩 과학계 전체가 노벨상에 목숨 건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본말이 전도된 것 같다.

 더구나 그 고등과학원의 터와 건물은, 산학협동 등으로 나름대로 연구개발과 학업에 열중해 온 기업체 소속 석, 박사과정 산학연구원생들을 내 쫓으면서까지 마련된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서나 연구업적을 냈거나, 상을 받은 지도 한참 지난 외국 원로과학자들이 얼마나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 바 있었지만, 설령 그렇게 해서 상을 받으면 또 뭔가?

 1930년에 이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라만(Chandrasekhara Raman)을 배출한 인도를 그 동안 과학기술선진국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인도가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일부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자랑한다 해도, 그 나라 사람들의 복지와 산업발달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인도가 이른바 정보기술(IT) 강국이 될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도 이외에도 제3세계 몇몇 나라에서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과 그 나라 전체의 과학기술발전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몇 명의 과학자를 배출하는 것보다는, 국가의 전반적 과학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기초체력'을 다지면서, 그것이 산업적 경쟁력 강화 및 건전한 과학문화의 국민적 확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또한, 역으로 그러한 여건이 성숙된 연후라야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더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대다수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마음놓고 보람있는 연구개발에 열중할 수 있으려면 아직도 멀다고만 느껴진다. 약 10여 년 전, 대덕 연구단지의 정부출연기관 산하 연구원들이 거의 처음으로 노동쟁의를 벌일 당시, 여러 구호와 플래카드 중에서도 유독 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플래카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고 한다. - '나 어릴 적 과학자 꿈 커서보니 처량하다.'

 몇 년 전에 IMF 경제위기가 닥쳐왔을 때에도,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가장 먼저 쫓겨난 사람이 바로 과학기술자들이 아니었던가? 그 무렵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IMF의 근본 원인은 바로 과학기술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던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의 한 말씀은 참으로 웃지 못할 희극이었다.   

 옛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의 기술천시풍조와 과학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은 아직도 벽이 높다. 고위직 공무원 중 기술고시 출신의 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꽤 많은 정부각료 중에서 이공계출신은 관련 부처 극히 일부를 빼면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게다가 국회의원 중에서 과학기술자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나마 전국구 등에서 배려되는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보다도 훨씬 적어서,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지경에서 과연 제대로 된 과학기술 정책이나 과학 행정이 이루어질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전적으로 좋다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 북한 등지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각료 중 이공계출신이 거의 반 이상이라고 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국가들도 우리처럼 심하게 편중되어 있지는 않다.

 과거의 역대 독재정권들은 자신들의 취약한 정당성을 가리고자, 첨단과학기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양 선전하기도 했다. 진정한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시절,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아마추어 제작수준이라던 실험위성 '우리별1호'의 발사를 우리가 무슨 선진국에 진입한 신호라도 되는 양 크게 떠 벌이면서 자랑한 바 있다. 필자가 각고의 노력 끝에 처음으로 실험위성을 완성시킨 당시의 젊은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문민정부'에 들어서도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위성 '무궁화1호' 발사 때에, 평소에는 과학의 '과'자도 모르던 국회의원, 정부관리 등 높으신 분들이 미국까지 몰려가서 카메라 포즈 취하느라 북새통을 떠는 바람에, 현지의 담당관계자 및 기술자들은 그분들의 뒤치닥거리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지경이었으니 무궁화1호가 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바람에 수명이 반 이상 줄어든 '절반의 실패'로 끝나고 만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는 뒷이야기가 들릴 정도였다. 
 
 '두 문화'라는 책에서 스노우(Charles Percy Snow) 경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학문분야의 괴리와 그로 인한 상호 몰이해 및 부작용 등에 대해서 우려한 바 있다. '과학기술의 시대'라는 화려한 장식에도 불구하고, 타 분야 및 일반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무관심, 그로 인한 괴리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이처럼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과학이 되다 보면, 과학의 독점 및 그로 인한 오용(誤用)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일찍이 누군가 강조한 바 있는, '과학은 곧 일반 대중들에게 과학적 사고를 훈련시키는 훌륭한 틀'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학의 대중화는 현 사회가 풀어 나아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동안 대전EXPO 등의 행사도 개최했고, 최근에도 정부 차원에서 과학 대중화를 위한 여러 이벤트와 행사 등 과학문화운동을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까마득하다고만 느껴진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처럼 일반 대중에게 과학기술을 제대로 전달할 역량 있는 대중적 과학평론가나 저술가, 과학커뮤니케이션 전문가도 매우 드물거니와, 일부 저명한 과학자들조차 전문 연구분야에서는 몰라도 올바른 과학기술정책이나 과학 대중화에 관련해서는 빗나가기 일쑤이다. 

 '원자력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라던 전직 과학기술처장관 한 분은 정부출연기관 노조의 퇴진요구에 결국 밀려난 바 있고, 텔레비전에도 꽤 얼굴을 내비치며 인기를 얻던 어떤 과학자는 원자력발전의 안전에 관한 토론회에 나와서 '적정량(?)의 방사능은 오히려 사람 몸에 이롭다.'는 따위의 궤변을 늘어놓은 바 있다. 한국의 MIT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던 어느 공대의 학장은 신문칼럼에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임금인상 등의 요구를 자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말 획기적인(?)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한국과학사를 전공한 어느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의 과학기술자집단을 조선시대의 '중인계급'에 비유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신문에서 별 관심 없이 한번 훑어보고 말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사회의 과학기술자들은 '양반도 상놈도 아닌 중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아마 과학기술자 자신들의 문제도 어느 정도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과학기술입국의 주역이 되기 위하여, 또한 대중들과 유리되지 않고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 자신들의 노력 역시 한층 더 요구된다 하겠다.     

 노벨상 이야기로 시작해서 너무 이야기의 초점이 확대, 비약된 감이 없지 않다. 필자 같은 사람이야 뭐 원래 노벨상 같은 것과는 신경 쓸 일도 없겠지만, 한국에서도 하루 속히 노벨과학상 수상자, 혹은 그에 준하는 연구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시기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과 우리 사회가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과학 비록 과학분야는 아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으니, 과학자들이 좀더 의연하게 연구에 정진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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